경찰이 집회시위법 개정에 따라 연일 소음측정기를 들이대고 있다. 22일부터 시작된 경찰의 집회 소음측정은 24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에서도 실시됐다. 

경찰은 지난 20일 집회시위법 시행령 개정을 근거로 광장 및 상가 지역에서 기존 80데시벨이었던 소음 측정 기준을 75데시벨로 낮추고 단속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기준을 어겼을 경우 법적 처벌 하겠다는 것이 경찰 방침이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시민사회단체 인사 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24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연 '성역 없는 진상규명 가로막는 새누리당 규탄대회'에서는 영등포 경찰서 소속 정보계 직원 2명 등 총 4명의 경찰관이 '소음 관리'이라고 쓰여진 조끼를 입고 소음을 측정했다.

경찰은 집회가 열리기 수십 분 전부터 스피커가 설치된 곳으로부터 20미터 떨어진 곳에 소음측정기를 설치해 측정치를 기록했다.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위 주최로 열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가로막는 새누리당 규탄 기자회견'에 서울 영등포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소음측정과 영상촬영을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집회가 열리기 전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노래의 소음측정치는 73.7데시벨이었으며, 최대치 소음은 87.2데시벨이 나왔다. 경찰은 10분 동안 소음을 측정해 평균을 내서 75데시벨이 나올 경우 집회가 열리기 전 집회 주최자와 조율을 거쳐 스피커의 불륨을 조절하게 돼 있다. 이날 집회가 열리기 전 10분 동안 평균 소음은 75데시벨을 넘기지 않아 경찰의 제지 없이 집회가 시작됐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발언하자 소음측정기의 수치가 올라갔다. 박 대표는 "피해자 중심으로 진상규명을 하는 것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국제적 기준"이라며 "이에 역행해서 유족의 특별진상위원회 참여는 안된다고 하고 있는데 말이 안되는 언어도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소음측정기의 수치는 75.3데시별에서 75.6데시벨 사이를 오르락 내리락했다. 이번 경찰의 집시법 개정 시행령에 따르면 기준을 위반한 '소음'에 해당된다.  

두번째로 마이크를 잡은 김정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정치권의 협잡으로 특별법이 누더기가 됐는데 누더기조차도 지키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이 청와대와 새누리당이다. 헌법의 생명권마저 부정하고 있다"고 말하자 소음측정 수치는 다시 낮아졌다.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가로막는 새누리당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날 집회에서 소음 수치는 집회 참가자의 구호와 목소리의 크기에 따라 들쑥날쑥 요동을 쳤다. 집회가 끝날 때 쯤 수치는 75데시벨을 넘어섰지만 10분 동안 평균을 기준으로 한 수치는 75데시벨에 조금 못 미치는 73데시벨을 기록했다. 

경찰은 이날 스피커 위치를 기준으로 해서 3번에 걸쳐 장소를 변경해 소음을 측정했다. "원래 소음 측정은 112 신고가 있을 때 신고자가 있는 장소에서 측정하는 것이 원칙인데 오늘은 신고가 들어오지 않아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으로 이동해 측정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현장 소음측정 경찰에 따르면 집회시위가 열기 전 소음을 측정해 75데시벨(10분 평균 / 상가 기준)이 넘어가면 집회 주최자에게 현장에서 ‘소음유지명령서’를 발부하게 된다. 그리고 확인 측정을 통해 75데시벨을 또다시 넘기면 ‘소음중지서’를 발부한다. 이어 두 번째 확인 측정을 거쳐 기준치를 초과하게 되면 스피커를 차단하거나 보관하는 '일시 보관 조치'를 취하고 사후 법적 처벌을 고지하도록 돼 있다. 현장에서 '소음'을 둘러싸고 경찰과 집회 시위 주최자가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향후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집회에서는 소음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상황도 발생했다.

세번째로 마이크를 잡은 참여연대 이태호 사무처장이 "가해자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고 가해자가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까지 임명하면 진상이 밝혀지겠느냐"라고 말하는 순간 '멸공'이라고 쓰여진 모자를 쓴 한 남성이 어깨에 멘 확성기를 통해 소리를 질렀고 소음측정 기계의 수치는 79.9데시벨까지 솟구쳤다.

   
기자회견 장소와 경찰의 소음측정기 사이로 한 보수성향의 종교인이 휴대용 확성기로 '멸공 진리' 구호를 외치며 지나가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집회가 열린 시각인 오전 11시~12시,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은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자동차들은 수시 때때로 경적을 울려 귓전을 때렸다. 휴대전화를 들고 큰 목소리로 대화하는 시민들이 소음 측정 기계를 설치한 곳을 지나가기도 했다. 소음측정을 하고 있던 경찰관도 되도록 작은 소리를 내기 위해 입을 가리면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경찰은 스피커 등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만을 측정해 집회 시위에서 나오는 소음을 가린다고 했지만 집회를 방해하려는 이들이 내는 소음, 그 앞을 지나가는 차량의 경적소리 등 다양한 소음 발생 요인을 감안할 때 정확한 집회시위 소음을 측정할 수 있을지 의문을 낳고 있다. 

경찰은 "시민들이 기존 시행령 기준인 80데시벨로 알고 있을 수도 있어 11월 21일까지는 계도 기간을 두고 소리를 낮춰달라고 하고 있다"며 "지금은 사전 소음을 측정해 집회 주최자와 조율을 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배서영 상황실장은 "경찰의 소음 측정은 헌법에 보장하는 집회 시위의 자유를 사실상 제한하는 것"이라며 "소음 기준 역시 불합리하고 부정확하다. 카카오톡과 같은 사회 관계망은 증거를 특정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어 이를 악용해 모두 들여다보고 있는데 온라인 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국민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찰의 집회소음측정장비. 이치열 기자 truth710@
 

한편, 지난달 30일 여야 협상 결과 특검 추천에서 유족들의 참여를 배제하기로 하고 새누리당이 진상조상위원회 위원장 임명을 대통령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세월호 유족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새누리당에 보내는 항의서한을 통해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건이다. 그 최종 책임을 대통령과 이 정부에 있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이제 사실상의 가해자들인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좌지우지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한다. 이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

세월호 국민대책회의는 오는 11월 1일 세월호 참사 200일 범국민 대회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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