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 시행 한 달도 안 돼서 페이백이 부활했다. 지난 1일 시행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은 휴대전화 단말기 보조금을 최대 30만원으로, 대리점과 판매점에서 자체적으로 지원하는 보조금을 포함해 34만5000원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법이다. 그러나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결과, 실제 판매 현장에서는 음성적인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리점이나 판매점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휴대전화 가격정보 사이트 피피넷 표영진 대표는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단통법 시행 첫 주에는 대리점으로 내려온 보조금이 15만~22만원 정도였는데 10월 넷째 주 들어 리베이트를 포함해 평균 40만~50만원의 장려금이 내려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베이트는 본사에서 대리점이나 판매점에게 지급하는 판매 수수료를 말한다. 판매점은 리베이트 범위 안에서 고객들에게 추가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남는 돈을 수익으로 챙길 수 있다.

표 대표는 “결국 단통법 시행 이전처럼 페이백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면서 “벌써 판매점들은 보조금 상한을 넘기면서 고객을 유치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페이백이란 방송통신위원회가 정한 범위 안에서 보조금을 주고 추가 지원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편법을 말한다. 보통 단말기 할부원금에 보조금을 반영해 약정 계약을 하고 이와 별개로 계좌번호를 받아 1주일 이내에 페이백 금액을 입금해 주는 방식이다.

실제로 미디어오늘이 20일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한 LG유플러스대리점을 방문해 단말기 가격을 문의한 결과, 출고가 95만7000원인 삼성전자 갤럭시노트4에 10만원+30만원의 보조금을 제시했다. 방통위 기준에 따르면 할부원금이 80만원대에서 결정돼야 하는데 50만원대까지 낮아졌다. 이 대리점 직원은 “갤럭시노트4는 이달 말까지 행사 기간이라 그렇고 다른 제품은 단통법에서 규제한 보조금 상한 이상은 줄 수 없다”고 말했다.

   
▲ 통신사와 제조사에서 판매점에 지급하는 리베이트 금액은 40만~50만원 수준까지 도달했다. 시장이 단통법 시행 이전 상황으로 돌아갔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통신사 판매점. ⓒ연합뉴스.
 

이날 기준 통신사와 제조사에서 대리점으로 지급된 갤럭시 노트4의 리베이트는 신규가입 기준 31만원, 번호이동 기준 39만원 정도다. 번호이동 고객의 경우 판매점에서 10만원을 보조금으로 주면 나머지 29만원은 판매점의 마진이 된다. 표 대표는 “법을 지키는 판매점은 마진이 늘어나겠지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면서 “판매점 입장에서는 리베이트를 줄여서라도 보조금을 더 주고 싶지만 법이 이를 막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표 대표는 “단통법은 소비자 보조금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대리점·판매점의 마진을 규제해야 한다”면서 “보조금 상한 규제가 오히려 이용자들의 차별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했다. 단통법과 무관하게 통신사들은 번호이동을 독려하기 위해 리베이트를 내려보내는데 결국 판매점 입장에서는 법을 지키고 리베이트를 다 챙기느냐 법을 어기고 페이백으로 고객들을 끌어들이느냐를 선택해야 한다.

시장 상황이 이런데도 방통위는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방통위 통신시장조사과 임서우 사무관은 2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페이백 신고가 들어오고 있어 시장에 행정지도를 요청하고 있다”면서 “통신사도 당장 답답해서 리베이트를 내려 보낼 뿐 보조금 규제를 강화하면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안정화 될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달 초부터 주장했던 법 시행 초기라 벌어지는 부작용이라는 입장 그대로다.

표 대표는 “분리공시를 도입하고 보조금 상한선을 없애지 않으면 통신사와 제조사의 담합을 근절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표 대표는 “방통위 보조금 상한이 30만원인 단말기의 경우 통신사가 25만원을 보조금으로 책정했는데 제조사가 10만원을 더하면 오히려 통신사는 5만원을 줄여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한다”며 “올바른 유통구조라면 이 5만원이 판매점이 아닌 소비자에게 가야한다”고 지적했다.

조동근 바른사회시민회의 대표(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2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방통위가 시장경제의 작동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며 “통신사의 보조금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통신요금을 경쟁시켜 가격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 주장했다. 단말기 가격 거품도 문제지만 과점 상태의 통신 3사가 사실상 가격 담합을 하면서 요금을 낮추지 않는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과다한 리베이트를 몰래 내려 보내는 통신사에 문제제기 하는 목소리도 있다. 참여연대는 담합을 이용한 부당이득을 취했다며 지난 13일 통신3사와 제조사들을 특정경제 범죄 가중처벌법 위반(상습사기) 혐의로 고발했다. 참여연대는 “분리공시 제도도 무산되어 보조금 중 제조사가 내는 장려금과 통신 3사가 내는 지원금의 규모도 전혀 알 수 없는 상태”라며 “단통법 취지가 무색하게 이용자 차별이 지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2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리베이트가 내려올 거라는 것은 예견됐던 일”이라며 “통신사가 지급하는 보조금 상한만 규정해놓으면 단통법 이전과 달라진 게 없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혜택은 늘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