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육지의 참사가 이제 하늘에서 떨어지려는가. 북한 상공으로 날린 대북전단을 두고 벌어진 남북 간의 총격이 하마터면 심각한 포격전, 국지전으로 번질 뻔했다. 

대북 보수단체들이 지난 10일 경기도 연천지역에서 북한으로 전단을 날리자 북한의 사격과 함께 장사정포가 갱도에서 나와 가동되기 시작했고, 대구 공군비행장에서는 장사정포 갱도를 원점 타격할 전투기가 출격해 대기상태에 들어갔다. 전단을 향해 쏜 북한의 총탄으로 남쪽의 사람이나 건물이 피해를 입었다면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벌어질 일촉즉발의 아찔한 상황이었다. 

보수단체들은 오는 25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강행할 것이라고 한다. 북한의 고위급 접촉 대표단은 성명을 통해 남한 당국의 남북 군사적 충돌 방지 조치를 촉구하며 “삐라 살포행위는 전쟁행위로서 소멸전투가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수단체들의 전단 살포행위를 둘러싸고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이 어떻게 번질지 국민들은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전단 살포행위가 “국민의 안전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한다”며 ‘삐라전쟁’이 터질까 전전긍긍하는 살포 지역 주민들과 국민들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수단체들의 입장은 막무가내다.

보수단체들은 “대북전단으로 인민혁명을 불러일으켜 북한 인민의 손으로 수령 독재를 끝장내려는 것”이라며 “이는 북한 주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역사적 사명”이라고 북한의 위협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대로 ‘북한 정권의 붕괴와 북한의 민주화, 통일’이라는 ‘대북전단의 꿈’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 북한이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묵인하면 남북관계는 파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가운데 1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통일동산주차장에서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대북전단 풍선을 준비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북한 정권의 입장에서 체제전복을 위한 대북 심리전 행위를 결코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북한은 9월 들어 남쪽의 ‘전단 살포 원점’을 타격하겠다고 위협해 왔으며, 결국 대북전단을 향한 북한의 기관총 사격이 벌어졌다.

북한 내부에서는 공안기구의 주민통제가 더욱 심해질 게 뻔하다. 외부의 위협을 빌미로 체제의 결속과 강화를 위한 북한 당국의 탄압이 한층 강화될 것이다. 

보수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가 오히려 북한 정권의 통치력 강화를 도와주는 꼴 아닌가. 보수단체들은 살포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고 널리 홍보하는 셈이니 남한의 보수단체와 북한 정권은 ‘적대적 공생관계’가 된다는 얘기다.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 인권론’이나 ‘통일대박론’과 연결되는 ‘북한 붕괴론’이 실현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9월 13일 발표한 인권백서에서 북한 인권 문제 제기를 “정권교체를 위한 범죄행위의 수단”이라고 말한 것처럼 ‘북한붕괴론’으로 본다.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압박을 강화하며 통일의 결과만을 강조하는 ‘통일대박론’도 ‘북한붕괴론’을 전제로 한 것 아니겠는가.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기대와 주장은 1990년대부터 간헐적으로 제기돼왔다. 1994년 10월 북한 핵문제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제네바 합의를 미국 공화당이 공격하고 나서자 미 백악관과 국무부는 ‘북한붕괴론’으로 공화당을 설득했다. 설득 내용은 북한에게 경수로를 건설해주기로 한 10년의 기간 안에 북한이 틀림없이 붕괴해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 됐는가. 북한은 붕괴되지 않고 북한 핵문제는 악화되기만 했다. 

미국은 ‘북한붕괴론’만 기대하며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도 없이 북한의 ‘벼랑 끝 위기 전략’에 말려들어 임시 변통책으로 시간만 허비한 채 북한의 핵 능력을 강화시켜 주고 말았다. ‘북한붕괴론’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마비시켜온 마취제였다. 

그럼에도 ‘북한붕괴론’은 사라지지 않고 되살아나곤 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뒤인 2002년 북한은 붕괴해야 할 ‘악의 축’으로서 선제 핵공격의 대상으로 지목됐다. ‘북한붕괴론’이 성행했다.

제네바 합의에 따라 해결국면에 접어들었던 북한 핵문제나 타결 일보 직전이었던 북한의 미사일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미국은 2002년 초부터 북한에게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받으라고 요구했고, 북한은 경수로 사업 지연에 따른 전력 손실을 보상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북한에 대한 특별사찰은 경수로 사업이 상당한 부분 완료되고 주요 핵심 부품이 인도되기 전에 실시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당시 경수로 사업의 진척은 30% 정도밖에 안 된 상태였고, 경수로 완공목표 시기인 2003년은커녕 언제 완공될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북한과 미국의 상호 맞대응과 갈등 끝에 2002년 10월 2차 북한 핵 위기 사태가 터지고 말았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마비시켜온 ‘북한붕괴론’이 건듯하면 되살아나고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악화되기만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북한붕괴론’과 북한 핵문제를 들고 나온 주체는 주로 미국 국방부나 중앙정보국(CIA)이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북한붕괴론’과 북핵 위기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나면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에게 미사일체계를 비롯한 첨단 무기 구매와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증액을 요구했다. 

‘북한붕괴론’ 및 북한 핵 위기의 문제에는 미국의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패권 유지를 위해 중국 견제와 포위 전략을 펴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서 중국을 겨냥한 미·일군사동맹 관계와 미사일방어체제의 강화를 위한 가장 좋은 빌미가 ‘북한 핵과 미사일 위기’의 문제다. 미국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겠는가. 

남한의 보수적인 정권도 마찬가지다. ‘북한붕괴론’과 인권 등의 북한 문제는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시켜 보수 세력을 결집하고 확대할 가장 좋은 수단으로 애용해왔다. 남한의 보수 정권이나 세력,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 정부와 군산복합체 등은 북한을 적대시하면서도 북한에게 의존하는 ‘적대적 공생체제’를 형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1996년 3월 북한의 붕괴 및 남침 가능성이 제기된 후 미국은 미사일방어체제 도입 등 미국의 무기들을 사들이라고 한국에 요구했다. 이 해에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10억 달러 상당의 무기를 구매했다.

23일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 미국이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전시작전권 전환의 재연기를 합의해 주는 대가가 얼마가 될지 모른다. 한국이 구매하기로 결정한 F-35 전투기는 7조3천여 억원, 글로벌호크와 패트리엇-3은 2조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갈 것이라고 한다. 

미국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는 물론 심지어 미국령 괌의 군사력 증강의 비용 일부를 한국 정부가 분담해줄 것을 요구하는 움직임이다.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대북전단을 둘러싼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에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겠는가.

한국의 보수적인 정부와 세력이 북한과의 대립과 갈등을 통한 ‘적대적 공생’을 즐기려는 것 같지만, 그 궁극적 결과를 직시해야 한다. ‘북한붕괴론’의 결과를 냉엄하게 따져 보았는가.

‘북한붕괴론’ 자체가 논란의 문제지만,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경우 그 과정에서 제2의 한반도 전쟁이나 내전 상황이 전개될 게 분명하다.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북한 핵무기의 안전한 관리를 이유로 미국과 중국이 개입하게 될 것이고 심지어 유엔의 깃발아래 일본 군대까지 한반도에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다.

제2의 한반도 전쟁은 곧 핵전쟁을 의미한다. 리언 패네타 전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2011년 10월 한국 방문 때 한반도 유사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터다. 지난 해 4월 미국의 작전명 ‘더 플레이북’에 따른 핵무기 사용 위협과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 발사위협이 서로 맞서면서 한반도의 ‘핵전쟁 금기’가 깨져버리고 핵전쟁 단계에 돌입하지 않았는가.

한반도 핵전쟁의 결과는 우리 민족의 공멸이다. 보수세력이 내세우는 ‘북한붕괴론’ 따위의 ‘적대적 공생’은 ‘적대적 공멸’로 끝나고 말 것이다. 

공멸의 한반도 전쟁이후 한반도의 통일 가능성은 과연 있는가. 미국과 중국 어느 쪽도 상대방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없기 때문에 두 나라의 타협으로 한반도는 다시 분단될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총이나 대포로 싸우는 ‘전쟁 놀음’ 하듯 박근혜 정부나 보수세력이 ‘원점타격’을 위협하며 ‘전쟁불사론’을 부르짖을 계제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항공법으로 광화문 지역에서의 사이버 사찰전단의 공중 살포는 막으면서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험하게 만들 대북전단 살포는 왜 금지하지 않는가. 국군수도방위사령부는 바람에 날리는 것은 비행체가 아니라며 보수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지 않을 방침이라고 한다. 누구를 위한 군대인가.

‘북한 붕괴론’ 따위의 적대감을 동력으로 독재 권력을 강화하려는 ‘적대적 공생체제’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이 실종되고 전쟁 위기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정작 부르짖어야 할 것은 ‘북한붕괴론’이 아니라 ‘적대적 공생체제 붕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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