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KBS이사장이 2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 KBS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하자 야당 의원들이 “공영방송 이사장으로서 부적절한 역사관을 갖고 있다”며 이사장 사퇴를 요구했다. 이 이사장은 이날 오후 3시경 출석하며 “아침부터 나왔어야 했는데 죄송하다”며 “집행부 충고 때문에 오후에 나왔다”고 말했다. 이인호 이사장의 출석으로 미방위 국감장은 때아닌 근현대사 논쟁으로 흘렀다.  

이인호 이사장은 이날 국감장에서 자신을 둘러싼 부정적 여론을 언급하며 “인터넷 보도내용이 말을 잘못 연결시켜 정확하지 않은 것이 많다”고 말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그의 조부 이명세씨의 친일행적을 옹호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명세씨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징병제를 찬양했던 인물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4인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이인호 이사장은 KBS이사장으로 선출된 이후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조부는) 유학의 세를 늘려가기 위해 일제 통치 체제하에서 타협하면서 사신 것이다”라며 “그런 식으로 친일을 단죄하면 일제 시대 중산층은 다 친일파다”라고 발언했다. 이 이사장은 이날 국감장에서도 이와 같은 인식을 유지했다.

국감장에서는 이 같은 이 이사장의 역사관이 공영방송 이사장으로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 이사장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TV매체들에 아직도 상당히 국가의식이라든가 그런 면에서 바르지 못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라고 말한 사실을 언급하며 “이런 편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이사장을 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공영방송은 중립성과 공영성이 생명인데, 갈등이 심한 역사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이사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 이인호 KBS이사장(맨 오른쪽).
@연합뉴스
 

이에 대해 이인호 이사장은 “편협한 역사관을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한 뒤 KBS를 가리켜 “직원이 5000명이면 서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 역사관이 없는 사람이 이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 이사장은 본인의 역사관을 가리켜 “태극기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면 다 동의할 수 있는 역사관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인호 이사장은 지난 6월 19일 TV조선 <시사토크 판>에 출연해 문창극 전 총리지명자의 교회 강연 영상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를 비판하면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발언을 했던 이 이사장은 역설적이게도 해당 강연 영상을 최초 보도한 KBS의 이사장으로 발탁됐다. 이인호 이사장은 “문창극 총리 후보자와 관련해서는 지식인의 정직성을 이야기한 것이다”라며 “총리 임명은 국회가 하는 것인데 언론이 여론재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고 밝혔다. KBS의 문창극 강연 보도에 대해서는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았다”며 문제적 보도였음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이인호 이사장은 국감자리에서 자신의 역사관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그는 “김구 선생은 임시정부의 수반까지 하면서 독립운동가로 대단히 훌륭했으나 대한민국 독립에는 반대했기 때문에 그 의미에서 대한민국 공로자로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고 독립운동가로 대우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이어 “역사관과 업무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본다”고 밝힌 뒤 “일부에서 부당한 공격이 들어오는 걸 보고 (이사장)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보며 이사장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뜻이다. 

공영방송 이사장으로서의 업무 이해도는 부족해보였다.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영방송 지배구조개선과 관련된 특별다수제에 대한 입장을 묻자 이인호 이사장은 “깊이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다”고 답했다. 이에 유 의원이 “전경련에 외부 강연할 시간은 있고, 생각할 시간은 없었나”라고 추궁하자 이 이사장은 “이사장 자격시비 얘기가 하도 많아 본 업무를 하고 싶은 만큼 하지 못했다”고 받아쳤다. 정호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만약 공영방송 이사장이 특정 입장에 치우친 좌파라면 괜찮겠나”라고 묻자 이 이사장은 “친북‧종북 좌파는 절대 안 된다. 진보 성향의 좌파는 가능하다”고 답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인호 이사장이 공영방송 이사장으로서 자격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은 “이인호 이사장의 역사관에 동의한다”, “이사장하면서 강연도 할 수 있다”, “북한체제 찬양하는 사람조차도 휴전선 넘어가서 살라고 하면 절대 안 간다”라고 말하며 이 이사장을 지지했다. 배덕광 새누리당 의원은 이 이사장을 향해 “소신있는 발언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