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가 출판계의 단통법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단통법은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의 줄임말이다. 지난 1일 단통법이 시행되면서 휴대전화 단말기 보조금이 법제화되고 최대 34만5000원을 넘지 못하게 됐다. 당초 계획했던 분리고시 조항이 삼성전자의 반대로 빠지면서 단말기 구매 비용이 걷잡을 수 없이 뛰어오르고 상대적으로 통신사들 이익이 늘어났지만 정작 통신 요금은 내리지 않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다음달 21일 시행될 도서정가제 역시 정확히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개정된 도서정가제는 할인율을 신간과 구간 구분 없이 정가의 15% 이내로 제한하되 출간 이후 18개월이 지난 구간은 가격을 다시 책정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현재 신간은 정가 10% 이내의 직접할인에 판매가 10% 이내의 마일리지나 쿠폰 등 간접할인을 추가 허용하고 있다. 할인율이 최대 19%에서 15%로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단통법이나 도서정가제나 마케팅 과열을 규제하는 제도지만 단통법은 이용자 차별을 막는다는 명분에서 출발했고, 도서정가제는 출판사들의 최소 이익을 보장한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실제로 단통법은 과점 상태의 통신 3사들의 담합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가뜩이나 가격 경쟁이 제한된 상황에서 마케팅 비용을 규제하면 과점 사업자들의 이익이 늘어나게 된다. 

   

▲ 다음달 21일 도서정가제 시행을 앞두고 출판업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사진은 교보문고 종로점. ⓒ연합뉴스.

 

 

출판시장은 과점 상태의 통신시장과 달리 수많은 출판사들이 출혈경쟁을 벌이며 난립하는 구조다. 단통법 시행 이후 통신사들이 사실상 가격 담합을 하면서 단말기 가격을 떠받치고 있지만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더라도 편법 가격 할인이 계속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픈마켓이 도서정가제를 우회하는 통로가 될 거라는 우려도 나오고 카드와 통신사 제휴 할인을 남용하거나 중고 서점을 이용한 변칙 할인 가능성도 거론된다. 

도서정가제를 가장 환영하는 건 온라인 서점들의 파격적인 할인 공세에 맞서 고사 위기를 맞고 있는 동네 서점들이다. 그러나 4% 남짓 할인 폭이 줄어든다고 해서 온라인 서점으로 몰렸던 고객들이 동네 서점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출판사들 입장에서도 할인율이 낮아진다고 해서 당장 책 판매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당장 이익이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책 가격에 반영될 거라고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독자들 입장에서는 할인율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책값이 더 비싸다고 느껴 구매를 꺼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변칙 할인을 막을 수 없을뿐더러 인위적으로 할인율을 제한할 경우 정가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죽어나는 건 출판사들이고 애초에 인터넷 서점은 손해볼 일이 없다는 불만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 16일 대한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공청회에서는 업계 불만이 쏟아졌다. 

정덕진 햇빛문고 대표는 “도서정가제는 또 다시 반쪽짜리 도서할인법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도서정가제 무용론’까지 거론했다. 정 대표의 주장은 첫째, 경품과 배송료, 카드사 또는 통신사 제휴를 통한 할인을 모두 ‘경제상의 이익’에 포함시켜야 하고, 둘째, 전집(세트)도서의 경우 낱권 도서보다 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편법적 할인을 규제해야 하고, 셋째, 도서정가제를 위반할 경우 사재기 처벌 수준에 상응하는 과태료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민기 교보문고 마케팅지원실 실장은 “오픈마켓 사업자들이 판매자와 별개로 추가 할인을 제공할 경우 도서정가제가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병희 예스24 도서사업본부 팀장은 “일부 출판사들이 직접 운영 중인 북카페 등에서 이른바 리퍼도서를 할인 판매하고 있는데 명백한 도서정가제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조재은 양철북 대표는 “문화부가 도서정가제를 제대로 시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는 한지 의문스럽다”고 비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출판인쇄산업과 김일환 과장은 “예고된 일정에 연연하지 않고 제도 보완을 하겠다”고 밝혔다. 도서정가제 시행이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다. 김 과장은 특히 편법할인 방지를 위해 중고도서 범주에 기증도서를 제외하는 방안 등 일부 요구를 수용할 의사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과태료 상향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이라 향후에도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단통법 시행 이후 통신사들은 뒤에서 웃고 있지만 단말기 판매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현장의 판매점들은 영업 중단 위기를 맞고 있다. 도서정가제도 당초 취지와 달리 자칫 가뜩이나 얼어붙은 출판시장을 더욱 위축시킬 거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편법 할인이나 변칙 판매도 문제지만 출판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아무리 싸게 팔아도 책이 안 팔린다는 데 있다. 싸게 팔지 못하게 하는 법이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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