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재판에 임하면서 다음과 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가 공공복리와 질서유지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했을 때, 우리 사회는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기준을 세우는 재판이 되길 바랍니다. 인권을 옹호해야 할 책무를 지고 있는 변호사를 공권력에 대항했다는 이유로 집회 현장에서 끌어다 법정에서 세웠다면 그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피고인 모두진술 중)

‘거리의 변호사’ 권영국 변호사가 지난 20일 법정에 섰다. 변호인이 아니라 피고인 신분이다. 지난 6월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수사부(부장검사 김동주)는 권 변호사를 기소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특수공무집행방해, 일반교통방해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권 변호사가 지난해 서울 중구 대한문 앞 집회에서 경찰의 질서유지선을 임의로 치우고 화단 앞에 서 있던 경찰들을 밀치거나 때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권 변호사는 “강도는 안 잡고 강도 잡으라고 소리 친 사람을 고성방가죄로 잡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경찰은 화단 보호를 이유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집회를 막았다. 경찰은 집회제한통보 처분을 내렸으나 법원은 해당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권 변호사는 피고인 모두진술에서 “그러나 경찰은 자신의 위법성을 시정하기는커녕 집회 장소에 통행선을 설치하고 바로 뒤에 병력을 배치해 집회 장소를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 올해 초 열린 '국민파업집회'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권영국 변호사가 합법적인 행진을 막고 있다며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동료 변호사들도 권 변호사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권 변호사의 변호인은 85명에 이른다. 20일 공판에는 38명의 변호사가 변호인 자격으로 법정에 출석했다. 윤승은 재판장은 “올해 우리 재판부가 이 법정을 사용한 이래로 가장 많은 인원이 나온 날”이라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동료애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이 사건이 가지는 성격 때문일 것”이라며 “이번 재판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탄압의 성격을 가진다”고 말했다. 

‘거리의 변호사’라는 별명처럼 권 변호사는 집회 시위 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시작부터 그랬다. 그는 2002년 민주노총 법률원을 만들면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부터는 6년간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노동자들의 집회 현장에 그가 있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연행되고 소환되고 기소된 것은 이명박 정부 이후부터다. 권 변호사는 “변호사가 항의·문제제기를 했다고 체포하거나 입건하는 건 예전에는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2009년 그는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노동자들에게 접견권을 행사하려다 공무집행방해죄와 상해죄 혐의로 체포됐다. 1심과 2심은 권 변호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검찰이 항소해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이번 재판은 두 번째 검찰 기소에 의한 것이다. 권 변호사는 이를 두고 “정권의 속성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권이 국민의 기본권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경찰의 태도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 경찰에 항의한 권영국 변호사가 경찰이 뿌린 최루액을 맞고 괴로워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지금 경찰은 자신들을 국민의 봉사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국민을 감시하고 계도하는 지위에 있다고 본다. 이는 권력의 속성과도 맞닿아 있다. 정권이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하면 경찰도 그렇게 한다. 권력이 국민을 관리감독의 대상으로 보면 경찰도 역시 그렇게 한다. 지금 경찰은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시위를 ‘관리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용납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권 변호사의 혐의 중 하나인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죄는 벌금형이 없고 징역형만 있다. 따라서 유죄를 받게 될 경우 그는 변호사 자격을 잃게 된다. 집행유예가 나와도 마찬가지이다. 권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을 잃는 경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고 당연히 무죄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데 법정 변론이라는 걸 예단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유죄를 받게 되면 명예회복은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애초 현장에 가지 않았다면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이다. 이에 대해 그는 “변호사법 1조 1항은 법정에서만 권리를 옹호하라고 하지 않는다. 사회의 모든 권리침해 현장을 옹호하라고 한다”며 “변호사의 역할이 제한된 장소에서만 있다고 생각하는 변호사가 있다면 다시 변호사법을 공부해야 한다. 내가 유별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변호사법 1조 1항은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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