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앞’이란 말은 ‘역전(驛前), 즉 역의 앞쪽의 잘못’이라고 사전에 나온다. 잘못인 채로 실생활에서 많이 쓰인다. 前이 ‘앞’의 한자어임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말의 뜻에 대한 생각 없이 대충 질러 쓴 말이 굳어진 경우다. 역전이라고 하든지 역앞이라고 하든지, ‘우리말 바르게’ 성격의 글에 자주 나오는 얘기다.

나라[國]와 나라 사이[際]가 국제화 국제공항 등의 ‘국제(國際)’다. 한 나라에 한정하지 않고 (여러) 나라들이 서로 연결되는 것(인터내셔널)이고, 세계적인 것(글로벌)을 뜻하기도 하는, 현대 사회의 으뜸 키워드다. 

요즘 이 말에 ‘사이’의 뜻인 간(間)자를 붙여 국제간(國際間)이라고 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라 사이 사이’ 즉 또 다른 ‘역전앞’인 것이다.

요즘 대학 또는 학문분야에서 학제(學際)란 말이 자주 쓰인다. ‘국제’가 나라와 나라 사이이듯, 학제는 전문분야(학과) 사이(의 관계)다. 교육제도인 학제(學制)와는 다른 말이다. 

전문화로 인해 각 학문분야가 다루는 분야가 지나치게 좁아진 것이 최근 학문동네의 경향이다. 그래서 어느 한 학문만으로는 새 현실문제에 대처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머리를 들고 있다. 여러 학문이 함께 나서야 할 상황인 것이다. 한 사전(事典)의 해석의 일부분이다.

<예컨대 공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학 행정학은 물론이고, 화학 의학 사회학 경영학 등의 여러 측면에서 검토하고 전체적인 시야에서 생각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와 같이 여러 학문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학문영역 및 협업관계를 학제라고 한다.>

그런데 현장에서 이 말을 ‘학제’라고 쓰는 경우는 별로 없다. 거의 모두가 ‘학제간’이라고 쓴다. 아마 국제간처럼 사이 간(間)을 덧붙인 것이겠다.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공부 좀 하시는 분들이 정작 문자 속은 헷갈려 ‘학문 사이 사이’의 역전앞을 만들어 쓰고 있는 것이다.

제(際)라는 단어가 열쇠다. ‘역전’의 前이 ‘앞’임을 몰랐던 역전 장터 사람들의 습성이 역전앞을 만들어 낸 것처럼, 국제간 학제간도 ‘제’라는 단어의 명확한 뜻을 떠올리지 못한 이들의 어중이떠중이식 어법임을 짐작할 수 있다.

글자를 풀어보자. 際는 언덕과 같은 땅의 형태를 의미하는 부(阝)자와 제사지낸다는 제(祭)자의 합체다. 신(神)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라는 뜻에서 여러 의미가 번져 나왔을 것이다. 으슥하고 후미진, 고요한 곳이지 않았을까. ‘그런 일’이나 ‘그런 때’도 그 글자와 함께 첫새벽 역사 속의 그들은 생각했을 수 있다.

   
▲ 강상헌 평론가·우리글진흥원장
 

즈음, 가, 끝, 변두리, 사이, 때, 닿다, 만나다, 사귀다 등의 際 글자의 (현대의) 여러 뜻은 무척 유용하다. 교제(交際)할 때의 제다. ‘이 때’ ‘때마침’의 뜻으로 쓰는 ‘차제(此際)에’에도 들어 있다. 땅과 하늘이 만나는 곳은 끝이나 변두리이기도 하면서 (하늘과 땅) ‘사이’가 된다. 국제와 학제의 제인 것이다. 

말에는 뜻이 있다. 역전앞처럼, 입에 익었다고 해서 버릇처럼 이 덜 떨어진 말 ‘국제간’ ‘학제간’도 그냥 써야 하는지. 국립국어원은 '국제간'을 '나라와 나라 사이'라고 (표준)국어사전에 올려둔 것처럼, 곧 학제간(學際間)이란 말도 올릴지 모른다. 그들이 받는 월급은 우리가 낸 세금이다.

 

< 토/막/새/김 >

문자의 새벽, 황하(黃河) 유역에서 살던 옛사람들은 제사(祭祀)를 어떻게 기록했을까. 옛글자 祭는 금방 썰어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토막을 손에 들고 제단(祭壇)에 올리는 그림이다. ‘보여 준다’는 시(示)자는 그 제단이다. 제단 위에 고기[육(肉) 왼쪽]와 손[우(又)] 모양 그림이 있다. 3천5백년전 그림이, 그들이 보고 그린대로, 오늘날에도 그대로 쓰이는 것이다. 그다지 많지 않은 이런 도안(기호)들을 합쳐 여러 뜻을 지은 것이 우리가 한자라고 부르는 문자다.  

   
▲ 제사 제(祭)자의 옛 글자들. 왼쪽은 갑골문, 오른쪽은 금문이다. 사진=이락의 著 ‘한자정해’ 삽화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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