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출입기자단이 이례적으로 대북 정책과 관련한 정부의 ‘거짓 브리핑’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통일부 기자단은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책임이 청와대에 있다며 정부의 비밀주의를 질타하기도 했다.

통일부 기자단은 20일 오후 통일부 장관실, 대변인실, 청와대 국가안보실, 홍보수석실로 보낸 성명을 통해 “민감한 남북관계 상황을 모두 공개할 수 없는 정부의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최소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10월 13일 북한에 ‘10월 30일 2차 고위급 접촉을 갖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기자단에 따르면 10월 15일 이 사실이 공개될 때까지 통일부 대변인은 공개‧비공개 브리핑에서 ‘검토 중이라 확정되지 않았다’ ‘북한에 제의할 시점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기자단은 이에 대해 “명백한 ‘거짓말’이었다”며 “거짓말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정부의 모든 발표를 믿지 못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기자단은 “이번 '거짓말 사태'에 대해 엄중하게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강력하게 요구 한다”고 밝혔다.

   

▲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이 지난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북한 고위급 인사 방한 관련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자단은 이번 사태의 책임이 단순한 통일부 대변인의 실수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기자단은 “청와대와 통일부의 정책 부서가 통일부의 공보 부서에 제대로 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며 “청와대나 통일부의 정책 담당 부서가 대국민 창구인 통일부 공보 부서에 최소한의 자료도 주지 않고 ‘공보 전선’에 내보내는 작금의 상황은 오보 양산의 배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황병서, 김관진 단독접촉’ 오보가 대표 사례다. 통일부는 16일 기자들에게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명의의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에게 단독 접촉을 제의해왔다고 밝혔고, 기자들은 속보로 이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30분도 지나지 않아 통일부는 둘이 만나는 것이 아니라 북측 대표는 김영철 정찰총국장이라고 말을 바꿨다. 기자들은 수정 기사를 써야했다.

지나친 비밀주의가 반복된 것이 기자들의 공개적 반발을 불렀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자단은 성명에서 “'투명하고 당당한 대북정책'을 천명했던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바뀐 것인가”라며 “'투명성 원칙'에 대해서는 각자의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정부가 약속한 것이라면 지키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한 통일부 출입기자는 “정부가 북한에 회담을 제안했다기에 통일부 대변인에게 확인요청을 했더니 ‘모른다’고만 하더라. 그런데 이후 북한이 대대적으로 이 사실을 발표했다”며 “기자들이 북한 발표보고 알아야 하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통일부 출입기자는 “남북관계는 국민적 관심사인데 최소한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하지 않나. 우리의 요구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라고 밝혔다.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은 2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난 주 브리핑을 통해 비공개 이유나 각종 논란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드렸다. (기자들 성명에) 대응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나 통일부의 정책부서가 통일부 공보부서에 정보를 주고 있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렇게 보는 시각이 있는 건 알고 있다”며 “하지만 유관부서 간에 정보공유는 잘 되고 있다”고 밝혔다.

기자단 성명은 기자단 전체 회의와 개별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나왔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기자단의 입장 발표와 성명 내용에 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기자단 성명전문이다.

1. 정부는 10월 13일 북한에 '10월 30일 2차 고위급 접촉을 갖자'고 제안했다.

10월 15일 이 사실이 공개될 때까지 정부의 대북 정책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통일부 대변인은 공개·비공개 브리핑에서 "검토 중이라 확정되지 않았다", "북한에 제의할 시점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명백한 '거짓말'이었다.

민감한 남북관계 상황을 모두 공개할 수 없는 정부의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최소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거짓말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정부의 모든 발표를 믿지 못하게 만든다. 이번 '거짓말 사태'에 대해 엄중하게 항의하고 재발 방지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2. 청와대와 통일부의 정책 부서가 통일부의 공보 부서에 제대로 된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이번 '거짓말 사태'의 뒤에는 통일부 대변인 개인의 실수 차원을 넘어서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청와대나 통일부의 정책 담당 부서가 대국민 창구인 통일부 공보 부서에 최소한의 자료도 주지 않고 '공보 전선'에 내보내는 작금의 상황은 오보 양산의 배경이 되고 있다.

지난 16일 '황병서, 김관진 단독 접촉 요구' 오보는 작금의 난맥상이 낳은 결과물이다.

정보도 권한도 없는 대변인을 통해 중대한 남북관계 상황을 알리는 것은 우리 언론인은 물론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임을 지적한다.

3. 남북관계 원칙을 지키라.

'투명하고 당당한 대북정책'을 천명했던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바뀐 것인가.
남북관계의 '투명성 원칙'에 대해서는 각자의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정부가 약속한 것이라면 지키는 것이 맞다.

정부는 최근 북한이 수차례 전통문을 보내 고위 군사 당국 접촉 개최를 제안한 것은 물론 정부가 2차 고위급 접촉 개최 날짜를 제안한 사실까지 비공개했다.

민감한 남북관계 사안을 모두 공개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미 예고된 2차 고위급 접촉 제안 사실까지 비밀에 부친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2014년 10월 20일

통일부 출입기자단

수신 : 통일부 장관실, 통일부 대변인실, 청와대 국가안보실, 청와대 홍보수석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