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경찰의 카카오톡 압수수색 수사와 세월호 참사 정부 대응을 연애하는 남녀 관계 사이로 풀이해 비판한 '대자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아홉시 반이다. 이제 내 카톡 좀 그만 뒤져"라는 제목의 대자보는  "자기야, 나 허위사실 유포한 적 없다니까. 맨날 나한테 오빠 믿지? 하더니 자기는 왜 못 믿어"라고 시작한다. 

그리고 "아니 그리고, 사귀는 사이에...내가 자기한테 섭섭한 거 친구들한테 투덜댈 수도 있는 거 아니냐"라며 "왜 그게 우리 사이를 모독하는 일이 되는 건데"라고 썼다. 

지난 9월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향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라고 발언한 이후 검찰이 전담 수사팀을 두고 허위 사실 및 명예훼손을 강력 수사하겠다고 밝히면서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을 남녀 사이의 일로 비유한 것이다. 

또한 대자보는 "욕 먹기 싫으면 잘하든가. 남친으로서 일은 하나도 안하고 내 돈 가지고 혼자 해외여행 다니는데 당연히 서운하지"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성과없는 잦은 해외 순방을 비꼬았다.

특히 이 대자보엔 "아무리 그래도 내 카톡이랑 페북 다 뒤지는 게 말이 돼", "7시간 동안 어딨었냐고 핸드폰 좀 보여달라했을 땐 사생활 침해라고 난리더니. 오빠 때문에 나 다 탈퇴했어. 이제 연락하고 싶으면 전보쳐"라고 씌여있다.

국민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높은 카카오톡 압수수색 수사를 비판하는 동시에 세월호 참사 당시 의문을 일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모순을 비판한 내용이다.

이 같은 내용의 대자보는 '아홉시반 주립대학 14학번 박은혜"라는 이름으로 올라와 SNS를 중심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해당 대자보는 19일 12시 기준으로 페이스북에서 660여번 공유됐고 2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다. 

'아홉시반 주립대학 14학번 박은혜"는 지난 8월에도 "아오 XX 그 시간에 대체 어디 있었냐고"라고 제목의 대자보를 통해 "어젯밤, 남자친구가 7시간이나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라며 "도대체 어디서 뭘 했냐고 다그치니까 그런 건 사생활이라며 가만히 있으라네요. 아니 연인 사이가 그럼 공적인 사이인가"고 쓰기도 했다.

또한 그는 "뭐했는지 핸드폰이라도 보여달라 했더니 싫은데? 이러고 앉아있네요. 아오 XX. 이래도 제가 가만히 있어야 돼요? 저, 수사권 줘야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유족이 요구하는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셈이다. 

해당 대자보에 나와 있는 아홉시반 주립대학은 지난 5월 한 광고회사의 소주 제품 마케팅의 일환으로 내놓은 캠페인 이름이다. '개념있는 음주시민 양성'이라는 설립이념을 내건 가상대학으로 김제동씨를 총장으로 내세우고, 진중권, 박기원 교수, 유병제 방송 작가 등이 교수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 한 광고회사의 마케팅 일환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비꼰 대자보 내용.
 

김제동씨는 아홉시반 주립대학 홈페이지에는 인사말을 통해 "아홉시반 酒립대학은 '술자리에서 배우는 것이 진짜 인생이다'라는 이념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아홉시반 酒립대학에서 함께 이야기하며 인생이라는 주제에 대해 서로서로 배워나가기를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아홉시반 주립대학’은 홈페이지 개설 이후 하루 방문자 수가 최대 35만명을 이르는 등 성공적인 마케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홈페이지 ‘오늘의 대자보’ 코너에는 화제를 모은 이번 대자보 뿐만 아니라 직장내 성희롱 세태, 술문화, 불심검문, 반값등록금 문제 등 사회 부조리한 문제를 비꼬는 내용의 대자보가 게시돼 있다. 

마케팅 캠페인을 맡고 있는 이민규씨는 블로그를 통해 "채널을 통해서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일까요"라며 "단순히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공유하고 공감하는 소통"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인생의 많은 것들을 알려준 술자리의 개념에서 시작된 캠페인"이라며 "술자리에서 술자리에 대한 개념을 생각하다가 성인이 되고 나서는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이성, 연애, 진로, 고민 등을 술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술자리에서 '진짜 공부'가 이뤄진다는 모토를 내세워 소주 제품을 마케팅하고 있는 것인데, 화제가 된 대자보 내용 역시 소주 제품과는 상관없이 술자리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담으면서 여론과 소통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반 기업에서 진행하는 마케팅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정치적인 내용이고 박근혜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꼬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논란도 예상된다. 

아홉시반 주립대학 운영 담당자에 따르면 홈페이지에 올라온 대자보는 마케팅을 담당한 광고회사와 광고 의뢰 회사(소주 제품 회사), 제작사가 공동 협업으로 내용을 조율해 올리고 있다. 

담당자는 "학교가 아닌 술자리가 진짜 인생을 배울 수 있다는 취지로 켐페인이 진행되고 있다"며 "정치적인 색깔을 갖고 위험 수위의 발언으로 볼 수 있지만 대자보라는 것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학생들의 수단이고 누구를 직접 비판하고 잘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술자리에서 터놓고 싶은 얘기들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담당자는 "위험하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반대로 사소한 술자리에서 터놓고 할 수 있는 얘기를 다룬 것이고 카톡 문제 역시 우리 일상의 문제"라며 "술자리에서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은 것들을 얘기 하는 정도로 보면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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