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6일,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혼외자식이 있다는 조선일보 1면 보도는 총장을 낙마시켰다. 그리고 많은 물음표를 남겼다. 물음표 중 하나는 공인에 대한 사생활 보도가 어느 선까지 허용 될 수 있는 지였다. 17일 언론중재위원회가 마련한 ‘공인보도와 인격권’ 토론회에서는 대중의 관심사여도 개인의 내밀영역은 언론보도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며, 설령 보도한다해도 그로인한 사회적 이익이 더 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또한 조선일보의 채동욱 혼외자 보도가 순수한 의혹제기로 볼 수 있느냐는 점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재형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발제문에서 독일의 인격영역론을 참조해 인격권의 보호범위가 내밀영역, 사적영역, 사회적영역, 공적영역 등으로 나뉘며 이중 내밀영역은 성적 영역에 관한 사항으로 제3자의 침입으로부터 가장 강력한 보호를 받기 때문에 정치가와 같은 공인도 내밀영역의 보호를 받는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채동욱 전 총장의 내밀영역을 침입했다.  
  
언론사가 내밀영역을 침입하려면 인격권 침해를 상쇄할만한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가 필요하다. 김재형 서울대 교수는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유명 저널리스트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보도를 금지한 판결이 있다”며 “사생활 보도를 막을 만한 공공의 이익이 없다고 본 것”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채동욱 전 총장에게 내연녀가 있고 혼외자식이 있다는 보도는 채 전 총장의 인격권을 무너뜨려야 할 만큼 사회적으로 정당한 관심사였을까. 

   
▲ 채동욱 전 검찰총장.
@연합뉴스
 

결국 관건은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에 있다. 대법원은 언론의 사생활 침해와 관련해 “사생활의 비밀은 공중의 정당한 관심대상이 아닌 한 비밀로서 보호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당한 관심사라면 내밀영역을 침입해도 위법성 조각사유가 인정된다. 김재형 교수는 “공인의 사생활보도는 이익형량을 통해 위법성을 판단하지만 판결이 일관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한국에선 언론의 위법성 조각사유를 판단할 때 표현의 자유로 얻는 이익과 취재대상의 인격권을 존중해 얻는 이익을 비교한다. 이것을 법적용어로 ‘이익형량’이라 한다. 대통령도 내밀영역은 보호받지만 언론이 내밀영역을 공개하려면 공개했을 때의 사회적 이익이 더 커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채동욱 총장의 ‘불륜’을 공개했을 때 얻은 사회적 이익은 무엇이었을까. 현재로선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으로 정통성이 흔들렸던 대한민국 정부 만이 오직 이익을 얻었다.

이와 관련해 권석천 중앙일보 사회2부장은 “검찰이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국가정보원장을 기소하고 몇 달 뒤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 사건이 터지며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며 “정치적 공방 상황에서 관련 핵심인물의 사생활 의혹이 제기되었을 때 순수한 의혹제기로 볼 수 있는지, 어떤 목적이 있는 건지 세밀하게 판단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2013년 9월 6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사생활 보도에서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 여부’를 판단할 때, 보도가 나가던 당시의 정치적 맥락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권석천 사회2부장은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과정에서의 맥락과 상황이 어떠했느냐가 중요하다”며 세미나 참석자들을 향해 “언론 보도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인식하고 경각심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다. 권 부장은 “보도의 현실적 악의를 판단하는데 있어 구체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제민 서울남부지방법원 판사는 “공인이라고 무조건 보도의 허용범위가 넓다고 할 수 없다”며 “사생활 보도가 진실한 경우를 전제했을 때에도 굳이 그 보도가 있어야 했느냐는 공익성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제민 판사는 “사생활 공개에 공공이익이 있다면 감수해야 하지만 불륜 보도가 공익성이란 요건에 해당하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제민 판사는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채동욱 혼외자식’ 보도가 설령 사실이더라도 저널리즘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재형 서울대 교수도 “내밀영역을 보도할 경우에는 엄밀하게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인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특히 어린 아이이 사생활은 중요하게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채동욱 혼외자식 보도의 경우 채 총장의 혼외자식으로 지목된 어린이가 사실상 대중에 노출돼 사진과 관련정보가 떠돌았다. 박용상 언론중재위원장은 “검찰총장이라는 직위의 중요성이 내밀영역을 보도하는 평가의 주된 관점이 되고 아들은 불가피하게 수인될 수밖에 없다. 피할 수 없는 손해이다.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박용상 위원장은 이어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를 대변하고 판단하는 권한은 판사가 독점 한다”고 말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혼외자식 보도와 관련한 조선일보와 소송을 포기해 해당 보도가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였는지, 위법성이 있는지 법정에서 가리기는 아직 어렵다.

[기사일부 수정 10월 20일 오전 10시19분]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