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서 늘 고민인 것이 있다. 사건 사고가 나기 전에 언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쉬이 답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에 노후 선박의 안전관리 문제를 누군가 지적했더라면, 쌍용차 해고노동자 26명이 죽기 전에 누군가 이들의 아픔을 돌봤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이런 희생과 아픔을 피할 수 있었을까.

대개 사건 사고는 표면적이다. 이면에는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가 틀어박혀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자로서 구조적인 문제를 다루기는 쉽지 않다. 많은 구조적인 문제들이 사건 사고가 터지기 전에는 시의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언론에서 다뤄진 주제는 '그거 이미 다룬 얘기 아니냐'는 핀잔을 듣기 쉽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결국 문제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곪다가 터진다. 누군가 다치고 죽어야 다시 관심을 받는다. 물론 누군가가 관심을 갖는다고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도 해결될 가능성을 높일 순 있다. 한명 한명의 관심이 모여 '티핑포인트'를 넘는 순간 변화가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적인 문제에 천착해 기사가 될 수 있는 팩트와 이야기를 발굴해야 하는 것이 기자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한겨레>가 '손잡고'와 공동 기획으로 지난 4개월간 손해배상 가압류에 시달리는 노동현장을 찾은 것도 비슷한 취지였다. 게다가 이번 기획은 다소 뒷북치는 격이었다. 이미 '노란봉투'의 훈풍이 한차례 불었기 때문이다. 혹여나 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면, 지난해 12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불법파업으로 회사와 대한민국 경찰에 끼친 손실 47억원을 배상하라고 법원이 판결했다. 그 뉴스를 보던 세 아이의 엄마인 배춘환 씨는 손에 쥐고 있던 아들의 태권도장 회비를 노란봉투에 담아 정갈한 편지와 함께 시사주간지 <시사인>에 보냈다. '자신처럼 4만7000원씩 10만명이 도와주면 47억원을 대신 갚아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이었다. <시사인>은 이 편지 내용을 보도했고, 이로 인해 이효리와 노암 촘스키 등 국내외 명사들과 시민들 4만7547명이 '노란봉투' 캠페인에 참여해 14억7000원을 모았다. 일회성 캠페인으로 그치지 말자는 목소리는 지난 3월 '손잡고'라는 손배 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모임 결성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 뒷북 기획을 시작한 이유는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손배 가압류는 해묵은 문제다. 1989년 통일중공업(현 S&T중공업)이 노조를 상대로 손배 청구를 시작한 이후로 손배 청구는 기업이 노조를 압박하는 효과적인 수단임이 입증됐다. 손배 청구 건수는 1989년 1건, 1990년 10건에서 1991년 23건으로 늘었고, "6개월 넘게 급여 받은 적이 없지만, 이틀 후 역시 나에게 들어오는 돈은 없을 것이다"라는 유서를 적고 분신한 두산중공업의 노동자 배달호 씨는 회사가 일반 조합원에게까지 손배를 청구한 첫 사례였다. 2003년 두산중공업과 한진중공업에서 배달호, 김주익, 곽재규 등 세 명의 노동자가 '손배 가압류' 철폐를 부르짖으며 목숨을 끊자, 손배 가압류가 단 한번 전사회적인 의제가 됐다. 하지만 그때 뿐이었고, 이 문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현재 손배 가압류가 걸린 사업장은 17곳, 청구액은 1690억원에 달한다.(올해 6월 기준, 민주노총 추산)

많은 이들이 '배달호'를 기억하지만, 그와 함께 징계를 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매일 두산중공업 정문 앞으로 출근해 '복직'을 외친다는 것을 모른다. 많은 이들이 '창조컨설팅'이 노조 파괴를 기획하는 '나쁜' 업체였다는 것을 기억하지만, 창조컨설팅이 휩쓸고 간 기업 7곳에서 노동자들이 청구 받은 손해배상 청구금액이 584억원이라는 것은 모른다. '민영화 반대'를 외치던 철도노조가 탄압을 받자 전국 대학교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불었다는 것은 기억하지만, 철도노조가 자체 모금으로 손해배상금 124억원을 갚고도 또 201억원을 청구 받은 것을 모른다. 취재한 것을 보도하지 못하게 막는 경영진에게 항의하며 파업을 한 MBC의 언론인들이 불과 두달 전에 33억원의 가압류가 풀렸다는 점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도 어떤 기업에선 6년 넘게 월급의 절반이 가압류되고 있고, 회사는 가압류를 풀어주는 대신에 '퇴사' 혹은 '노조 탈퇴'를 노동자에게 겁박한다.

   
▲ 윤형중 한겨레 기자
 

이번 기획을 연재하며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 "왜 불법 파업을 옹호하냐. 합법적으로 파업하면 손해배상금을 내야할 일도 없지 않느냐"는 항의가 꽤 있었다. 이런 지적도 타당성이 있다. 다만 지난 수십년간 정리해고, 민영화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얼마나 위협했는지를 똑똑히 보아왔던 사람들에게 '불법이기 때문에 반대하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 '불법 파견을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내며 단체행동에 나선 것 자체가 불법이 될 줄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미리 알고 있었을까. 정부와 기업이 그리 중요시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춰봐도, 한국처럼 노동 3권이 헌법 안에서만 잠자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무엇보다 다른 국가에는 '손배 청구'라는 법적 수단을 무기삼아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문화 자체가 없다. 한국 노동자들이 겪는 이런 특수한 어려움을 조명한 것이 언젠가 시작될 변화의 밀알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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