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 10조원의 포털 공룡이 탄생했다. 1일 다음카카오의 기자간담회는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기자들로 들어찼다. 온갖 장밋빛 전망이 넘쳐났지만 기자는 이날 진심으로 다음카카오의 미래가 걱정됐다. 최근 검찰이 소셜 네트워크를 집중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히면서 카카오톡을 버리고 텔레그램 등 해외 메신저 서비스로 갈아타는 이른바 사이버 망명이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최세훈·이석우 공동대표는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법에 따라 협조를 해야 한다”는 게 공식 입장이었고 텔레그램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답변했다. 수많은 기자들을 불러 놓고 오해와 불안을 불식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적극적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즈니스적으로 구체적인 비전이나 전략을 제시한 것도 아니었다.

   
다음카카오 최세훈(좌), 이석우(우) 공동대표가 1일 열린 출범 기자간담회에서 다음카카오의 CI를 선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음카카오 제공.
 

내가 만약 다음카카오의 사장이었다면 이날 이런 답변을 했을 것 같다.

“우리는 지금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다음카카오의 명운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음카카오의 모든 비즈니스 모델은 이용자들의 신뢰에 기반하고 있다. 이용자들이 떠나면 다음카카오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오늘 이 자리는 다음카카오의 출범을 알리는 자리지만 동시에 이용자들의 불신과 오해를 해소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

이날 이석우 대표는 “오해가 많은 것 같다”고 했지만 굳이 그걸 적극적으로 풀려고 하지 않았다. 시간이 부족해서였을까. 아니면 단순히 기자들을 불러다 놓고 다음카카오 출범을 홍보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내가 이석우 대표였다면 이런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가장 흔한 오해는 검찰이나 경찰이 달란다고 마구잡이로 개인정보를 다 내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과거에는 정보통신망법에 근거해 협조 요청을 받으면 통신 기록을 내줄 때도 있었지만 2012년 이후에는 협조를 전면 중단했다. 물론 그때까지는 달라는 대로 거의 대부분 내줬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법원에서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 협조에 의무적으로 응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이 나왔고 그 뒤로는 법원에서 정식으로 영장을 발부받아 온 경우에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이석우 대표의 답변은 이랬다.

“안타까운 일인 건 맞다. 하지만 어떤 서비스도 해당 국가의 법에 따라야 하므로 협조해야 한다. 예상은 안 되지만 큰 파장은 없었으면 한다.”

부실한 설명도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면서 수세적인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는 건 정말 안타까울 정도였다.

내가 이석우 대표였다면 “검찰이나 경찰의 편의에 따라 마구잡이로 개인정보를 뒤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철저하게 영장을 발부받은 경우에만 협조를 하고 있으나 여전히 영장 발부가 남발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적당히 검찰과 경찰에 공을 떠넘기고 선을 그었을 것이다.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기는 부담스럽겠지만 “국가 권력의 사생활 침해는 반드시 필요한 경우로 최소화해야 한다”는 정도의 언급은 필요했을 것이다. 수사적인 멘트일지언정 이런 사안에서 정부에 밉보이지 않으면서 이용자들의 신뢰를 동시에 얻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석우 대표는 어정쩡한 태도로 얼버무리는 데 그쳤다.

이런 질문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면 공개 가능한 최소한의 데이터를 제시해서 우려를 불식시키거나, 구글처럼 정기적으로 투명성 보고서를 만들어 개인정보 제공 사례를 공개하겠다고 밝히는 등의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석우 대표 등이 정확히 상황 판단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텔레그램은 종단간 암호화로 애초에 서버를 압수수색하더라도 데이터에 접근할 수가 없는데 카카오톡은 암호화되지 않은 상태로 데이터를 서버에 저장한다. 기자가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묻자 이석우 대표는 “서버 암호화는 확인해봐야 한다”면서 “설령 암호화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경찰이 서버를 들고갈 수는 없다”고 답변했다. 텔레그램과 비교해서 카카오톡의 보안 위험을 지적하는 기사가 수없이 쏟아졌는데 최고경영자가 이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도 없이 기자들 앞에 나왔다는 이야기다.

이런 질문이 나올 줄 몰랐다면 상황판단에 둔감한 것이고 나올 줄 알았는 데도 준비를 하지 않았다면 무책임한 것이다. 사실 어느 쪽도 납득하기 어렵다. 신뢰의 위기는 다음카카오의 미래를 뒤흔들 만한 심각한 위협이다. 수많은 데이터를 축적한 온라인 포털 서비스와 달리 모바일 인스턴트 메신저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갈아탈 수 있다. 최근 텔레그램 열풍처럼 동료 집단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경우라면 임계 포인트를 넘어설 경우 구조적인 변화가 시작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자간담회가 끝나고 한 외신기자가 나를 찾아와 물었다.

“CEO가 좀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 같죠? 자기네 서비스가 암호화가 돼 있는지 안 돼 있는지도 모르고요.”

다음카카오는 이날 연결을 키워드로 제시하고 “사람과 사람의 연결, 사람과 정보의 연결, 사람과 온·오프라인의 연결, 사람과 사물의 연결에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서비스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다음에 축적된 콘텐츠가 카카오톡의 모바일 플랫폼으로 옮겨가면서 좀 더 생활 깊숙이 파고드는 전략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시가총액 2조원의 다음이 통합 이후 기업가치가 10조원으로 불어난 것을 감안하면 비즈니스의 무게중심이 카카오톡으로 옮겨갔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포털 시대에는 네이버나 다음 등의 대체재가 많지 않았지만 모바일에서는 얼마든지 갈아탈 수 있고 애초에 서비스에 큰 차이도 없다. 플랫폼의 신뢰의 위기 앞에서 다음카카오의 CEO들은 너무 안일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음카카오의 최대의 위기는 CEO의 마인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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