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로마서 12장 15절)

느닷없이 이 성경구절이 떠오르는 것은 내가 특별한 신앙인이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어느덧 익숙해진 광화문광장에서의 시간이 던져준 화두여서는 더욱 더 아니다. 다만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마음, 인지상정(人之常情)의 상념에 빠져 이리저리 뒤척이다 새벽녘에 생각난 글귀다.

그들도 사람일진데, 어찌 저리들 무정하고 냉정할까. 그저 고통 받고 슬퍼하고 우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자는 건데, 끌어안고 같이 울어주자는 건데, 그들의 하소연을 귀담아 듣기라도 하자는 건데… 왜 그러지 않는 것일까? 보편타당한 인간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면, 상식적인 수준의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같이 울지는 못해도 짓밟아서는 안 되는 건데… 서북청년단이라니, 망령의 부활인가? 기절할 노릇이다.

   
▲ 세번 째 광화문에서 동조단식을 하는 박인식 감독 (사진=이숭겸 감독)
 

정치, 이념, 이런 것은 잘 모른다. 평소에는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문제이고 상식의 문제이다. 소중한 수백 명의 목숨이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하고 사망한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 쯤으로 치부하고 이제는 경제 좀 신경 쓰자고 한다. 이렇게 파렴치할 수도 있나?

먹고사는 것,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조금 덜 먹더라도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소중한 아이들을 잃은 부모로써,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잘못한 것인지, 잘못한 사람에게 벌은 제대로 줄 수 있는지… 단지 그것만 제대로 행해지기를 바랄 뿐인데, 부모로써 그 정도도 요구할 자격이 없단 말인가?

   
▲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이 함께 하는 간담회 (사진=박인식 감독)
 

무엇이 무서워서 입 다물고 있어야만 한다는 말인가? 특례입학, 거액의 보상금… 이따위 말도 안 되는 사실들을 유포시켜서 국민들을 갈라놓고, 인지상정마저 느끼지 못하게 막아서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는 유가족이 아닌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단원고 2학년 6반 호성이 어머니는 뒤늦게 발견된 아들의 시신을 보고 안아주지도 못했다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외친다. “아들아, 이렇게 더러운 나라인줄은 정말 몰랐다, 미안해…” 나도 들을 때 마다 항상 같은 대목에서 눈물이 나와 견딜 수가 없다. 도대체 누가 이런 오열을 하게 만든 것인가? 부끄럽고 안쓰럽고 가슴 아파서 보고 있기가 힘이 든다.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람이 사람다워지기 위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서,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아주 작은 행동을 할 뿐이다. 슬퍼서 울고 있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같이 울어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것밖에 할 수 없어 미안할 뿐이다.

   
▲ 궂은 날씨에도 동조단식을 이어가는 광화문 광장의 영화인 천막 (사진=이숭겸 감독)
 

비 오는 광화문광장의 을씨년스러움이 술을 부른다. 굉음을 내는 자동차 소리와 바람에 출렁이는 비닐천막 소리가 마치 내 마음을 조금씩 깎아내리는 파도처럼 들려와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는 밤이다. 허기보다는 허전함을 채워줄 따뜻한 소식을 기다리며 광화문에서의 세 번째 아침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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