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별 나라도 다 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도를 넘었다며  사이버상의 폭로성 발언과 허위사실을 처벌하라고 지시한다.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사이버 공간을 수사하겠다고 발표한다. 이어 사적 사이버공간까지 수사대상에 포함된다는 얘기와 함께 국민의 사이버 망명이 이어진다. 이 지구상에 그래도 민주국가라는 명패를 찬 나라 중 이런 나라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 16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 이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고 국가위상 추락, 외교관계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이버상의 국론을 분열시키고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오고 있다. 앞으로 법무부와 검찰이 이런 행위에 대해 철저히 밝혀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며 공안당국의 강력대응을 지시했다. 검찰은 대통령의 말씀이 나오자 바로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수사전담팀’을 발족, “유관기관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카카오톡과 같은 사적 사이버 공간까지 포함된다는 말들이 나왔다.

이런 행태는 민주주의 퇴행이 시작된 이명박 정권 시절부터다. 사이버상의 발언을 옥죄기 위한 온갖 수단이 동원됐다. 대통령을 욕하거나 정권을 비판하는 발언들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명박근혜의 ‘잃어버린 10년’은 그렇게 진행 중에 있다. 그래도 그때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거나 공안기관이 예비 검속하듯 앞장선 것은 아니었다. 체면치레나마 국회차원에서 일단 법으로 규제하겠다는 법치주의 형식논리를 갖추었다. 2008년 10월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은 당내 율사출신들을 총동원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단속하겠다는 결기를 보였다. 사이버 명예훼손의 처벌강화와 사이버 모욕죄의 추진이 그것이다.

이중에서도 블랙코미디는 사이버 모욕죄 신설이었다. 그리고 머리를 짜낸 꼼수가 사이버 모욕죄에 대한 적용조건이었다. 사이버 모욕죄 법안을 만들며 친고죄 대신 반의사불벌죄를 적용코자 한 것이다. 친고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가 가능하나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수사기관이 수사·기소할 수 있도록 돼있다. 검경이 나서 임의로 수사하고 처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쉽게 얘기해 사이버 상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욕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겠다는 것이었다. 법 적용의 선의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였다. 이 법안은 결국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쟁을 일으키는 수준에서 사멸되고 말았다.

   
▲ 9월 30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제43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
 

그러나 이번 경우는 2008년의 강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입을 막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주리를 틀겠다는 의도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최고의 공안기관인 검찰이 작심하고 나선 꼴이니 더욱 그 위세가 협박수준이다. 이번 조치는 명예훼손의 일반적 처리절차를 무시함으로써 정치적 악용의 소지와 함께 과잉처벌의 우려를 낳고 있다. 현행 형법의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로 친고죄 적용을 받는 모욕죄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그러니 사이버상의 모욕에 해당하는 사안도 아예 명예훼손 죄목에 포함시키겠다는 게 박근혜 정부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사이버 망명은 당장 필요조건이 되고 있다.

실제로 명예훼손죄는 친고죄에 준해 처리돼 왔다. 피해자의 고소가 없을 경우 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 명예훼손죄의 관행이라는 얘기다. 악용의 소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명예훼손죄는 태생부터 권력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이용됐다. 많은 선진국들이 이를 폐기한 것도 그 악용의 뿌리와 무관치 않다. 유엔 인권위원회가 우리 정부에게 이 법의 폐지를 줄기차게 권고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에 따르기는커녕 거꾸로 가는 게 이 정부의 국민에 대한 일관된 메시지다.

박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사이버 단속지시와 함께 거론한 내용들만 예로 들어도 하나같이 국민을 거스르는 것들이다. 세월호 참사 5개월을 맞으며 대통령이 고작 한다는 얘기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자는 주장은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로, 대통령으로서는 할 수 없고 결단을 내릴 사안도 아니다”였다. 지난 5월 19일 세월호와 관련한 대 국민담화 중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흘리던 눈물이 위선적인 ‘악어의 눈물’임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심지어 유가족들을 ‘순수’와 ‘외부 세력’으로 나누기도 했다.   

그는 또 민생법안 처리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국회의원 세비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나가는 것이므로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다. 국회가 국민에 대한 의무를 행하지 못할 경우 그 의무를 반납하고 세비도 돌려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을 공박한 뒤 내친 김에 그날 오후에는 새누리당의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9월30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모든 책임을 야당의원들에게 떠넘기는 발언을 했다. 삼권분립과 정당제의 기본정신마저 깡그리 무시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 김광원 언론인
 

경제민주화 등 대선공약을 헌신짝 버리듯 팽개치고, 증세없는 복지 약속 대신 복지없는 증세를 밀어붙이면서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조한다. 계속되는 인사참사에도 지난 대선에서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기업가를 엉뚱하게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낙점한다. 준정부기구이자 남북관계의 창구역할을 하는 적십자 총재 자리에 “영계를 좋아한다”는 인사를 앉히고 오불관언이다. 담배값 인상이 국민건강을 위한 것이라고 시치미를 떼기도 한다. 민주주의와 시민을 겁박하며 “어쩔래 국민들아”를 부르대는 모습이다. 배째라는 조폭을 닮은 것인가. 그래서 절박한 심정으로 묻는다. “국민이시여, 어찌 하시겠습니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