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법에 대해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입을 열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유가족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었던 불편한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고 삼권분립의 원칙, 국회의 역할, 대통령과 국민의 관계, 국가의 위상 등에 대한 박 대통령 나름의 견해를 피력했다. 안타까운 점은 박 대통령이 폭넓은 대통령의 도량을 보여주기보다는 사유의 부박함과 정치철학의 빈곤, 독재적 징후만을 국민에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했다는 것이다.

3분의 1정도의 임기가 지나가는 동안 박 대통령은 말과 행동에서 여러 가지 독선과 독단의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증진을 공약으로 내건 박 대통령이 집권 후 약속을 파기하고 이제는 민영화와 규제완화라는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야당과 국민에게 단 한마디의 설명도 사과도 하지 않았고 양해를 구한 적도 없다. 국민과의 약속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나의 길’을 가는 독재자의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을 수사하던 채동욱 검찰 총장과 윤석열 수사팀장을 끌어내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수사를 방해했다. 1심 법원은 지난 11일 이 사건의 주범인 원세훈 피고인에 대해 “정치개입은 맞지만 선거법 위반은 아니다”는 기상천외한 판결을 내렸다. 대통령의 수사 방해가 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독재적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경찰, 검찰, 국정원 등 국가 공권력이 사유화되어 행사될 때 그것은 곧 독재로 나타난다.

   
지난 11일 오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1심 판결 후 서울중앙지법 서관 앞에서 항소 입장을 밝히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진=강성원 기자
 

박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 발언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면서 “이는 국민에 대한 모독이며 국가 위상을 추락시키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세월호 참사 초기의 대통령 행적에 대한 이런저런 풍문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일견 일리 있는 지적처럼 보이지만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다. 풍문은 박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서 진상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국민은 누구나 대통령의 잘못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하며 합당한 비판을 ‘모독’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국가 위상의 추락도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것이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비판 자체가 국가위상을 추락시키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사생활’ 운운도 어불성설이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10여 년 전 사생활 문제까지 들추어냈던 청와대가 아니었던가. 따지고 보면 채동욱 총장의 경우 업무 연관성도 없는 그야말로 오래 전의 사사로운 개인의 문제였던 반면에 지금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선박침몰을 대형참사로 이어지게 한 대통령의 직무와 관계된 문제로 그 차이는 매우 크다.

억측과 소문이 난무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진실을 밝히지 않고 있는 대통령에게 있다. 일과시간, 그것도 엄청난 국가적 재난으로 온 국민이 대통령의 대처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황금시간에 대통령은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7시간 동안 행적이 묘연했는지 국민에게 소상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으며 세금 꼬박 꼬박 내는 국민은 그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세월호 침몰사고 당일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이 수상하다는 의혹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48)이 지난 18일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사진 = 연합뉴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라는 대통령 취임선서는 구두선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가 국민을 위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세비를 반납하라”고 국회를 질타했던 박 대통령이야말로 세비를 반납하고 직무유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하여 대통령이 결단하라는 주장에 대해 “그것은 삼권분립을 흔드는 일로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다”고 하면서도 여야의 2차 합의안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주장이다. 삼권분립은 입법, 사법, 행정이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서로를 견제하고 감시하라는 것이지 따로따로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회에 이런저런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국회 또한 대통령의 잘못된 생각과 언행을 비판하고 견제해야 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제대로 된 특별법을 만들어달라고 대통령에게 간청했을 때 삼권분립 원칙을 내세워, 내 소관이 아니라는 듯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권력분립의 기본원칙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가 국민이 원하는 특별법을 만들지 않고 있을 때 대통령이 나서서 제대로 된 법을 만들도록 국회에 촉구하는 것은 대통령의 마땅한 역할이다. 역으로 비상상황에서 행적이 묘연해 위기관리를 게을리 한 대통령에 대해 국회는 따지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삼권분립이다.

박 대통령은 또한 “세월호 특별법은 ‘순수한 유가족’의 마음을 담아야 한다”면서 ‘외부세력’을 언급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하는 유가족들을 순수하지 못한 ‘불순한 유가족’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불순’으로 생각하는 독재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외부세력’은 문득 34년 전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폭도로 내몰렸던 광주시민을 떠오르게 한다. 1980년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는 당시 5.18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광주시민들을 깡패, 간첩, 폭력배 등 ‘불순한 세력’으로 매도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배후조정자로 지목해 내란음모로 엮었다. ‘불순한 세력’과 ‘내란음모’는 후일 모두 신군부가 유포하고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모든 언론은 신군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썼고 많은 국민들은 그렇게 믿었다. 순수와 불순을 편가르기 하면서 ‘외부세력’을 운위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행은 5.18 당시 신군부의 여론조작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섬뜩한 공포를 느끼게 한다.

독재의 역사를 보면 독재에는 항상 부역하는 언론이 따르게 되어 있다. 즉 언론의 도움 없이는 독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도, 그의 후계자인 전두환도 적극적인 부역언론이 있어 쿠데타에 성공할 수 있었다. 과거의 부역언론에는 물리적 강제력이 작용했다면 지금의 언론은 스스로 독재권력과 한 통속이 되어있는 점이 차이를 가질 뿐이다.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 수많은 의혹들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항상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있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