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은 햇살로 가득했습니다.

각 종교단체와 민간단체에서 자원해서 나온 봉사단원들은 행인들의 발걸음을 잠시라도 늦추고자 호소하였습니다. 막사 안 단체장들의 단식 투쟁은 벌써 25~30일을 넘어섰고, 그들은 스쳐가는 행인의 슬픔조각을 받아먹으며 허기진 배를 달래는 듯 했습니다.

세종대왕 동상 너머 뵈는 푸른 지붕은 한창 숨바꼭질에 심취하는 중입니다.

‘너 술래야, 잡혔어’ 하는 대도 꿈쩍도 않고 말입니다.

사건의 인과도 제대로 규명 못한 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호도하는 현 정부와 한술 더 떠 유가족을 사지로 내모는 온갖 오문들이 난무하는 시기에 이들은 이토록 힘겨운 버티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 자발적으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고있는 사람들 (사진=독립영화인 이숭겸)
 

막사에 도착하여 10분쯤 지났을까, 한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오셔서 “영화인들 덕에 든든합니다. 저는 농성자금 벌기 위해 잠시 지방에 내려가요.”하며 막사식구들과 짧게 몇 마디를 더 주고받으시다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아주머니는 어떤 단체에도 소속된 분이 아닌 말 그대로 개인이었으며, 이곳에서 밤낮으로 궂은 일거리를 돕는다고 하였습니다.

가슴이 저릿하여 얼른 피켓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리지만, 저는 보수에 가까웠습니다. 순수 좌파들 틈에서 열정적으로 운동하는 척, 뒤에서 욕망을 채우는 이들이 싫었습니다. 과거 노무현에게 투표하지 않았고, 그를 허울 좋은 몽상가라 생각했습니다.

고백하건데, 다음 선거 때도 이명박에게 투표하였습니다. 아마 비극은 예정된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2009년 5월 시린 봄날, 그 이후로 저희 집 TV를 없앴고 현재까지 TV는 없습니다. 지인들에겐 그냥 ‘버렸다, 치웠다’ 고 말했지만 사실 제가 던진 재떨이에 박살이 났지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제 생명이 다할 때까지 기나긴 부채의식으로 남을 듯합니다.

   
▲ 천진우 작가 (사진=배우 홍연서)
 

그날 이후로 하나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단순한 선악구도로 이 좁은 나라를 투영하면 복잡해진다는 것입니다. 색깔론의 정쟁에 휘둘리는 대다수 국민들과 이들을 현혹하는 무리들, 또 중용의 미덕을 내세우며 제자리를 고수하는 일부 지식인들 틈에서 일개 국민이 제정신을 차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전 그래서 주위 사람들과 정재계의 가십을 늘어놓을 때 이데올로기를 접고 단순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집니다. 얽히고설킨 의도적 궤변과 선동 작당들에 대응하는 것조차 불필요함을 인지해야만 합니다. 저들이 만든 이념의 늪에 발을 놓는 순간, 사건은 순수성을 잃고 이념 싸움이 됩니다.

단순한 시각으로도 충분히 보이는 것들입니다.

유가족이 내세우는 ‘세월호 특별법’은 대안이 아니라 필요입니다.

눈과 귀를 막은 정부와 그들을 싸고도는 이상한 세력들은 특별법이 무슨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악법인양 오도하여 법치를 앞세워 무구한 국민들에게 겁을 줍니다. 인간을 위해 있는 것이 법이건만, 자신들이 틀어쥔 법으로 인간을 통제하려 합니다.

국회의사당 보수공사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바다 위에 떠있던 배가 침몰한 이유를 찾자는데

왜 ‘그네’들이 호들갑인지 이해불가지요.

늘 그랬듯 대통령은 때때옷 차려입고 이 나라 저 나라 예쁜 미소 날리시느라 여념 없으시고, 철없는 언론 일부는 세월호 사건을 이미 결재 처리된 서류처럼 취급합니다. 배가 침몰하여 많은 생명들이 사망한 사실만 뚜렷할 뿐, 무엇 하나 명확하지 못한 형국에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있을까요?

   
▲ 영화인 동조단식장에 감사인사를 전하는 자원봉사자 (사진= 박은하 PD)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단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세월호는 진작 침몰해버렸고, 시신은 건졌지만 기만과 거짓에 갇힌 영혼들은 구제할 방도가 없고, 유가족의 눈물은 이젠 신경계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무 때나 새어 흐릅니다.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는 ‘이제 웃으면서 싸웁시다.’ 라며 담대하게 말합니다. 자식 잃은 아비의 입에 띤, 그 쓸쓸한 미소를 그네들도 봤을지 궁금합니다.

‘유가족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

대한민국의 미래는 이 한 줄의 기로에 섰습니다.

우리는 오직 이것에만 집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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