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좋은 체험이었습니다. 잠들기 전의 공복이 좀 힘들었고, 아침 되니까 괜찮았는데..... 좀 있으면 밥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더 배고파지는 정도였습니다.

단식에 참가하는 것,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습니다. '의지'는 있어도 '시간'은 없다는 생각에 엄두를 못 낼 수도 있고, '하고는 싶어도' '나는 남들이 알아줄 만큼의 번듯한 사람도 아닌데......'라고 주저했었습니다.

혹시 육체적으로 고통이 너무 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단식 참가자들이 줄고 있다는 소식에 핑계보다는 의지를 조금 더 작동시켜 보았습니다. 아주 약간.

   
▲ 단식하는 동안 노란 리본을 만드는 영화인들 (사진=최은화 PD)
 

그리고 실제로 해보니,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단식 참가자들을 위한 많은 배려가 있었고, 단식장의 운영체계도 잘 안정화 되었으며, 추운 밤을 견디기 위한 침낭과 모포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덮고 잘 게 없을까봐 편의점에서 파는 은박돗자리 하나 준비해 갔었는데, 그것 참, 쓸데없고, 무안한 짓이었네요.

저녁에는, 단식참가 선배님들의 방문이 있고 대화가 있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사실 정치적인 성향이 있어서 이 이벤트에 참여한 것은 아닙니다.

일부에서는 '교통사고일 뿐이다'라고 축소하고 단순화 시키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런 사고가 나지 않을 수도 있었고, 사고가 난 이후에도 제대로만 행동했더라면 그렇게 많은 젊은 죽음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한 겁니다.

있을 수 있는 교통사고라면, 불가항력의 자연재해라면, 유가족들의 억울한 울음이 이렇게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내 자식이 왜 죽었는지 원인이라도 알자는데, 사고 관계기관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고, 언론의 보도는 자꾸 본질을 벗어나고 표피적인 상황과 유족의 인간 됨됨이에 대해서만 조명하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이 성인군자들도 아니고, 내 아들, 내 딸이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그 사고의 원인과 책임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데,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일어나는 교통사고로 단순화 시켜서야 되겠습니까?

억울한 사람들의 울음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귀를 막는다고 그 울음이 그치는 것은 아닙니다.

   
▲ 세월호 참사가 왜 벌어졌는지, 특별법이 왜 필요한지를 묻는 설치작품 (사진= 최은화 PD)
 

단식장 천막에 앉아있다 보니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지나다녔습니다. 지나가면서 우리를 구경하는 느낌? 뭐, 괜찮았습니다. 우리는 지나가는 분들을 구경하는 소소함이 있었습니다.

그 외국인들의 표정에서 호기심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호기심보다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는 표정이 더 역력했습니다. 억울하고 슬픈 사람에게 측은지심이 드는 것은 너무나 부드럽게 저절로 마음으로 들어오는 감정이니까요.

그리고 단식장에서 겪은 새로운 경험, 하루 종일 한 무더기 만들었던 리본공작,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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