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와 언론의 외면으로 묻히고 있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의문점이 오히려 외신에 의해 적극적으로 조명되고 있다.  

일본 후지TV 시사 프로그램 는 지난 21일 침몰 당시 11개 선내 영상과 사고 상황 275장의 사진, 관계자 72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세월호 참사 당일 상황을 1시간에 걸쳐 재연했다. 참사 당시 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단원고 학생들이나 구조 지시를 내리지 않은 선원들, 해경 등 구조당국의 허술한 대응을 재구성한 방송은 한국 언론과 해외 언론을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후지TV와의 인터뷰에 응한 단원고 학생들은 방송에서 “한국에서는 아무리 법정에 서도 (진상규명을 위해)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서라도 어떻게든 하고 싶다”, “저는 일본어를 못하지만 이번에 취재를 해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의혹 중 하나인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도 산케이신문 보도로 큰 쟁점이 됐다. 조선일보 칼럼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발언을 바탕으로 의혹을 제기한 산케이신문은 “(박 대통령에 대한) 그 소문은 ‘양식 있는 사람’은 ‘꺼내는 것조차 스스로 품격을 낮춘다고 생각한다’고 할 정도로 저속한 것이었다고 한다”면서 “증권가 관계자에 의하면, 박 대통령과 남성의 관계에 관한 것”이라고 전했다. 검찰이 필자인 산케이 가토 서울지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하면서 되레 의문은 더욱 커졌다. 외신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역설한 결과를 낳은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
 

이 기사를 번역한 뉴스프로의 이하로 주필은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3백여 명이 살려달라고 울부짖을 때 과연 대통령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였는가는 국가기밀이 아니라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하는 내용”이라며 “선정적이기는 했지만 산케이의 기사가 역으로 대통령의 행적을 반드시 밝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할 수 있다고 생각해 번역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외신보도는 세월호 참사 당일부터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대형 오보를 내거나 정부 발표를 전하기 급급했던 한국 언론과 비교되면서 더욱 반향을 일으켰다. 후지TV 영상을 본 회사원 정근(35)씨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언론이 보도해오면서 속 시원하게 진상을 밝히지 못하고 계속 의문점만 생겨 제자리걸음을 하는 상황에서 생존 학생들이 오죽했으면 해외언론을 통해 알리려고 했겠느냐”라고 말했다.

   
▲ 세월호 참사를 재구성한 후지TV의 방송 장면
 

한 외신기자는 23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한국 언론이 취재경쟁 속에서 새로운 팩트를 찾는데 열중하다보니 유병언 전 세모회장의 아들 유대균씨가 치킨을 시켜먹었다는 사실이 ‘단독’이라는 이름으로 보도되기도 한다”면서 “외신이 한국 언론이 밝혀내지 못한 새로운 내용을 보도하는 건 아니지만 사안에서 한 발 떨어져서 정리된 상황을 보여주니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번 사안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려는 언론이 있네, 왜 우리 언론은 못할까’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MBC의 한 기자는 이날 “국내 언론이 정권에 의해 장악되고 통제되니 국민의 알권리에는 관심이 없다. 권력자의 눈치만 보는 상황이니 기자들도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진상을) 취재할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80년대 해직기자인 고승우 방송독립포럼 공동대표는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는 탐욕스러운 자본과 무능한 정부라는 구조적 문제로 발생한 일인데 언론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시각에서 보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 대표는 “70~80년대에는 정권의 일상적인 보도지침으로 한국사회의 문제가 외신을 통해 알려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는데, 오늘날 언론은 외부 통제 대신 스스로 집권층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외신들은 참사 초기에도 정부의 부실 대응을 국내 언론보다 강하게 질타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지난 4월 21일 세월호 선장을 ‘살인자’에 비유한 박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서양국가에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국가적 비극에 이렇게 늑장 대응을 하고도 신용과 지위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는 국가 지도자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의 르몽드도 같은달 23일 “시민을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행정부와 부주의한 관리 능력이 침몰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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