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탈당불사라는 입장을 접고 문희상 의원이 다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새 지도부가 들어서 외양적으로는 내홍이 봉합된 듯하지만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은 미봉의 상태다. 사태의 발단은 개인의 일탈적 행동이지만 근본원인은 융합을 거부하는 계파간의 대립구도에 있다. 당권을 노린 계파간의 암투에다 국민신뢰의 상실이 겹쳐 수권정당으로서 재탄생은 기대하기 어렵다. 해결책은 분당뿐이다. 하지만 서로 간판을 차지하려고 하니 그 길도 험난하다. 국민이 양당제를 선호하는 현실에서 죽어도 당에 남아야 국회의원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불안한 동거를 청산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집권당에 질질 끌려 다니는 비루한 모습만 보여줄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김대중 이후만도 선거철마다 호남을 기반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해 왔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두 동강났다.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진 민주당 간판으로는 참패가 예견되었기 때문이다. 벼락치기 정당 열린우리당이 탄핵정국을 뚫고 승리했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출현을 갈구하던 민의의 결집이 열린우리당에게 산사태 같은 압승을 안겨줬던 것이다. 잔류파인 민주당은 대들보마저 내려앉은 폐가가 되어버렸다.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태어났지만 그것은 한 순간이었다. 주도세력인 386과 친노파가 눈과 귀를 틀어막고 닫힌우리당의 모습을 연출하더니 자멸의 길을 걷고 말았다.  

2008년 총선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열린우리당에서 탈당사태가 일어났다. 그 행렬에는 가담했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자 반한나라당 세력을 규합한다고 나섰다. 대통합이란 걸개를 내걸었지만 어제의 전사들이 다시 모이고 권력지향적인 시민운동가 사람 몇을 데려온 뿐이었다. ‘도로 민주당’의 탄생이었다. 서로 호남이란 지지기반에 기대면 여의도를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노무현 정권을 좌파정권이라고 맹공하던 반노세력과 친노세력이 다시 손을 잡아 일단 갈등이 수면 밑으로 잠복하는 형세였다. 절을 보기 싫다며 일단의 친노파는 짐을 쌌다.

이명박의 강압통치-불통정치가 기승을 부렸지만 야당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선거철이 가까워지자 급속한 민심이반이 동면하던 친노세력을 깨웠다. 그들이 ‘혁신과 통합’이란 가설정당을 만들어 야권통합이란 형식을 빌려 민주당을 흡수해 당권을 장악했다. 그 시점에만 해도 2012년 총선은 야권의 승리가 지배적 관측이었다. 그 연유로 한나라당이 서둘러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변화를 흉내냈다. 반면에 승리감에 도취한 친노세력은 공천개혁이란 이름으로 그들만의 잔치를 벌였다. 비노-반노는 배제하고 찍고 싶어도 찍을 수 없는 얼굴들을 내세웠던 것이다. 연이은 대선-총선의 패배에도 패인에 대한 자기성찰조차 거부했다.  

그 반작용으로 민주당에 김한길 체제가 들어섰다. 국정원의 조직적 대선개입이 헌정질서를 파괴했지만 김한길은 1년이 지나도록 대통령의 ‘사과’만 되뇄다. 특별검사제를 통한 진상규명은 뒷전에 둔 채 헛발질만 한 것이다. 당지지율이 곤두박질치자 김한길이 안철수를 구원투수로 끌어들였다. 비밀합당을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이란 이름으로 간판을 바꾸고 김-안 쌍두체제가 출범했다. 김-안은 시암쌍생아처럼 붙어 다니며 헌정치인지 새정치인지 분간할 수 없는 언행을 일삼더니 공천파동을 일으켰다. 7-30 재보선에서 완패했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정국에 갇힌 형국이었다. 국무총리 후보자들의 잇따른 낙마가 국민에게 충격적 절망감을 안겨줬다.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진 것이다.  

선거결과는 새정치연합에 내린 파산선고나 다름없다. 정당사상 처음 나온 야당 심판론이란 말이 그것을 말한다. 단순히 산술적인 11:4의 패배가 아니다. 고정석인 호남지역의 3석을 빼면 수도권 1곳에서만 승리한 셈이다. 그나마 호남 1석은 1987년 체제 이후 처음으로 새누리당에게 내줬다. 그것도 대통령의 복심한테 패배했다. 청와대 지지율이 레임 덕 수준으로 추락한 상황에서 말이다. 참패의 후폭풍은 거셌다. 한 동안 많은 국민들이 희망을 걸었던 ‘안철수의 새정치’가 종막을 내렸다. 또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 손학규가 퇴장했다. 이것은 수권정당으로서 치명적인 내상이다. 한 마디로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에게 승리를 헌납한 선거였다.

좌초위기에 놓인 새정치연합의 조타수로 박영선이 등장했다. 원내대표에다 비상대책위원장까지 전권을 장악한 그의 돌출적 행동이 난파선을 침몰직전까지 몰고 갔다. 세월호 유가족과 많은 국민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을 위해 특별법 제정을 통해 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수한 시민들이 촛불집회, 단식-노숙투쟁에 참여해 외쳤지만 그는 들은 척도 않고 새누리당과 핵심 없는 내용에 합의했다. 그것도 두 차례나 결행했다. 그는 이어 비상대책위원장에 이상돈을 영입하여 또 한 차례 거센 풍파를 일으켰다. 이상돈은 새정치연합과는 합치점이 없는 정치적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새정치연합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강압통치에 반발하는 국민적 저항마저 흡수하지 못한다. 고정적 지지자마저 떠나버려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당지지율이 그것을 말한다. 그것은 이념적 좌표와 정치적 소신을 달리하는 세력이 혼재한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야당이라면 집권정당의 정치이념-정부시책을 비판·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차기 정권을 창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정체성이 모호하기 때문에 야당으로서 일체감 있게 행동하지 못한다. 야당을 이끌 지도력도 없다보니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전제적 통치를 제어하지 못해 표류를 거듭하는 것이다.  

투쟁력이 없다. 다수당의 횡포로 국회가 민의를 수렴하지 못하면 소수당은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과 함께 싸워야 한다. 그런데 장외투쟁은 정당의 역할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근년 들어 군사독재에 항거했던 김영삼-김대중의 투쟁을 흠모하는 소리가 잦아지는 것도 그 까닭이다. 야당의 존재가 없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촛불이 꺼질 줄 모른다. 그러자 새정치연합이 대여투쟁을 광장에 맡기고 촛불 뒤에 숨는 비겁한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다. 광장도 몇 사람이 주도권을 쥐고 시국회의니, 대책회의니 하며 간판을 바꿔달며 자발적 참여자들을 통제하자 차츰 분화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이 촛불시민을 우군으로 믿는 사이 그들은 인터넷과 SNS를 통해 그들을 질타하고 있다.

전문성이 없다. 새정치연합은 정치적 고비마다 탈색하지만 여전히 386과 친노세력 중심의 정당이다. 그들은 집권의 단맛을 본 세력이다. 당권만 장악하면 공천이 보장되니 양당체제 하에서 국회의원은 따놓은 당상이다. 자파가 정권을 잡으면 좋지만 타파는 못 잡아도 좋다는 식이다. 1980년대 학내시위를 훈장처럼 뽐내며 억대 연봉에 안주하니 귀족이란 말이 나온다. 외부세력에 배타적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 까닭에 비례대표마저 전문직을 발탁하지 않는다. 중진급 선배마저 올드보이라는 말로 배척한다. 고령사회에 진입했는데 세대를 단절하는 자세를 보이니 50대 이상 연령층이 그 정당을 외면한다.

   
▲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
 

새정치연합은 2012년 이후에만도 두 차례나 가설정당과 통합하는 굿판을 벌였으나 대선, 총선, 지방선거, 재보선에서 잇달아 패배했다. 침몰위기가 반복되지만 물과 불처럼 갈라져 대여투쟁은 접고 당권투쟁에만 몰입하니 위기감조차 못 느낀다. 방향타를 잃고 표류하던 난파선이 이제 복원력마저 상실했다. 그 배를 버리고 갈라서야 산다. 그리고 선택은 국민에게 맡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대선에서도 구체제의 복귀를 획책하는 세력의 집권을 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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