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4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김종덕, 이하 문체부)와 태권도진흥재단(이사장 배종신)은 전라북도 무주에서 ‘태권도원’ 개원식을 개최했다. 국내외적으로 ‘태권도의 성지’로 만들고자 정부차원에서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일대 231만4000㎡ 부지에 총사업비 2475억 원을 투입해 건립한 태권도원은 태권도박물관, 태권도 전용 경기장, 체험관, 연수원 등의 시설로 구성됐다. 후보지로 선정된 지 약 10여 년 만에 태권도원은 이제 태권도의 종주국으로서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태권도 ‘메카’가 됐다.

그 전날 국회에선 국기원 등이 주최한 ‘태권도산업 활성화 전략’ 토론회가 열렸다. 태권도를 스포츠산업 측면에서 현실을 파악하고 성장가능성과 발전방안을 모색해보자는 취지였다. 그러한 취지를 반대로 보면 태권도 종주국인 우리의 태권도 관련 산업의 활성화는 미흡하고 태권도 산업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안 나왔지만 국내 태권도 용품 시장에서 중국산 태권도 용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국산 태권도 용품의 그것보다 훨씬 많고 브랜드를 보더라도 ‘아디다스’의 도복, 보호대, 태권도화 등이 시장의 1/3 이상을 차지한다.

하계올림픽 정식 경기 종목인 ‘엘리트 스포츠’이자 전 세계 수 많은 사람들이 수련하고 있는 ‘생활 스포츠’ 태권도의 종주국으로서 위상을 확고히 하고 태권도를 스포츠산업 측면에서 바라보고 이른바 문화콘텐츠로 부가 상품을 개발해 태권도 산업을 발전시키자는 얘기가 태권도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도 태권도 산업 진흥을 위한 여러 정책을 수립하고 있고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화려한 ‘태권도원’ 개원식의 빛이 바래지고 정부와 태권도계의 태권도 산업 활성화 시동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해 전국체전 서울시 고등부 대표 선발전 대회에서 있었던 경기 막판 심판의 경고 남발로 진 선수의 부친이 억울함을 토로하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대통령이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스포츠계 적폐를 근절하라는 지시를 내리게 하였다. 대통령의 ‘엄명’으로 문화부를 비롯해 정부 당국은 스포츠계 부정비리를 조사하는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기도 했고, 스포츠계의 여러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고 예방 및 사후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위 사건을 수사한 경찰의 며칠전 발표에 의하면 수사결과 그 경고 남발의 원인이 심판의 실수에 의한 오심이 아니라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승부조작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 태권도 자료사진 (본 사진은 이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경찰 발표에 따르면, 승부조작은 상대 선수 아버지가 중·고교·대학 후배인 모 중학교 태권도 감독에게 "아들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입상 실적을 만들어달라"고 청탁하면서 시작됐고, 이 청탁은 다시 감독의 고교 선배인 서울시 태권도협회 어느 전무로 이어졌고 이 전무의 승부 조작 지시는 협회 기술심의회 의장, 협회 심판위원장, 협회 심판부위원장을 거쳐 문제의 심판에게 내려갔다.

사실 태권도계에선 승부조작의 만연은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지난해 위 사건이 발생한 당시에 문대성 의원(새누리당)도 자신도 승부조작의 피해를 당했고 대회에서 승부조작은 늘 있었다는 취지의 얘기를 할 정도로 그동안 태권도 대회에서 승부조작 논란이 많았다. 승부조작 논란이 많았지만 태권도 경기 자체가 심판의 판정에 따른 점수에 의해서 승부가 갈려 심판들의 눈에 ‘찍히면’ 이후 다른 대회에서도 심판 판정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피해자들이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하고 대외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다 하더라도 결국 피해를 당하게 되므로 문제 제기를 꺼리게 돼 태권도계 밖에서는 잘 알려지지 못했다.

태권도가 승부조작의 ‘성지’가 되었고 이로 인하여 선수의 가족이 자살을 했음에도 국기원(이사장 홍문종), 대한태권도협회(회장 김태환), 서울시태권도협회 등 태권도 유관 단체들은 그동안 뭘 하고 있었나? 심판 판정의 문제, 승부조작 논란에 대해서 제대로 조사하고 관련자들에 대해 상응한 징계를 내리고 형사고발한 적이 몇 번 있었나? 한마디로 태권도계의 조직 윤리 실종이었다. 조직 윤리 실종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러한 조직적 윤리 실종의 하나로 나는 승품·단 심사 수수료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현재 승품·단 심사는 1~4품, 1~5단은 시도협회가 맡고, 고단인 6~9단은 국기원에서 하고 있으며 승품단 심사 수수료로 품단에 따라 약 4만 원에서 약 9만 원을 징수하고 있다. 이 수수료를 시도협회, 대한태권도협회, 국기원이 나눠 갖는데 이 수수료 수입 규모가 상당하다. 서울시태권도협회 관련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태권도협회가 2012년 승품단 심사 수수료로 거둬들인 금액이 50억 원이 넘는다. 협회 예산의 80%를 넘는다. 국기원은 승품단 심사 수수료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 자세한 금액을 알 수 없으나 국내외 심사 수수료로 들어오는 돈은 연간 100억 원 정도 된다. 승품단 심사 수수료 금액 책정과 어디에 쓸지는 자율적으로 정하는데, 과연 수수료 금액이 적정한지, 수수료가 태권도 발전을 위해 제대로 쓰이는지도 알 수 없다. 승품·단 심사 수수료의 달콤한 맛에 취해 내부의 썩은 냄새는 맡지 못했던 것이다.

이외에도 조직 파벌주의, 조직 이기주의 등 태권도 안팎에선 태권도의 여러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이대로 방치하고 세계적으로 이러한 문제들이 알려지면 지난 레슬링처럼 올림픽 퇴출의 위기를 자초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러한 문제들이 고쳐지지 않고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지 않아 태권도계의 조직 윤리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태권도 산업 육성 발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필/자/소/개>
필자는 중학교 시절까지 운동선수였는데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인의 인생을 살고 있다. 대학원에서 스포츠경영을 공부하였고 개인적‧직업적으로 스포츠‧엔터테인먼트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 스포츠‧엔터테인먼트와 문화의 보편적 가치에 따른 제도적 발전을 바라고 있다. 그런 바람을 칼럼에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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