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 이효리, 강호동을 비난하는 일은 타당하지 않다. 그들이 커버할 수 있는 트렌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그들이 자신의 역량을 내세운다면 비난이 가능할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지형도를 살피면 이는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지상파 예능이 ‘죽을 쑤고’ 있다는 지적은 약간 과장 되었다. 주중 야간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이 제대로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건 분명하다.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과 일요일 낮 예능 프로그램도 시청률 ‘저공현상’을 보인다. 

최근 예능은 스타와 일반 시청자 참여의 갈림길에서 길을 헤매고 있는 듯싶다. 스타를 배제하고 다양한 참여 구성원을 배치하는 것은, 시청자주권이 공통의 현실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어 가치가 있으나 반드시 타당한 것만은 아니다. 집단 지성 시대의 예능프로코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단 스타 MC에 의존하는 방식, 몇몇 게스트 중심의 입담 토크는 확실하게 힘을 잃고 있다. 일찌감치 MBC <무릎팍 도사>는 간판을 내렸고, <라디오 스타>는 독설에 의존해 버텨 보려 했지만 이젠 여의치 않다. SBS <힐링 캠프>에 등장하는 스타들의 스토리는 시청자의 폭발적인 몰입의 대상에서 멀어진지 오래다. MBN <황금알>이 전문가와 일반인, 연예인들의 집단 토론 토크쇼를 이끌어낼 때, 지상파는 여전히 몇몇 스타와 게스트를 중심으로 같은 입담 토크패턴에 의존했다. 몇몇 입담꾼들에 의존하는 방식은 단조로움을 벗어나지 못했다. JTBC <마녀 사냥>에는 스타 진행자와 연예인 나아가 비전문예능인에 일반 참여자들을 적극 개입시켜 신선함과 참신함을 갖추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웃음 수준을 유지해냈다.

   
강호동. ⓒKBS
 

이런 사례들 때문에 지상파가 일반인들의 참여를 지속적으로 늘려오고, 새로운 시도를 했던 측면은 분명히 있었다. 일반인들의 참여가 돋보이는 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는 라디오 사연 예능이 텔레비전으로 들어온 사례인데, 일반인 사연과 전문예능인들의 입담이 호흡을 맞추어왔다. 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는 일상적 사례가 갖는 현실적 공감이, 소소하고 훈훈한 웃음을 일으키는 포맷이기 때문에 유명 스타들이 등장하지 않아도 꾸준한 인기를 끌어 왔다.

KBS <별바라기>는 마침내 폐지 수순에 들어갔다. 스타MC 강호동을 원톱으로, 역시 스타와 스타 팬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KBS <나는 남자다>는 유재석이라는 스타 진행자를 원톱으로 수 십 명의 일반 남성들을 일반 출연자로 등장시키고 있다. 여기에 고정게스트로 연예인들이 참여해 특정 주제와 일반 참여자들의 사연과 삶을 맛깔나는 웃음을 버무리려 한다.

그러나 상황은 유재석은 물론 몇몇 게스트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분산효과를 낳고 있다. 무엇보다, 예능의 주요 시청자가 누구인지 잊고 있는 듯싶다. 예능적 감각과는 별개로 공익성 때문에 호평을 받았던 <심장이 뛴다>를 밀어내고 등장한 SBS <매직아이>는, 이효리를 앞세워 시사 뉴스와 일상 이야기를 연예인 스타들의 관점으로 자신의 경험과 주장을 토론 하는 방식으로 이끌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스타들은 자신들의 농밀하거나 극단적 혹은 자신의 주장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아야 했다.

물론 이 프로에서도 일반 참여자의 사연이나 경험이 토크의 매개 고리로 사용되고 있다. 결국에는 KBS <별바라기>처럼 연예인들의 사담(私談)적 토크의 범주에 머물고 만다. JTBC <비정상 회담>의 경우 각 나라 출신의 게스트들이 한국의 문제에 대해서, 각자의 관점에서 사회 문화 비교차원의 평가와 분석, 토론을 통해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돋보인다. 훨씬 다양하고 객관적이며 사회적 문제와 화두에서 솔루션을 찾을 여지가 더 많아 보인다.

연예인 사담 토크에 사회적 주제가 등장하는 것은 그 스타의 ‘센세이션’한 주장에 대한 반응이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포털이 중심에 있고, 포털에 회자가 될 때 그 역할과 기능을 수행한다. 이런 애매한 ‘포지셔닝’에서 일반인 출연자를 더욱 확실히 부각시킨 예능이 SBS <달콤한 나의 도시>이다. 이 프로그램은 예능 프로그램인지 교양프로그램인지 경계가 애매할 정도로 네 명의 일반인 여성중심으로 20대 여성의 삶과 사랑, 연애를 다루고 있다. 요즘 한참 자주 언급이 되는 관찰예능 방식이 아니라, 사전 상황 설정과 장면 연출 방향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시청자들이 그녀들의 삶의 이야기에 얼마나 관심이 있을지는 물음표이다. ‘달콤한 도시’라는 콘셉트는 ‘도시의 법칙’처럼 낭만과 도전이 더 부각되지 않았나 싶다. <자기야>나 <풀하우스>와 같이 가족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이 여전히 꾸준한 호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결국 <달콤한 나의 도시>는 시청률이 아니라 다른 평가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SBS 달콤한 나의 도시
 

주말 예능이 주로 야외 공간을 배경으로 하거나 관찰 예능 방식에 고정되어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 두고 있지만 <정글의 법칙>, <도시의 법칙>처럼 평일에도 이를 시도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런 차원에서 <동네 한바퀴>나 <아름다운가(家)>는 눈길을 끌었다.

스타 진행자와 연예인 게스트, 스타 진행자와 스타게스트 중심의 예능은 이제 확실히 힘을 잃어버렸다. 일반인과 전문예능인의 콜라보레이션, 그리고 외국 국적 소유자, 일반인과 연예인, 비전문 예능인들이 관찰 예능이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전방위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사소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이제 예능은 스타만의 힘으로 아니, 몇몇의 통제력과 영향력으로 좌우될 수 없으며, 그런 프로그램은 힘을 머지않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웃음과 예능의 집단 지성의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집단적 협업을, 상호 수평적 융합을 통해 웃음을 만들어내야 한다. 특히 지상파는 더욱 그렇다. 그 사이에서 플랫폼의 ‘큐레이션’ 역할이 중요해질 뿐이다. 인위적으로 배치하고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알아서 각자의 자생적 진화를 통해 자연스러운 웃음의 집단 지성을 방해하는 요인을 필터링 해주는 역할이 필요해진 것이다. 어쨌든 지상파처럼 그냥 틀어놓는 TV와 목적의식적으로 예능을 소비하게 만드는 케이블의 역할 분담은 필연적인 구도인 것처럼 구축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