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섬이다. 섬, 사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땅. 그리하여 육지와 유리된 땅. 땅보다 바다가 가까운 땅. 그 곳만의 삶이 피어날 수밖에 없는 땅.

돌 많고 바람 많고 여자 많다는 제주는 육지와의 거리, 섬의 크기, 독특한 자연유산 등으로 인해 변방의 삶, 독자적이면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역사의 순간 순간 기쁨보다 상처가 많은 제주는 이제 한국의 대표적인 휴양지, 관광지가 되어 수많은 내외국인 관광객들과 개발붐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때에 제주에서 날아온 두 장의 음반은 제주의 삶과 역사를 다시금 되새기게 만든다. 바로 지난 8월 7일 출시된 <산 들 바다의 노래> 음반과 9월 2일 출시된 <해녀, 이름을 잇다> 음반이다.

   
▲ 왼쪽은 ‘해녀, 이름을 잇다’ 음반 표지, 오른쪽은 ‘산 들 바다의 노래’ 음반 표지
 

<산 들 바다의 노래>는 제주 4·3 사건을 주제로 한 음반이고, <해녀, 이름을 잇다> 음반은 제목 그대로 제주의 해녀들을 주제로 한 음반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 제주를 규정하고 제주를 구별 짓게 하는 중요한 사건과 삶을 음악으로 담아낸 것이다. 두 장의 음반은 온전히 음반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산 들 바다의 노래>의 대부분은 제주문화방송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산, 들, 바다의 노래>를 위해 수록한 노래들을 담은 것이고, <해녀, 이름을 잇다> 또한 음악집과 미니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와 함께 만들어진 것이다. 두 장의 음반은 온전히 제주의 문화예술인들의 손과 입으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두 장의 음반 모두 제주의 사람들이 나서서 제작한 것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자신들의 역사와 삶을 과거 속에 묻어두지 않고 오늘의 예술 언어로 되살려내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나누려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음반은 제주라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접근 방식은 조금 다르다. <산 들 바다의 노래>가 ‘1948년 제주 4·3 당시에 제주도 사람들이 부르던 항쟁가, 제주민요, 그리고 80년대 이후의 운동가요 등을 인디 뮤지션들이 완전히 새롭게 편곡하여 다시’ 부른 일종의 리메이크 앨범이라면, <해녀, 이름을 잇다>는 해녀의 삶을 주제로 새로운 곡을 쓴 창작곡 옴니버스 앨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 들 바다의 노래>는 기존 곡을 각각의 뮤지션들이 어떻게 재해석했는지가 중요한 포인트이고, <해녀, 이름을 잇다>는 참여한 뮤지션들이 해녀라는 삶의 실체에서 어떠한 부분에 주목하고 어떻게 담아냈는지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 왼쪽 그림부터 ‘해녀의 청춘’, ‘해녀의 삶’, ‘해녀의 꿈’
 

일단 3호선 버터플라이의 리더 성기완이 프로듀서를 맡은 <산 들 바다의 노래>나 에브리싱글데이의 문성남이 프로듀서를 맡은 <해녀, 이름을 잇다> 모두 참여한 뮤지션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산 들 바다의 노래>에는 요조, 가리온, 3호선 버터플라이, 사우스 카니발, 백현진&방준석, 갤럭시 익스프레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씨 없는 수박 김대중, 게이트 플라워즈가 참여했고, <해녀, 이름을 잇다>에는 강아솔, 에브리싱글데이, 한소현, 김목인, 로큰롤라디오, 프롬, 윤희석, 이기쁨, 정훈희, 윤영배, 정성하, 한동준, 데빌이소마르코가 참여했다. 두 음반 모두 제주 지역의 뮤지션들이 함께 참여했는데 전자가 비교적 밴드 음악에 치중하고 있다면, 후자는 포크와 팝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음반 모두 음악적으로 괜찮은 결과물이다. 이러한 성취는 단지 음악 때문만은 아니다. <산 들 바다의 노래>의 경우에는 수록된 곡들이 4·3 사건의 복잡한 의미들 가운데 한 가지 의미에만 집중하지 않고, 당시에 불려졌던 노래들의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포괄하며 4·3을 둘러싼 여러 삶과 태도의 메타포를 총체적으로 담아내려고 했기 때문이다. 또한 <해녀, 이름을 잇다>의 성취 역시 뮤지션들이 해녀의 삶을 구체적으로 이해한 후 해녀의 삶을 종합적으로 담아내게 한 엄격함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두 장의 음반 작업을 믿을만한 뮤지션들과 함께 했다는 것도 음반의 완성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임을 짐작해보기는 어렵지 않다. 실제로 두 음반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현재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뮤지션들이며 작업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최선을 다하는 작가정신을 가진 뮤지션들이다. 물론 대중적인 지명도는 떨어지지만 이러한 작업을 온전히 오버 그라운드의 뮤지션들에게 맡겼을 때에 제작비 문제만이 아니라 작업의 의미를 이해하고, 풍부한 장르적 언어로 창작해낼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현실은 현재의 인디 신이 얼마나 의미 있고 풍부한 음악 작업을 해내고 있는지를 반증한다. 이 두 장의 앨범 이외에도 최근 좋은 컴필레이션 음반들이 여러 장 발매되었던 사례는 한국 인디 신의 음악적 깊이를 증거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남방큰돌고래’, ‘해녀 꿈을 잡다’, ‘해녀’, ‘함께 바다를’
 

<산 들 바다의 노래>의 수록곡은 모두 일정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데 각별히 언급할 곡은 가리온의 창작곡 ‘한숨’과 게이트 플라워즈의 ‘어야도홍’, 3호선 버터플라이의 ‘잠들지 않는 남도’이다. 유일한 새 창작곡 ‘한숨’은 4·3 사건의 실체를 실제로 경험한 이의 시선으로 극화하면서 여전히 끝나지 않은 진실 찾기와 사회적 대립의 긴장까지 담아내고 있다. 가리온은 한국 최고의 힙합 뮤지션다운 깊이로 4·3 사건에서 부딪친 상반된 입장들을 숨가쁘고 격앙된 목소리를 재현하면서 당시의 분노와 공포, 무지몽매에 육박하고 있다. 또한 게이트 플라워즈는 제주민요 ‘어야도홍’을 블루지하고 남성적인 언어로 되살려내면서 제주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4.3 사건을 겪고도 여전히 제주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뿌리 깊은 정신 세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미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음반에 실린 적이 있는 ‘잠들지 않는 남도’는 3호선 버터플라이를 통해 훨씬 더 처연하고 가슴 절절하게 불려짐으로써 4·3 사건의 비극성을 온전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사우스 카니발이 다시 부른 ‘해방의 노래’나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다시 부른 ‘적기가’의 경우는 각각의 곡이 담지하고 있던 해방과 혁명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충분히 재현되지 못했다. ‘해방의 노래’는 경쾌하고 아담한 곡으로 그쳐버렸으며, ‘적기가’의 경우에는 유쾌한 응원가 이상의 에너지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러한 해석은 물론 프로듀서 성기완과 각 밴드의 자유로운 해석의 결과물이겠지만 각각의 곡들이 원래 담지하고 있던 지향은 사회의 근본적 체제를 뒤흔드는 혁명성과 역동성이었음에 반해 각각의 곡에서는 그 에너지가 거세되어 온건하고 안전한 놀이 이상의 재미를 주지는 못하고 있다. 과거 민중가요가 보여주었던 전투성을 되살리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리메이크는 과거의 곡을 현재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인데 이 두 곡에서는 노래의 혁명성과 역동성이 오늘의 언어와 시선으로 재현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분노와 극복 의지가 만연해 있음에도 이를 대변하는 작품이 완성도 있게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오늘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예술적으로 대변되지 못하고 있으며, 노래를 통해 광범위하게 공감되거나 호소력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것이 오늘 예술의 숙제일 것이다.

한편 <해녀, 이름을 잇다>의 경우에는 사전에 뮤지션들이 해녀의 삶에 대해 충분한 이해와 공감을 한 후 작업한 것이 인상적이다. 그럼으로써 해녀의 삶을 낭만적으로 그리거나 표피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오류를 방지한 것이다. 그 결과 작업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해녀의 삶에 압도되거나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고 입을 모아 고백하고 있다. 창작된 곡들은 참여한 뮤지션들의 기존 성향과 스타일에 근접한 곡들이 대부분이다. 참여한 뮤지션들의 작업들이 이미 그러했듯 전반부에는 비교적 밝고 예쁜 곡들이 두드러지고, 후반부에는 서정적인 호흡이 깊은 곡들이 포진함으로써 주제와 음악을 균형감 있게 담아내고 있다.

   
▲ ‘바다야 고마워’
 

마찬가지로 각별히 언급할 곡을 꼽자면 강아솔의 ‘물의 아이’와 김목인의 ‘해녀와 바다’, 윤영배의 ‘길고 긴 숨’, 한동준의 ‘바다의 노래’, 데빌이소마르코의 ‘나의 이름은’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제주 태생인 강아솔은 어쿠스틱한 연주에 따뜻하고 깊은 목소리를 더함으로써 해녀의 삶을 시작하는 소녀의 순수한 마음을 아름답게 담아냈다. 또한 김목인은 특유의 읊조리는 노랫말을 통해 해녀들의 삶을 담백한 다큐멘터리처럼 그려냈다. 전반부의 곡들이 음악적 아름다움에 경도되어 해녀 삶의 실체를 온전히 기록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데 반해 윤영배는 그들의 절망과 슬픔과 삶의 의지를 버릴 수 없는 삶의 숙명 같은 연속성 안에서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음악적 아름다움을 보여줌으로써 음반의 중심을 확고하게 했다. 한동준 역시 담백한 건반 연주와 함께 차분하고 성숙한 시선으로 그들 삶의 고단함과 공감의 마음을 경배하듯 담아냄으로써 감동적인 울림을 만들어냈다. 잔잔하게 속삭이는 데빌이소마르코의 곡은 음반의 여운을 더하는 에필로그처럼 아련하다.

이 두 장의 음반 덕분에 우리는 4·3과 해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알지 못한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우리가 느꼈던 것과 느끼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제주라는 섬, 제주라는 삶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예술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새로운 인식을 이끌어내면서 감성적 공감까지 함께 선사하는 것. 논리적 인식이 아니라 감성적 공감으로 인해 새로운 인식까지 닿게 되는 과정. 아름다움의 힘에 대해 공감하게 되고 그로 인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이 바로 예술 아니겠는가. 이미 그 곳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 그 곳에 살고 있는 뮤지션들 때문이 아니라 이 두 장의 음반으로 인해 제주는 다시 깊어지고 특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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