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스포츠는 꿈과 희망의 원천입니다. 인간은 스포츠를 통해 성장하고 배웁니다. 스포츠를 통해 정의와 인간관계, 상호존중을 배우며 건강한 신체를 얻게 되는 것은 덤입니다. 그래서 전세계의 스포츠 정신은 한마디로 ‘페어 플레이’로 정의됩니다.

스포츠가 조작, 비리, 부정에 연루되면 이미 스포츠가 아닙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가 부정한 방법으로 탈락해 더 이상 국가대표가 될 수 없게 되자, 러시아로 귀화하여 러시아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국제빙상무대에서 러시아에 금메달을 연거푸 안기며 영웅이 되던 모습, 국민은 착찹한 심정으로 봤습니다. 그때 박근혜 대통령은 ‘빅토르 안’(안현수)을 예로 들면서 ‘체육계의 부정을 뿌리뽑겠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통령이 의지가 있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부정과 조작, 비리를 크게 줄이고 ‘페어 플레이’ 정신을 되찾을 수도 있겠다는 꿈을 꿨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장담한 ‘체육계의 부정’ 근절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그 이후 소식은 없습니다. 아무 것도 바뀐 것도 없고, 대책이 나온 것도 없이 그저 그때 한마디 뉴스로 보도된 것 외에는 잡히는 것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체육계, 정확하게는 태권도계가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지난해 자신의 아들이 전국체전 고등부 서울시 대표 선발전에 참가했다가 부정한 방법으로 탈락하자 이를 억울해하며 아버지가 자살한 끔찍한 사건입니다. 1년여 수사가 끝나면서 밝혀진 내용은 충격적입니다. 그냥 해당 심판을 매수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조직적으로 부정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태권도 이미지. ⓒ 연합뉴스
 

시합종료 50여초를 남기고 5대 1로 이기고 있던 전 아무개 학생이 심판으로부터 경고를 무려 6번이나 받아 반칙패를 당한 것이지요. 태권도 경기에서 일반적으로 이 정도 스코어 차이라면 뒤집기가 쉽지 않고 실력차가 분명한 것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공정하게 경기를 진행해야 할 심판이 부정한 청탁을 받고, 해서는 안될 경고카드를 남발한 것입니다. 태권도를 모독하고 스포츠 정신을 타락한 심판의 매수 경위가 기가 막힙니다.

수사결과, 승부조작의 첫 출발은 지방 J대 태권도학과 최 아무개 교수(48)였다고 합니다. 전 아무개 상대 선수의 아버지인 최 교수는 태권도 명문 D고등학교 후배이자, 현재 D중학교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송 아무개 감독(45)에게 청탁을 했다고 합니다. 경기 전인 지난해 5월 초 “아들이 대학을 가야 하지 않겠나. 입상 실적이 없어 걱정이니 도와 달라”고 한 것인데, 소위 ‘명문대’를 가기 위해선 전국대회 1, 2위 입상 성적이 필요해서 승부조작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송 감독은 서울시태권도협회 김 아무개 전무(45)를 찾아가 청탁을 했다고 합니다. 최 교수와 송 감독, 김 전무는 모두 D고교 출신으로 학연으로 이어진 선후배 사이였다는군요. 경기 당일 서울시태권도협회 전무에서부터 기술심의회 의장, 심판위원장, 부위원장, 주심까지 ‘D고교 핀급 챙기기’라는 청탁 내용이 차례로 전달됐다고 합니다.

명색이 태권학과 교수라는 교육자가 자신의 아들을 부정한 방법으로 입상성적을 올리기 위해 부정 청탁을 했습니다. 태권도 협회 전무, 기술심의회 의장, 심판위원장, 부위원장, 주심까지 어느 누구도 부정에 맞서 정의나 ‘페어 플레이’ 정신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부정이 일상화 되면 청탁, 조작이 이처럼 별 저항없이 횡행하게 됩니다.

체육부 올챙이 기자 시절, 납득이 가지 않던 일이 생각납니다. 한국이 세계에 내세우는 자랑거리인 태권도 경기가 국내에서 대회가 열릴 때마다 거짓말처럼 판정시비가 끊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국내에서 태권도 경기는 정정당당한 경기보다 경기외적인 청탁과 봐주기, 조작 등이 이미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태권도로 먹고사는 태권도학과 교수, 태권도협회 간부, 심판 위원장들, 이들은 태권도의 명예와 정신을 시궁창에 처박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태권도 조직이라면 이들은 사법판결과 무관하게 태권도계에서 제명시켜야 합니다. 진정한 태권도인들이 분노하며 자정에 나서야 할 사안입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서울시 태권도협회 기술전문위원을 지낸 오용진 전 수석부의장은 “동메달은 1000만원, 은메달은 2000만원, 금메달은 4000만원 이렇게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습니다. 일반인들은 접할 수 없는 내밀한 거래정보를 ‘소문’으로 포장하여 공개하는 것이 아닐까요. 태권도 종목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태권도 정신의 핵심은 예의와 절제입니다. 태극1장부터 금강, 고려 등 모든 품세의 출발이 수비동작부터 시작되는 것은 태권도가 먼저 시비를 걸거나 공격하지 않는다는 절제의 정신, 예의를 존중하는 정신 때문입니다. 예의를 존중하는 태권도인이 부정과 비리, 조작에 나선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부정의 주범인 태권도 교수, 전무, 심판위원장, 주심 등이 설혹 서로간 금품수수가 없었다 하더라도 불구속 수사를 할만큼 죄가 가볍지 않습니다. 검찰의 봐주기 수사에 법원은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이들의 조작과 부정 때문에 한 아버지가 절망하며 자살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는 간접적인 ‘살인사건’입니다.

전세계 태권도 인구가 8천만 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세계 태권도인의 꿈은 태권도의 본고장 한국을 방문하는 것입니다. 한국이 자랑하는 태권도를 세계인들이 직접 와서 국내 경기를 보고 혀를 찬다면 어떻겠습니까. 종주국이라고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故 박정희 대통령은 태권도를 국기(國技)로 정했습니다. 그 덕분에 태권도는 성장, 발전하여 올림픽에서도 정규종목으로 채택돼 한국을 상징하는 자랑스런 국기가 됐습니다. 어떻게 체육계의 뿌리를 뽑을 수 있을까요.

국회의원, 정치인 등이 태권도 협회나 국기원 등 태권도 조직의 회장, 사무총장 등 주요 요직을 차지하며 파벌을 형성, 무법천지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정치가 개입되면 신성한 분야도 타락합니다. 학연, 지연, 혈연 3연의 정점에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정치의 절제가 우선돼야 합니다. 또한 벌써부터 솜방망이 처벌이 예상되는 식이니 ‘체육계 부정을 뿌리뽑겠다’는 박 대통령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습니다. 말로만 하지말고 구체적 내용과 실천적 제도개선으로 보여주기를 학수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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