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성추행 사건이 드러났다. 경찰은 16일 박 전 의장에 대해 출석요구서를 발송했다. 박 전 의장은 사건이 불거진 직후 곧바로 해명을 했지만 “손녀같이 귀엽고 예뻐서 그랬다”, “손가락으로 한 번 툭 찔렀다”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고등검사장 출신으로 6선 국회의원에 국회의장까지 역임한 사회 원로가, 사회적 약자인 골프장 캐디 노동자를 성추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충격이다. 더욱이 피해자가 ‘단순한 신체접촉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사태는 일파만파 퍼질 조짐이다.

하지만 지상파 뉴스에서 박희태 전 의장 성추행 뉴스를 찾기가 쉽지 않다. KBS는 사건이 최초로 불거진 지난 12일 박 전 의장 성추행 소식을 전했지만 ‘간추린 단신’으로 처리했다.

“강원도의 한 골프장 여성 캐디가 새누리당 상임고문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어제 골프를 치면서 자신의 특정 신체를 만졌다며 성추행 혐의로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 전 의장 측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접촉이었다며, 이 캐디에게 사과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희태 전 의장과 관련한 KBS 보도의 전부다.

   
▲ 9월 12일자.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MBC도 지난 13일 <뉴스데스크>에서 관련 내용을 단신으로 보도했다. “원주의 한 골프장 여성 캐디가 ‘새누리당 상임고문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면서 박 전 의장을 고소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여성 캐디는 경찰 조사에서 ‘박 전 의장으로부터 성적 수치심을 느낄 정도의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당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박 전 의장 측은 ‘손녀 같아서 귀엽다는 표시는 했지만 정도를 넘지는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는 내용이다. 그나마 SBS가 단신이 아닌 개별 리포트로 이 소식을 전했다.

박 전 의장은 성추행 혐의는 부인하면서도 자신이 손으로 피해자의 신체부위를 건드렸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본인의 의도와는 별개로 일방적인 신체접촉에 피해자가 불쾌감·수치심을 느꼈다면, 그 자체가 이미 폭력이다. 

KBS MBC가 박희태 전 의장 성추행 사건을 축소보도한 정황은 다른 리포트와 비교했을 때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12일 KBS <뉴스9> 리포트를 보면 박 전 의장 단신을 전하기 전에 아시안게임에 참석한 북한축구가 철통 보안 속에 훈련을 했다는 사실을 리포트로 보도했다. 북한의 모란봉 악단이 신곡을 발표했다는 소식도 리포트로 전했다.

   
▲ 9월 13일자.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MBC 역시 13일 박 전 의장에 대한 단신 보도를 하기 전, 미국의 한 미식축구선수가 약혼녀를 폭행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미국의 한 조그마한 마을이 맥주광고촬영장으로 이용되면서 이 마을 주민들이 홍역을 앓고 있다는 사실도 리포트로 전했다. 전직 국회의장의 성추행 혐의가 북한 가수의 신곡발표와 미국 마을에서 일어난 해프닝보다 작은 뉴스일까?

MBC는 설훈 의원이 “대통령이 연애했다는 얘기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지난 12일 메인뉴스 헤드라인으로 설 의원을 비판했다. MBC는 “설훈 의원이 세월호 특별법 처리가 안 되는 것은 대통령의 탓이라며 근거 없이 떠돌았던 얘기를 발언했다”고 지적했다. MBC는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톱기사로 올리면서, 전 국회의장 성추행은 단신으로 처리했다. 

박희태 전 의장 행위에 대해 동아일보와 한겨레는 사설을 통해 강하게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15일 “정치현업을 떠났다고는 하나 고등검사장 출신으로 6선 의원에 한나라당의 대표와 입법부의 수장까지 지낸 정치인이 민망한 추문에 휩싸인 것은 유감스럽다”며 “최근 검사들의 성추문 사건의 ‘뿌리’를 연상케 하는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같은 날 사설에서 “국회의장까지 지낸 사람이 갖고 있는 천박한 인권의식과 성의식, 그리고 입에 담기도 민망한 수치스러운 행동 앞에 놀라움과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사회적으로 높은 직책, 그리고 ‘할아버지뻘’ 따위의 음흉한 변명의 보호막 뒤에서 연약한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돼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념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보이는 ‘심각한 문제’가 지상파 뉴스 보도책임자들에겐 왜 보이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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