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세월호에 타고 있었던 희생자의 시점에서 현재를 비춰본 영화감독의 이야기입니다. 희생자의 이름은 가명을 썼습니다. -편집자

해수는 지금 누군가를 기다립니다. 아무래도 불안합니다. 나가야 할 것 같은데 방송에서는 그냥 있으라고 합니다. 그냥 있으라니... 믿어야지요. 어른들의 말씀이니....

배가 많이 기울어졌습니다. 이제는 나가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겨우 철판 난간에 매미처럼 붙어 있거든요. 나가려면 로프가 필요한데.... 아! 헬기 소립니다! 곧 저 문으로 로프가 내려오겠지요. 해수는 로프를 타고 올라가면서 카메라를 향해 브이를 그릴 생각입니다. 그럼 아홉시 뉴스에 나올 것 같은데요...

해수는 모두 구출되고 자신이 맨 마지막 생존자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하지요, 배가 기운 지 벌써 두 시간이 넘었거든요. 해수는 오늘의 일을 영화로 만들 생각입니다. 해수의 꿈은 영화감독입니다.

   
▲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황인호 감독과 송일곤 감독 (사진=박유선 PD)
 

물이 가슴까지 차올랐습니다. 두렵습니다.

정말 죽는 걸까요? 아뇨, 죽을 수 없습니다. 할 일이 아직 너무나 많습니다.

해수는 이제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느낍니다. 이가 따닥따닥 떨립니다. 까치발로 서서 겨우 버티고 있습니다. 발끝은 마비가 와 감각이 없습니다. 방송을 믿은 자신을 바보라고 자책합니다. 엄마... 아빠... 동생.. 내 고양이... 친구들... 나의 학교... 나의 꿈...

아! 시간이 없네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듭니다. 턱을 들어 겨우 숨을 쉽니다. 한줌의 숨이 이렇게 간절하네요. 몇 번이나 더 숨을 쉴 수 있을까요... 아!

   
▲ 목회자 304인 철야기도회에 참석한 시민들을 향해 감사인사를 하는 단원고 요한 군 아버지 (사진=이숭겸 독립영화인)
 

해수는 지금 광화문 광장에 있습니다. 이상합니다. 사람들이 해수를 보지 못하고 지나갑니다. 해수는 그제야 자신이 죽었다는 걸 기억해 냅니다.

날짜를 보니 5개월이나 지났네요.

광화문 광장을 걸어봅니다. 바람이 붑니다. 노란리본들이 보이네요. 농성천막도 보이고요.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해수는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건 단순히 배가 뒤집힌 사고가 아냐. 거기에는 본질적인 문제가 있지. 자격이 없는 선장과 선원들을 그 자리에 앉힌 비정규직 문제! 고물 배를 들여와 해운사 배만 부르게 한 정부와 그와 관련된 정치인들! 인간 위주가 아닌 기업을 위한 정부의 정책들. 결국 환부를 도려내려면 수사권과 기소권이 필요하지. 그들은 왜 이걸 반대할까? 칼날이 자신에게 오기 때문이야! 자기 자신을 회초리로 때려야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거라고"

해수는 왜 아직도 해결이 안됐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누군가는 특별법이라는 게 상당히 불편한 가 봅니다. 해수는 그래도 마음의 위안을 얻습니다.

   
▲ 안산 합동분향소 앞에 아이들 생전 모습을 기리는 유가족들 (사진=단원고 2학년 1반 지성아빠)
 

노란리본들, 글귀들, 단식 중인 사람들...

‘우리를 잊지 않는 사람이 아직 많구나...’

어느 희생자 엄마가 쓰신 글귀가 보입니다.

'만지고 싶다... 내 딸...'

밑에 글을 쓰고 싶은데 쓸 수가 없네요. 대신 마음속으로 외쳐 봅니다.

"만지고 싶습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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