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비판을 받고 있는 '이범균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가 과거 경제사범 등 우리 사회의 재력가들에게는 관대하고 온정적인 판결을 내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야당 국회의원들의 선거법 위반엔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하는 등 엄정한 단죄를 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범균 부장판사가 재판장으로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는 지난 7월 10일 여러 개의 자기 회삿돈 10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황두연 (주)ISMG코리아 대표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황 대표는 현대그룹의 숨은 실세로 알려진 인물로 (주)ISMG코리아 대표 뿐 아니라 WM인베스트먼트(경영자문컨설팅업체) 이사회장 및 오션캐슬로드손해보험중개, 엠솔루션콥, 몬티스월드와이드, 씨엔에스케이, 클린엠, 오씨알 뿐 아니라 미국에 있는 업체를 운영해온 재력가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황씨의 범죄사실에 대해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에 실제로 근무하지 않으면서 회사 직원인 것처럼 가장해 회사자금에서 그들 명의의 계좌에 급여 명목으로 모두 16억9296만 원을 입금한 뒤 모두 현금으로 인출해 개인용도로 사용했으며(가장 급여지급을 통한 횡령) △자신의 미국 회사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 대표(정 아무개)에게 지시해 가장거래를 통해 거래대금으로 지급한 돈을 가장거래 업체로부터 되돌려받는 수법으로 국내 회사 자금 46억3848만 원을 인출해 개인용도로 임의사용했다(가장거래를 통한 횡령)고 밝혔다.

또한 황씨는 정씨를 비롯해 자신의 미국 회사 자금을 관리하는 이 아무개에게 지시해 회사자금을 빼돌려 가장거래로 미국회사의 미화를 국내 업체에 송금한 뒤 국내에서 원화로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333만3195달러(38억3550만 원)를 횡령했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더구나 황씨는 이렇게 교묘히 빼돌린 돈 대부분을 카지노 도박에 탕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황씨의 죄질이 무거운 점을 감안해 애초 징역 5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으로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황씨에 대해 “범행 횡령액이 약 10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이고, 황씨가 회사직원이  아닌 사람을 마치 직원인 것처럼 위장해 급여를 지급하거나 허위의 용역계약서를 작성해  용역대금을 지급하는 방법으로 회사자금을 횡령하는 등 범행수법이 매우 불량하다”며 “횡령한 회사 자금 상당액을 상습적인 도박자금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여 엄정한 처벌을 통해 피고인의 전횡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진=강성원 기자
 

재판부는 “다만 피해자 회사들이 모두 황씨가 1인 주주이거나 그의 가족회사로 보이고, 피해액을 모두 변제했으며 피해자 회사와 직원들이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며 “황씨가 범행 일체를 자백했으며 황씨에게 ‘이종’(異種)의 2회 벌금형 전과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범죄전력이 없는 것은 황씨에게 유리한 정상”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정상을 참작했다고 하나 거액의 횡령에다 죄질이 불량한 기업형 범행을 집행유예로 감경한 것이다. 

이는 비슷한 시기 비슷한 규모의 횡령 사건으로 기소된 이들에 대한 단죄와도 차이가 있다. 같은 달 20일 광주고법 제주형사부(재판장 김창보 제주지방법원장)는 100억원이 넘는 회삿돈을 빼돌려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대성(70) 전 제주일보사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같은 달 23일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심규홍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횡령액 100억 원)로 구속기소된 이 아무개(51) 전 TV조선 경영지원실장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참작할 정상이 각각 다를 수 있다 해도 같은 100억 원 대 횡령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이 이처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국민의 법감정과 법상식으로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범균 재판부’가 야당이나 소수정당에 대해 지나치게 가혹한 법적용을 한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유승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2일 이범균 판사가 1년 전인 지난해 19대 총선에서 자신의 선거를 도운 김문수 서울시의원의 리트윗 단 한건에 대해 벌금 500만원이라는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했다고 주장했다. 유 의원은 야당 후보자의 배우자가 월간지에 보도된 내용을 인용해 상대 후보자의 부정축재 의혹을 제기하는 이메일 1건을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두 건 모두 최종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유 의원은 “이렇게 엄격하게 공직선거법을 해석한 이범균 판사의 잣대는 권력 앞에서는 눈을 감는 이중잣대인가”라며 “불과 1년 전에 단 1건의 리트윗에 대해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하더니, 국정원의 11만 건이 넘는 트윗과 리트윗에 대해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이범균 판사의 법과 양심은 과연 어디로 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민변 노동위원회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해우)는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엄벌에 처한다고 하면서 집행유예를 결정한 것은 말을 갖고 장난치는 대표적인 판결”이라며 “권력자와 가진자에 대해서는 자신 역시 기득권 세력에 포함한다고 생각해 온정적이고 관대한 판결을 한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권 변호사는 “법관이 출세나 개인의 영달, 출세주의적 사고 속에 갇혀 있으면 (판결이) 지배질서를 옹호하는 형태로 나타난다”면서 “사회정의와 민주주의 약자, 진정한 법치에 대해서는 관심 밖이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