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전, 아마도 8월 중순에, 아는 분을 만나기 위해 잠시 광화문 농성장에 처음으로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납니다. 분수대를 주변으로 꼬마 아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풍경들 뒤편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천막들, 그 사이에 무엇을 감시하려는지 군데군데 서 있는 경찰들. 제가 만났던 분은 그 곳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고, 유가족들이 단식 과정에서 하나 둘 탈진하시는 것에 대해 상당히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한 달이 지난 시기에 다시 농성장으로 가는 길에서는 광화문역 입구에 있는 ‘세월호 특별법 반대’라는 현수막과 함께, 아마도 비틀즈의 노래에 가사를 바꾼 낯선 노래가 먼저 불쾌하게 들려왔습니다. 스쳐 지나간 것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우리가 낸 세금으로 보상금이나 노리는 사람들’이라고 유가족들을 비방하는 류의 내용이었습니다. 

한낮의 시간들은 계속해서 낯선 소음들로 가득한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찬송가였는지 트로트풍의 대중가요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소리로 사람들을 윽박지르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확성기에서 튀어나오는 욕설들로 바뀌더군요. 개중엔 쓴웃음을 짓게 하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추석 연휴에 아마도 취객들이 어버이연합의 농성장을 지나가다가 시비가 붙었던 것 같더군요. 그들에게는 ‘신성한 애국 농성장’을 모독한 것이었겠죠.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에 오래 계신 분들은 소위 ‘보수단체’라는 사람들의 이러한 행위들을 거의 일과처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추석 때 부모님 혹은 나이 드신 어르신들과 세월호 문제로 한 두 번씩 부딪친 이야기들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더불어 소위 ‘일베’라는 친구들이 얼마 전 이곳에 와서 행한 짓들과 함께 그들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이 섞인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듯했습니다.

저녁시간까지도 이런 상황은 계속 이어졌고, 끊임없이 시비를 거는 보수단체 사람의 행동을 참지 못하고 한 유가족 분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오랫 동안 동조단식을 하신 분이 이야기하시기를, 평소에는 조용하시고 사람들에게 친절하시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는 정말 불같은 성격이 되시는 유가족 분들이 있으시다고 합니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고통의 무게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알고 있는 몇몇 이들이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자신들이 당한 부당한 일들에 저항하고 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싸워 왔지만 돌아 온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 뿐... 때로는 비웃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시비가 붙기도 하고, 평소에는 한없이 착한 사람이 경찰이나 용역깡패들과 싸울 때 엄청나게 거칠어지는 모습들... 그들이 싸워 온 시간만큼 날카로와질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오랫 동안 철거투쟁을 했던 지역의 주민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싸움이 끝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들이 마을에 많다고 합니다.

냉소적인 말을 잘 하는 친구가 언젠가 ‘슬픔을 나누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두 배가 된다’고 비꼰 적이 있습니다. 

   
 
 

물론 불과 24시간 정도 어설프게 동조단식에 참여했다고 유가족들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할 수도 없고 글을 쓴다는 것도 사실 우스운 행위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렇게 슬픔이 전염돼야 할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상황에 닥친 것으로 생각해 볼 때 그 고통이 어렴풋이나마 이해될 수 있겠죠.

길 건너편에서 소리로 테러를 하는 ‘어르신’들이 유가족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안하려 하는 것인지는 제가 알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저 조금이라도 타인의 말을 들을 자세를 가진 이들부터라도 부당한 상황을 알려내고, 더 많은 이들과 고통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르신’이라는 이들이 어느 순간 자신들의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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