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새벽녘, 자동차가 광화문 네거리를 질주해 갈 때 마다 단식 농성장 천막의 비닐가림막이 요동을 칩니다. 누워 있으면 땅이 울리고 귀가 멍멍합니다. 단식자들도 밤에는 잠을 자야하지만 결코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배고픔과 소음, 더위와 근육통증에 단 하루의 단식참여도 이래저래 힘이 듭니다.

그런데, 유민아빠 김영오님은 무려 40일이 넘는 기간을 버텼습니다. 실로 초인적인 의지입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국가가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사고로 억울하게 희생된 학생들, 탑승자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투명하게 가려질 수 있는 특별법 제정 요청에 국가와 정치인과 언론이 등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국가가 왜 이런 것까지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요. 대통령이 왜 나서서 해결해야 하느냐고요. 그들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입니까? 국가의 기본은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는 사소한 범죄부터 총체적인 재난상황에 맞서 국민의 안전이 효율적으로 지켜질 수 있게 경찰, 소방대, 군대 등의 사회안전망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이 시스템의 최정점에 서서 지휘하고 책임을 지는 자리입니다. 이건 총리의 책임이고 저건 해양경찰의 책임이라고 미룰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만큼 무겁고 엄중한 자리입니다. 그게 대통령제를 채택한 민주주의 국가의 상식입니다.

“청와대는 재난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는 말은 따라서 상식적인 국가개념에 반하는 말입니다. 또 혹자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 사고만 나면 대통령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하는 것이냐?”라고. 대통령이 책임진다는 말이 사고가 날 때마다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책임의 진정한 의미는 국가에 사고나 재난상황이 발생했을 때, 수습과 복구, 구조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진두지휘를 하고 사고의 원인을 투명하게 밝혀 재발을 방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 광화문광장의 영화인 단식농성천막. 사진=김명준 감독 제공
 

세월호 침몰사고는 비극적인 국가재난이었습니다. 때문에, 유민아빠를 포함한 세월호 유가족들과 많은 국민들은 다시는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특별법 제정을 요청한 것이었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시늉이 아니라 제대로 된 조사와 해결을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 발의를 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와 대통령은 이에 응답하고 있지 않습니다. 면담을 요청하는 유족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청와대 앞길을 막고만 있을 뿐입니다. 언론과 여당 정치인들은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졌다.", “유족들이 과도한 특혜를 요구했다.”는 둥 거짓된 정보를 흘리며 유족들을 고립시키려는 비열한 공작을 벌일 뿐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선거에 이용해먹고 매몰차게 버렸습니다. 그들 입으로 말한 약속이 단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한 어머니가 울분에 차 한 말입니다.

또 다른 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편하고 쉬운 길만 찾는 자본주의에 젖어 살다보니 이 사회가 얼마나 잘못 됐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이에게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의사가 되라고 권했던 제가 너무 미안합니다.”

세월호 사고와 그 이후 150여 일간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은 대한민국이란 국가가 처한 총체적인 부실과 더불어 상식과 양심이 휘발된 지도자와 기득권세력의 민낯을 또렷이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에 희망이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더러운 나라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라는 또 한 유족 어머니의 말은 그래서 더욱 가슴을 찌르며 슬프게 다가옵니다.

그러나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분노와 슬픔을 넘어 온전한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싸워야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나와 우리의 나라이고 뜨겁게 지켜내야 할 우리 삶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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