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1일 이길영 KBS 이사(장)의 후임으로 추천한 이인호(78)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승만, 박정희 두 독재자를 둘러싼 ‘역사전쟁’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수구보수 세력이 주도하고 있는 ‘역사전쟁’이란 그 자체로 대단히 위험한 놀음이다. 헌법 전문에 명시된 대한민국 정부의 뿌리인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아버지이자 일본군 중위였던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이 종신 집권을 위해 여러 차례 헌법을 개악하면서도, 상해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친일옹호 발언으로 비판을 받아온 이인호씨를 사실상 KBS 이사장 후보로 추천한 것은 엄청난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인호씨는 2008년 칼럼에서 “두 세대쯤 앞에 태어나 지금까지 정도의 ‘출세’를 하며 살아왔더라면 지금쯤 아마 나도 친일인사 명단에 올라 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썼다. 이인호씨는 또한 KBS 보도로 논란이 된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교회 강연을 “감동적이었다”고 두둔하면서, “(문씨가) 낙마하면 이 나라를 떠날 때라고 느낄 것”이라고도 했다.

   
▲ 작년 9월 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논란에 부쳐 역사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기자회견’에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기자회견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인호씨의 이런 발언들은 자연스럽게 독자들이 그의 가계와 가족들에게 눈을 돌리게 만든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조부를 둔 이인호씨와 친인척들은 한국 사회 지배세력의 중심에 있다.

친일인명사전 등재된 조부 이명세, 일제 태평양 전쟁 참여 선동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이인호씨의 조부 이명세(李明世: 1893-1972)는 일제 조선총독부가 전국의 유림(儒林)을 동원해 조직한 조선유도연합회(朝鮮儒道聯合會)의 상임이사 등을 지내며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을 미화하고 일제에 적극 협력할 것을 선동했다.

“집안에선 아들 난 것 중한 일임을 더욱 알고(在家倍覺生南重)/나라위해 죽는 것은 가벼이 여겨야 하리(爲國當思死敵輕)...” 이명세가 1942년 일제의 징병제 실시 결정을 축하하는 한시의 일부다.

 여기서 말하는 ‘나라’는 물론 일본이다.

이인호씨의 부친 이종덕(李鍾悳: 1915-2002)은 경성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조흥은행 감사/상무이사와 세방석유(GS-Caltex 전신) 사장 등을 지냈다. 이인호씨는 이종덕씨의 3남3녀 중 맏이이자 장녀다.

공학박사인 류두영씨와 사이에 딸 둘을 두고 있는 이인호씨의 형제자매 가족 대부분이 우리 사회 지배층 혹은 상류층에 속한 것으로 보이지만,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이 둘째 남동생 이문호(72)씨와 막내여동생 가족이다.

이인호씨 조카사위, 청와대 방송통신정책 담당 행정관

이문호씨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LG그룹에서 부회장과 천안연암대 총장 등을 지냈다. 이문호씨의 맏사위, 즉 이인호씨의 친정조카사위가 권성(73) 전 헌법재판관의 장남인 권용현(43)씨로, 방송통신위원회 방송광고정책과장을 지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청와대 정보방송통신정책 담당 비서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권성 전 헌법재판관은 2008년부터 언론중재위원장을 맡아, 연임된 뒤 지난 1월 임기종료 두 달을 앞두고 통합진보당해산심판 사건의 법무부 소송 대리인으로 나서기 위해 위원장직을 사임했다. 통합진보당 사건에 정부를 대리하는 ‘전관(前官)’으로 나선 셈이다. 권성 전 헌법재판관의 차남 권내건(36)씨는 현재 검사로 재직 중이다.

이인호씨의 여동생의 남편, 즉 이인호씨의 제부인 고현욱(65)씨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경남대 대학원장, 부총장, 북한대학원대 총장 등을 거쳐 2012년 10월부터 국회입법조사처 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고현욱씨의 형이 고현철(67) 전 대법관이다.

이인호씨의 막내 남동생 이성호(66)씨의 처조부가 초대 재무부장관을 지낸 김도연(1894-1967) 의원(한국민주당 총재)이다.

이인호씨, 김영삼 대통령 시절 핀란드 대사에

우리 헌법은 연좌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손녀가 친일행위를 한 조부를 옹호하는 발언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손녀가 한국 사회의 지배세력의 중심에서 여러 중요 공직에 재직했거나 재직하고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 교수는 친일사관, 독재정권 미화로 물의를 빚은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의 감수를 맡았고, 이 책을 만든 교과서포럼의 뉴라이트 학자들이 주축이 된 한국현대사학회 설립에 참여해, 현재까지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에는 광복절 대신 건국절을 제정해 기념하자는 건국6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회의 공동준비위원장을 지냈다. 건국절 제정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뉴라이트의 핵심 주장이다.

이인호씨는 친일인사 장택상 국무총리의 비서로 출발한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1996년 국내 최초 여성 대사(주 핀란드)에 발탁된 뒤, 김대중 정부 시절 러시아 대사,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현재 명지대/카이스트 석좌교수이자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은 2008년 2월 11일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아버지인 정주영 전 현대그룹 설립자의 이름을 따 설립하였고 자신은 현재 명예이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인호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안보자문단 위원에도 위촉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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