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역사 손보기’가 본격적으로 방송계에 손을 뻗치고 있다. ‘뉴라이트’ 계열의 박효종 교수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임명한 데 이어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KBS 이사장이 되는 것도 기정사실화됐다.

이런 흐름이 방송계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꾸준히 뉴라이트 인사를 역사, 교육, 방송분야 등에 임명해 왔다. 역사, 교육 분야에는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권희영 한국학대학원장, 박상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이 이미 자리를 잡았다.

뉴라이트 성향의 인사 중 논란이 돼 낙마한 이들은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와 김명수 전 교육부장관 후보자다. 문 전 후보자는 ‘일본 식민 지배는 하나님의 뜻’,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는 일본이 있는 건 축복의 지정학’이라는 취지의 교회 강연 내용이 보도되면서 논란 끝에 자진사퇴했다. 논문표절 의혹이 커지면서 낙마한 김 전 후보자도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다.

낙마한 이들은 국회 인사청문회 등 공개적인 검증과정을 거쳐야 하는 고위 공직 후보자들이었다. 반면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자리엔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진 이들이 큰 논란 없이 수장으로 임명됐다.

방송 분야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신인 박효종 서울대 명예교수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를 방송과 통신 분야에서 내용 심의를 담당하는 ‘검열 기관’의 수장에 앉힌 것이다.

   
▲ 박효종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좌)과 이인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우)
 

박효종 위원장이 이끄는 3기 방통심의위는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방통심의위는 지난 6월 문창극 전 후보자의 강연 발언을 보도한 KBS에 대한 심의를 진행 중이다. 방송계에서는 방통심의위가 KBS에 대해 중징계조치를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영상 중 일부만을 발췌, 편집해 전체 강연의 취지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채 왜곡했다’는 것이 여권 추천 방통심의위원들의 입장이다.

공교롭게도 이인호 교수는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 낙마의 결정적 계기가 된 KBS의 이사로 추천됐다. 이사회 호선으로 선출하는 이사장은 관례 상 최고령(78세)인 이 교수가 선출될 가능성이 크다. KBS 안팎에선 이 교수가 KBS 이사장이 되면 KBS는 앞으로 ‘문창극 강연’과 같은 보도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방통심의위가 ‘불공정 보도’라고 중징계하면, 이사회는 이를 이유로 사장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정부 비판보도’를 하기 어려운 구조가 강화되는 것이다.

KBS 안팎에선 “정권의 KBS 장악 시나리오”라는 주장도 나온다. 임기가 1년이나 남은 이길영 전 KBS 이사장이 갑자기 사표를 제출했고, 6일 후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이인호 교수의 추천안을 빠르게 처리했다. 이 교수는 3일 예정된 KBS 이사회에서 이사장으로 선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사표 제출 8일 만에 KBS 이사장 교체가 마무리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KBS노동조합(위원장 백용규)은 “다시 공영방송의 정치독립은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됐다”고 우려했고,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권오훈)도 “제2의 문창극이 KBS에 들어오는 셈”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박효종 방통심의위원장에 이어 KBS 이사장에 이인호 씨를 낙점한 것은 공영방송 안팎의 지배구조를 틀어쥐고 언론독재를 하겠다는 선전포고와 다름없다”며 “KBS 장악 시도를 당장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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