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찰이 언론사들을 상대로 북한 관련 기사를 무분별하게 삭제할 것을 요구한 데 이어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법학자 단체까지 공안탄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북 전주완산경찰서는 지난달 25일 법학연구자들로 구성된 ‘민주주의 법학연구회(민주법연)’에 업무협조의뢰 공문을 보내 민주법연이 운영 중인 홈페이지의 북한 관련 게시물 13건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민주법연은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청구 사건에서 진보당 추천으로 참고인 진술을 한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회장으로 있는 법학연구단체이다. 경찰이 삭제를 요구한 게시물은 정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정태욱 교수와 한반도 평화’라는 게시판에 언론을 통해 보도된 기사를 갈무리해 놓은 것이 대부분이다.

이에 대해 경찰은 “민주법연이 운영 중인 홈페이지에 불건전 게시물이 게재돼 있어 목록에 첨부된 게시물의 자진 삭제를 요청한다”면서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제44조의 7(불법정보 유통의 금지 등) 제1항 8호(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내용의 정보)를 관련 근거로 들었다.

   
▲ 전북 전주완산경찰서가 지난달 25일 ‘민주주의 법학연구회’에 보낸 북한 관련 게시물 삭제 요청 공문
 

하지만 민주법연 측은 게시글의 삭제 요청은 경찰의 임의적 판단이 아니라 방송통신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뤄지는 것이 법률이 정한 절차이므로, 경찰이 인터넷상의 게시물들에 대해 임의적 해석으로 삭제를 요청하는 것은 법률상 근거 없는 월권행위라고 지적했다.

송기춘 교수는 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내용이면 수사를 해야 할 사항이지 게시글 삭제를 요구할 권한은 없다”며 “관련법에 따라 방통위에서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제한을 명할 수 있고 이를 안 지킬 경우 제재를 가하는 것은 방통위의 권한이다. 경찰이 삭제하라고 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송 교수는 “최근 한 언론사에 이와 유사한 요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게 우연인지 아니면 조직적으로 정세를 바꾸려는 시도로 국가보안법 관련 문제를 야기하는지는 불명확하다”면서 “계속 국보법 기제를 작동시키며 압박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전북경찰청은 지난 7월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인터넷언론사 ‘미디어라이솔’에 북한 관련 기사가 정보통신망법을 위반했다며 삭제를 요구했다. 지난 1일 서울신문에 따르면 경기 안산단원경찰서도 지난달 26일 서장 명의로 서울신문에 공문을 보내 ‘서울신문 사이트에 설립 취지와 맞지 않는 친북 관련 글 6개가 게시됐으니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기사들은 모두 연합뉴스와 외신 등 이미 국내·외에서 보도된 내용들이다. 

최근 경찰이 북한 관련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경찰은 강요가 아닌 절차라는 입장이다. 

전북경찰청 보안과 관계자는 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특별한 업무지침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기존부터 계속 해왔던 업무”라면서 “점점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표현의 자유와 인권이 중요시되면서 반발도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이트에 보내는 것은 우리가 방통위에 보내기 전에 문건 삭제를 권고하는 절차로 강요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최근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통일운동가인 한상렬 목사(64)를 보안관찰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하고, 지난해 시국미사에서 ‘연평도 포격’ 발언을 한 박창신(72)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원로신부를 국보법 위반 혐의로 소환조사 하는 등 일련의 공안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송기춘 교수는 “(정부가) 기본적으로 세월호 문제를 풀지 못하니까 정국을 전환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안)카드를 꺼내 든 것일지도 모른다”며 “예전부터 써왔던 것이지만 적어도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위축 효과가 있으니까 언제든 공안 분위기로 몰아가서 필요할 때 흐름을 역전시키는 것도 고려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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