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로 의회정치가 5월 이래로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여야 국회가 세월호 단원고 유가족과 국회밖 정치에 묶인 보기 드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9월 1일 정기국회가 시작되었지만, 이날 유가족과 새누리당의 3차 면담이 성과 없이 끝나 상황은 마찬가지다.

보수 언론에서는 직접민주주의적 요구에 대의민주주의가 중단 위기에 처했다고, 또 새누리당과 정부는 세월호 특별법과 이른바 민생·경제활성화법을 분리처리해야 한다며 새정치연합에 파상 공세를 취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2차 합의안 추인을 유예하고 장외투쟁으로 나갔지만, 당내 중도파의 반발과 여론 악화 그리고 당 지지율 하락으로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태다. 돌이켜보면 이는 새정치연합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세월호 투쟁을 정략적으로 활용하다 1차, 2차 합의안을 모두 유가족 의사와 관계없이 새누리당과 타결했다가 철회, 유예하는 바람에 정치적 책임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단식농성을 하던 김영오 씨 가족사와 관련한 악성 루머와, 특별법에 대한 각종 유언비어, 그리고 김영오 씨의 막말욕설 논란도 세월호법 투쟁에 부정적으로 작용한 또 다른 계기였다. 가족사와 관련한 악의적인 루머는 김 씨 자신의 반박을 통해 대부분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특별법에 유가족에 대한 온갖 특혜와 배·보상이 담겨져 있다는 유언비어도 마타도어임이 드러난 상태다. 이런 내용의 법률안들은 실은 여야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것인데도 유가족들이 보상과 특혜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한 것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김영오 씨의 막말 욕설은 하등 변호할 생각이 없지만, 김 씨의 가족사 문제와 함께 이것도 세월호 특별법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김 씨에 대한 비난으로 본질을 흐려서는 안 된다.

   
▲ 8월1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는 열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대회에서 시민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과 대통령의 책임 있는 결단을 촉구했다. 사진=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제공
 

세월호 특별법의 본질은 300여명의 희생자와 실종자를 낸 대형참사의 진상을 조사하여 책임소재를 밝히는 것,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 그리고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장치를 갖추는 것에 있다. 민관유착구조와 무능한 정부의 구조실패가 막대한 인명피해를 가져온 만큼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은 이미 국가권력을 향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조사위원회든 특검이든 국가권력에 구속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할 것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단원고 유가족들이 세월호특별법에서 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를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새누리당이 자력구제 금지 원칙을 내세우며 이 요구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하는 이유도 분명하다. 세월호 사건 당일 대통령 행적조사로까지 나가는 길을 새누리당은 결코 허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조사위원회의 수사권·기소권을 둘러싼 단원고 유가족들과 새누리당의 입장은 어떤 합치점도 찾기 어렵다. 정치적 타협점은 특검후보 추천권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데, 새누리당이 국회 여당 몫 2인 추천권을 사실상 양보해서 유가족들이 실제로 특검후보 추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 그 경우 유가족들이 조사위원회의 수사권·기소권 요구를 접고 특검안을 수용하는가 여하가 관건이다. 여기서도 핵심적인 문제는 특검을 통한 대통령에 대한 수사의 길을 여느냐 마냐 하는 것이어서 여간해서는 새누리당의 양보를 기대하기 어렵다. 게다가 일반인 유가족도 조사위원회 구성이든 특검후보 추천권이든 단원고 유가족과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이어서 이것 또한 특검안 타협을 어렵게 할 소지가 있다.

세월호를 둘러싼 끝없는 대치정국과 국회파행은 여야 모두에게 정치적 부담일 수밖에 없다. 특검안의 타협은 한쪽의 양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누가 양보하느냐 하는 문제인데, 지금 상황으로 보면 새누리당이 양보할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당내 반발과 여론압박에 시달리는 새정치연합이 양보할 가능성이 높다. 새정치연합이 세월호 특별법과 민생법안을 분리처리하기로 하는 순간, 국회정치는 세월호 특별법으로부터 벗어나서 정상화의 길을 찾겠지만, 세월호 특별법은 더 이상 입법전망을 갖기 어렵고 장기 표류할 수밖에 없다.

   
▲ 김성구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소장
 

만약 새정치연합이 끝까지 유가족들과 함께 세월호 특별법을 관철하겠다고 한다면, 국회와 국정의 끝없는 파행과 함께 이 경우도 물론 세월호 특별법은 장기 표류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후자의 길은 민생법안이니 경제활성화법안이니 하는 미명하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려는 박 정권의 통치에 제동을 거는 것이어서 오히려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길이다. 새정치연합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이 길을 관철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을 갖고 있다. 이 길은 박 정권에게도 심각한 정치적 부담이 되기 때문에, 새누리당은 이런 상황에서나 양보를 해도 할 것이다. 이제까지 유가족 동의 없는 세월호법은 안 된다고, 세월호법 없이는 민생법안도 없다고 천명해온 만큼 새정치연합은 이제 와서 이 입장을 번복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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