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은 언론운동 진영이 종편 출범으로 대표되는 미디어법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한 해였다. 그리고 그 선봉에는 총파업 투쟁을 이끌었던 최상재 전 언론노조 위원장이 있었다. 최상재 전 위원장과 언론노조 조합원들은 미디어법 날치기를 막기 위해 국회 마당과 로텐더홀까지 진입했고, 몸싸움까지 벌였으나 결국 날치기 통과를 막지 못했다.

돌아온 것은 실정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의 ‘실형 선고’였다. 대법원은 지난달 20일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및 집시법 위반을 이유로 기소돼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최상재 전 위원장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언론운동 진영이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했던 종편은 나날이 영향력을 더해가고 있다. TV조선과 채널A 등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에 대한 비판은 나날이 늘어나지만, 한편으로 이들의 영향력도 확대되고 있다. 손석희 사장 이후 JTBC는 망가진 공영방송을 대신할 ‘대안’이라는 평가까지 듣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달 29일 SBS에서 최상재 전 언론노조 위원장을 만나 종편 보도와 언론운동의 미래 등에 대해 물었다. 최 전 위원장은 자유언론실천재단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다음은 최 전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어떻게 평가하나.
“1심 재판 때부터 정부의 입김이 상당히 작용했다고 본다. 그래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상고가 기각될 것이라 예상했으나 미디어악법 투쟁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기에 상고를 했다.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큰 의미가 없다. 처음부터 실정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문제를 제기하고, 파업이 아니라 그 이상의 활동을 통해서라도 (종편 출범을) 저지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미디어법 통과 과정에서 여당에 의해 많은 불법‧위법행위가 자행됐기에 국회에 가서 항의하고 표결을 막으려 했던 행동은 정당했다.”

- 대법원이 미디어법 반대투쟁의 사회적 맥락과 공공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현상만 보고 판단한 것 같다.
“언론의 역할이나 언론 환경의 변화에 법원이 관심이 없었다고 본다. 정권과의 마찰 없이 적당한 판결을 내리려 한 것 같다. 그래서 간단한 내용임에도 5년이나 걸렸다. YTN 해직기자들의 해직무효소송도 5년 이상 시간을 끌고 있는데, 법원이 공정한 언론을 위한 언론인들의 활동에 관심이 없는 듯하다.”

   
▲ 지난 2009년 7월 22일 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가운데), MBC 이근행 본부장, SBS 심석태 본부장 등 조합원들이 국회 본청 앞에서 회의장에 들어가려는 여당 의원들에게 미디어법 처리 투표에 참여하지 말 것을 설득하기 위해 앉아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종편 출범 반대에 앞장섰던 입장에서 현재의 종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콘텐츠 제작 수준을 보면 문 닫는 게 맞다. 그런데도 안 망하고 버티고 있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보수정권의 비호이고, 두 번째는 조중동 신문 권력의 도움, 세 번째는 시청자들의 눈을 흐리는 선정적인 보도다. 이 세 가지는 이미 예견됐던 것이다. 

- 종편의 보도대담프로그램 형식이 다른 언론에도 퍼지고 있다.
“종편은 제작비 최소화를 위해 종합편성의 취지에 맞지 않는 보도대담프로를 장시간 편성하고 있다. 검증도 안 된 인사들이 카더라식 발언을 하고 있어 방송이라 부르기 힘들 정도다. 문제는 종편의 이러한 보도 행태가 이어지면서 다른 매체의 수준까지 더 떨어진다는 점이다. 종편 출범 이후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언론사가 YTN이다. 종편 출범 이전 YTN은 시청률도 어느 정도 나오면서 시청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한 방송이었다. 그런데 종편 출범 이후 생존을 위해 점점 종편을 닮아가고 있다. 하향평준화다. 경제상황이 악화될 경우 언론계 전체가 극단적인 광고경쟁과 시청률경쟁에 내몰려 질 저하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 본다. 종편이 언론계 전체의 ‘신종 바이러스’인 셈이다.

- 노동조합의 관점에서 종편을 바라보면 어떤가.
“이명박 정부는 종편 출범 이후 언론 산업을 발전시키고 일자리를 2만 개 창출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오히려 독립 프로덕션과 외주제작사가 이전보다 더 나쁜 조건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초창기에 지상파 방송이나 케이블 인력을 스카웃 하긴 했으나 4개 종편사를 통틀어 새롭게 창출된 일자리가 거의 없다. 게다가 대부분이 정규직이 아니라 계약직이나 프리랜서로,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시청률 경쟁이 심해지면서 언론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더 악화됐다.”

- 세월호 참사 이후 JTBC가 일종의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손석희 뉴스를 제외한 대다수는 타 종편과 다를 바 없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프로그램이다.  손석희라는 괜찮은 앵커가 종편의 악영향을 상쇄시키는 정도지 본질적으로 종편을 바꾸진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SBS나 JTBC 등 오너가 있는 방송사들은 정치권력을 비판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대주주, 대형 광고주들을 비판할 수 있느냐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삼성이라는 재벌의 문제, 보광그룹의 문제들을 짚어야 바른 언론이 될 수 있다. JTBC 뉴스가 이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가 ‘정치권력 비판’보다 더 중요하다.”

- 같은 맥락에서 SBS 보도는 어떻게 평가하나.
“SBS 보도는 크게 변한 게 없다. 공영방송이 퇴보했기에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업 방송을 평가하는 기준은 정치권력 비판이 아니라 자본권력 비판이다. SBS가 정부 비판한다고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다. 공영방송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언론을 평가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 종편의 문제점은 있지만 거꾸로 영향력을 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종편 원천무효’를 외치는 것이 아직 유효하다고 보나.
“유효하다. 언론악법 저지투쟁을 함께했던 정치인들이 종편 출연하겠으니 양해해 달라고 이야기할 때가 있다. ‘프로그램 잘 가려서 하시라’고 답하지만 섭섭하다. 우려했던 문제들이 드러나는 것을 보면 빨리 정리가 돼야 한다. 지상파의 수준이 낮아졌기에 종편의 잘못이 적게 드러나고 있지만 정상적으로 판단한다면, 또한 기준에 미달한다면 당연히 허가를 취소해야 한다. 날치기 등 국회에서의 위법 요소도 해소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과정은 잘못됐으나 법은 유효하고, 국회에서 해소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국회는 이후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따라서 여전히 위법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 최상재 전 언론노조위원장(SBS 제작본부 부장)이 29일 SBS 목동 사옥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조윤호 기자
 

- 하지만 현재로선 종편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아닌가.
“그 점이 가장 답답하다. 뉴스타파나 국민TV 등 대안언론들이 노력하지만 아직까지 큰 영향력이 없다. 현실적으로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 자유언론실천재단도 사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추진되고 있다고 본다. 고함을 쳐도 바뀌는 게 없는 현실에서 언론인들도 시민들도 지쳐있다. 바른 언론을 향한 노력들을 지속적으로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다시 한 번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 자유언론실천재단이 가장 중점을 둘 활동은 무엇인가.
“국민들에게 공정한 언론에 대해 알리는 것이다. 전시회나 세미나, 심포지엄 등 교육 및 홍보사업이다. 시민들에게, 특히 예비언론인 등 다음 세대에게 지금 한국언론이 잘못됐고 언론의 공정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한다.”  

- 언론운동이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고립되어 있다는 평가도 있다.
“싸움의 대상이 정치권력이라면 오히려 수월하다. 문제는 자본권력과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언론사들이 생존 경쟁을 하고 기자들도 경쟁에 내몰리는 등 정교하고 교활한 언론통제 때문에 언론인들이 힘들다. 과거처럼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이나 저항의 방법도 더 정교해야 한다. 서로 다른 활동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협력해서 큰 힘을 낼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 언론운동이 비정규직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도 있다.
“과거 영향력이 컸던 노조들이 타협을 통해 계약직이나 비정규직 자리를 내놓으면서 급격하게 약화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은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을 유입하며 뿌리가 튼튼해져야 산다. 좋은 조건의 정규직 언론노동자들은 점점 소수화되고 고립되어 가는데, 비정규직이나 계약직 형태의 ‘반정규직’들은 늘어나고 있다. 노조가 정규직의 권익을 지키는 데 매몰되면 노조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 임금을 올리기 위한 싸움도 중요하지만 비정규직과 계약직 형태의 언론노동자들을 조직화해내는 노력이 더 시급하다. 지금 당장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되었다고 낙심하거나 의기소침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고 영상이나 조명, 분장, 미술 등을 포함한 저변의 언론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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