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계 미국인 마이클 브라운(18)의 죽음으로 인해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비무장상태에서 경관 대런 윌선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이 사건이 발생한 지 3주가 지났지만, 경찰에 대한 기소여부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우리의 경우였다면 ‘기소'여부는 검찰 수사에 따라 바로 결정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미국은 왜 시급한 국가 현안으로 비화되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한 기소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을까? 

이는 일반인으로 구성된 대배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배심은 12명으로 이뤄진 배심원단이 공정한 심리에 필요한 모든 정보와 관련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앞으로 약 한 달간 비공개 심리를 진행해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낯선'제도이다. 이 같은 제도는 미국만의 제도일까?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2012년 2월 일본 정계의 거물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의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수사하던 도쿄지검 특수부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한 찬반의견이 들끓었고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11명의 검찰심사위원회가 검찰의 불기소 결정을 뒤집고 만장일치로 기소 결정을 내려 정계 거물을 기소했다. 

수사권과 수사지휘권, 기소권을 독점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기소권, 수사권' 부여 논란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역시  "유가족이 원하는 방향에 따라 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위헌적일 수밖에 없는 새로운 수사기관을 창설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라며 "국민의 평등권,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정부여당과 새누리당이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기소권'을 미국과 일본에서는 어떻게 제도화하고 있을까. 

이들은 재판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제를 운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청와대는 응답하라, 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대회’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세월호국민대책회의
 

미국은 피고인의 유ㆍ무죄를 가르는 것이 소(小)배심이고, 그에 앞서 기소나 불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대(大)배심이다. 연방 대배심의 경우 피의자가 대배심 심리를 포기하지 않으면 법정형이 징역형 이상인 중죄에 해당하는 사건은 무조건 대배심에 회부토록 하고 있으며, 선거인 명부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23명의 배심원 중 12명의 동의를 얻으면 기소가 승인된다. 

우리와 비슷한 대륙법 체계를 갖춘 일본은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폐해를 견제하기 위해 ‘검사심사회'를 두고 있다. 시민으로 이뤄진 검찰심사원 11명 중 8명 이상이 특정 사건에 대해 두 차례 연속 ‘기소해야 한다'고 결의하면 강제 기소가 이뤄진다. 이로 인해 정계 거물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을 기소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해 '시민 검찰'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검찰이 먼저 기소배심제 도입을 주장했었다?

정부여당과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미국의 대배심 제도나 일본의 검사심사회 제도는 ‘법체계를 뒤흔드는' 비상식적인 제도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정부여당과 함께 조사위원회에 ‘기소권' 부여 절대 불가입장을 밝히고 있는 검찰이 ‘미국식' 기소배심제 도입을 선언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0년 ‘스폰서 검사'에 이어 정치검찰까지,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법무부는 뇌물·불법정치자금·부정부패 사건에 대한 판단을 시민에게 맡기는‘검찰시민위' 도입을 검찰개혁안으로 들고 나왔다. 

사회 각계의 추천을 받은 시민 9명으로 구성된 검찰시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들이‘기소 적정' 또는‘불기소 상당' 등 의견을 제시하고, 담당 검사가 그 결과를 존중해 사건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법적기속력이 없다는 점에서‘면피용' 개혁안이라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기소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는 미국 대배심과 일본 검찰심사회와 같다. 검찰은 당시‘미국식' 기소배심제 입법으로 법적 구속력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까지 밝힌 바 있다. 

이는 우리 사법부가 우리나라 법체계 근간을 흔드는 불법적인 개혁안을 들고 나왔다는 말이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사법체계 근간' 운운하는 정부여당과 검찰의 주장이 말도 안 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이 두려워서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는 것인가. 

‘수사권·기소권’ 도입을 막는 진짜 이유는?

최근 법사위 한 의원의 발언을 보면, 그들이 이토록‘수사권, 기소권' 도입을 막으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그 의원은  "(진상조사위는) 책임자를 찾아내서 처벌하고 범죄를 찾아내서 처벌하는 게 1차적 목적은 아니다”며 "(진상조사위 구성 목적은) 세월호가 침몰한 여러 가지 사회적 구조적 원인과 또 거기에 구조를 못한 여러 가지 이유들을 조사해서 안전사회를 위한 대책마련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바른 재발방지대책 수립은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 위에 마련되어야 한다. 책임자 처벌은 정확한 조사에 따르는 또 하나의 과정임에도 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즉, 참사의 최종 책임자가 자신들은 조사를 받기 싫다고 우기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사고당시의 정황이 담겨있는 CCTV를 방치하고, 유병언 시신에 ‘영장을 친' 무능한 검찰과 세월호 참사를‘교통사고'에 비유하는 수준 낮은 정치인들, 꽃 같은 생명을 수장시킨 책임자들이 진행하는 수사를 유가족과 우리 국민들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철저한 진상규명은 희생자 가족들뿐만 아니라 집단적 트라우마에 빠진 우리 국민들을 치유하는 길이다. 남은 가족과 희생자들에 대한 피해배상과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개선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그 책임 추궁에 따른 결과여야 한다는 사실을 새누리당은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진정 국민을 위한 정부라면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의 처절한 외침과 바람을 져버려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 언론을 호도할 것이 아니라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을 당장 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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