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신임 이사장 후보에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내정됐다. 하지만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권오훈·KBS본부) 등이 ‘반대 입장’을 밝히는 등 KBS안팎에서 부정적 여론이 일고 있어 논란이 확산될 조짐이다. 

29일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방통위)는 KBS이사회 신임 이사 후보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위는 다음달 1일 열리는 전체회의에서 이인호 명예교수의 KBS 이사 후보 추천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이 명예교수는 지난 27일 사표를 제출한 이길영 KBS이사회 이사장의 후임 이사다. 때문에 방통위 의결과 대통령 임명 절차를 마치면 KBS 이사장으로 선임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이 명예교수는 원로 역사학자로,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핀란드와 러시아 주재 대사를 역임했다. 이 교수가 KBS이사장으로 선임될 경우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KBS이사장이 된다. 

이인호 후보자 “문창극을 반민족주의자라 하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 

하지만 KBS 안팎에선 이 신임 이사 후보자에 대한 반대기류가 형성되고 있어 향후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KBS 한 기자는 “이인호 교수는 TV조선에 출연해 ‘문창극 동영상’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던 사람”이라며 “한쪽으로 치우친 ‘역사인식’을 가진 사람이 공영방송 이사회 이사장으로 오는 건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 이 기자는 “이 명예교수가 KBS이사장으로 온다면 다수 구성원들과 마찰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KBS 이사장 후보로 내정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JTBC '뉴스9' 화면캡처
 

실제 KBS내부에선 이 신임 이사 후보자가 최근 ‘역사문제’에서 보여준 편향된 인식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후보자는 KBS의 ‘문창극 동영상’ 보도와 관련, 보수진영이 KBS에 맹공을 가할 때 TV조선에 출연해 문창극을 적극 옹호했다. 이 후보자는 당시 TV조선에서 “비기독교인이 보면 오해할 소지가 약간 있다. 하지만 강연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문 후보자를 반민족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관련기사 : ‘문땅크’ 방패 나선 보수우파… 朴 대통령 비난 분열 양상

이 후보자는 역사다큐 <백년 전쟁>과 관련해서도 보수우파에 치우친 인식을 보여줘 논란을 빚었다. 

지난 3월13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국가 원로급 인사 12명과 오찬을 함께 했는데 이 자리에 참석한 이 후보자는 (당시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박근혜 대통령에게 “‘백년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때 일을 많이 왜곡해서 다루고 있다”면서 “이런 역사 왜곡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그런 일이 있었나요?’라고 말하면서 이 후보자의 말을 일일이 메모하며 경청한 뒤 ‘잘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당시 이 후보자의 발언 내용은 조선일보 등을 통해 주요하게 보도됐다. (관련기사 : [단독] 元老들이 우려한 좌파의 인터넷 다큐 ‘백년전쟁’

   
조선일보 2014년 3월15일자 5면.
 

이인호 “김구 선생은 살아 생전 대한민국 체제를 반대한 사람” 

이 신임 후보자가 이명박 정부 초기 ‘광복절을 건국일로 제정하자’는 운동을 펼친 ‘건국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역임한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이 후보자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백범 김구의 얼굴을 고액권 화폐에 새기는 것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문제는 이 후보자가 김구 선생을 ’대한민국 체제‘에 반대한 사람으로 비난했다는 점이다. 당시 인터뷰에서 이인호 후보자는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가로 끝나야할 분이다. 살아  생전 대한민국 체제에 대해 반대한 사람을 어떻게 대한민국과 결부시킬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 박근혜 정부의 ’역사전쟁‘이 시작됐다

방송계에선 이 같은 점 때문에 이인호 후보자에 대한 충분한 검증과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삼석 방통위 상임위원(야권 추천)은 3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면서 “이사장 후보로서 합당한 자격을 갖춘 분이라고 한다면 충분한 검증 절차를 걸쳐 합의 추천해도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재홍 상임위원(야권 추천) 또한 “공영방송 이사장은 제일 중요한 게 독립성, 중립성, 객관성”이라면서 “정치적 중립성과 함께 사회적 특정 집단과 세력으로부터의 독립성도 중요하다. 그 조건 아래에서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은 “언론과 시민사회에서 (이 후보자에 대해) 검증을 하지 않겠냐”면서 “그런 원칙과 기준 위에서 보겠다”고 덧붙였다. 

KBS 안팎에선 이번 이사장 교체가 ‘조대현 체제의 KBS’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미온적 시선’을 보여준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한다. 

KBS 한 관계자는 “이길영 전 이사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표를 제출했지만 조대현 사장 선임 과정에서 정권의 입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에 대한 문책성 인사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며 “이 전 이사장 후임 이사로 이인호 명예교수를 내정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자칫 KBS가 다시 한 번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관련기사 : 조대현의 KBS 연착륙, 구성원 설득에 달렸다

권오훈 KBS본부장은 3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인호 후보자의 ‘역사인식’과 관련해 우려되는 점이 많기 때문에 주시하고 있다”면서 “이 후보자의 역사인식은 ‘개인’의 자유지만 공영방송 이사장의 역사인식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KBS본부는 30일 오후 발표한 <박근혜 정권의 KBS 장악 야욕 아직 못 버렸나?>라는 성명에서 “이인호씨를 청와대가 개입해 기획한 낙하산 이사로 규정하고 절대 반대한다”면서 “전광석화처럼 진행되는 이사 선임절차 뒤에 청와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고 비판했다. 

KBS본부는 “KBS구성원들과 정반대의 상황인식과 역사관을 가진 자가 어떻게 KBS 이사가 될 수 있는가”라면서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칭송하고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보도와 프로그램이 또다시 KBS전파를 타는 불행한 사태가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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