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한국일보가 인수대상자였던 삼화제분에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재매각 공지를 냈다. 이제 한국일보는 새로운 주인을 찾아야 할 상황이 됐다. 한국일보의 '시계'가 장재구 전 회장의 편집국 폐쇄 조치 이후 신문이 정상 발행된 2013년 8월 12일로 되돌아온 셈이다. 한국일보는 앞으로 어디로 가게 될까.

한국일보는 지난 27일 21면에 ‘주식회사 한국일보 M&A 공고’를 냈다.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오는 9월 17일까지 한국일보의 새 인수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다. 26일 한국일보가 삼화제분에 투자계약인수(본 계약) 해지를 통보하는 공문을 보내고 법원의 허가를 받은 이후 이뤄진 신속한 조치다. (관련 기사 : <삼화제분, 한국일보 인수 무산)>

한국일보가 삼화제분에 계약 해자를 통보한 이유는 삼화제분이 돈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화제분은 지난 2월 24일 본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 30억 원을 납입했으나 계약만료일인 지난 25일까지 약속한 인수대금의 잔액을 납입하지 못했다.

   
▲ 27일자 한국일보 21면
 

삼화제분은 지난해 10월부터 경영권을 둘러싼 소송에 휩싸였다. 삼화제분의 박만송 전 회장이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아들인 박원석 현 회장이 불법적으로 주식을 양도받았다며 박 회장의 모친인 정상례씨가 주주권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로 인해 삼화제분의 자산이 묶여버렸고, 한국일보에 납입해야 할 돈을 마련하지 못한 것. 경영권 분쟁으로 인수 절차가 늦어지자 삼화제분이 아닌 박원석 회장이 개인 자격으로 인수에 참여하는 방안까지 나왔으나 이조차 여의치 않았다. (관련 기사 : <한국일보 인수 삼화제분, 가족간 경영권 소송 중>

한국일보 관계자는 “삼화제분이 매출이 많은 회사는 아니지만 부동산 자산 등이 많이 있어서 400-500억 대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현금유보액도 꽤 된다고 하더라. 그런데 경영권 분쟁으로 어머니 쪽에서 돈을 꽁꽁 묶어놔서 수백 억원에 달하는 돈을 마련하기 쉽지 않았던 것 같다”며 “삼화제분 측에서 인수가 무산된 이후 미안하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설명했다.

계약이 무산된 이후 한국일보 내부는 ‘허탈하다’는 분위기다. 10개월 가까이 진행되던 인수절차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구성원들이 허탈감을 감출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차라리 잘됐다’ ‘전화위복이다’는 의견도 나온다. 삼화제분이 약속한 투자금액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구성원들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한 관계자는 “‘최선을 다해보겠다’, ‘믿고 기다려달라’고 이야기하면 모를까. ‘언제까지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이를 지키지 않으니 불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회사에서 여러 차례 (납입을) 요청하고 공문도 보냈는데 전화도 잘 안 받고 답도 없어서 신뢰를 잃었던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계약 해지 이전부터 삼화제분의 한국일보 인수가 무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5월이면 마무리 될 것이라던 인수절차가 7월, 8월로 미뤄졌기 때문이다. 증권가정보지에도 여러 차례 ‘사실상 매각이 중단됐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하지만 한국일보 입장에서는 계약만료일인 8월 25일까지는 삼화제분에 법적인 권한이 있고, 먼저 나서서 무산시킬 경우 계약금 30억 원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일단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잘됐다’를 넘어 ‘더 좋은 인수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고재학 한국일보 편집국장은 “작년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며 “작년에 인수의향서를 내고도 안 들어온 기업들이 있다. 우발부채, 즉 장부상 부채에는 없지만 드러나지 않은 부채가 있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라고 밝혔다. 고 국장은 “상암동 사옥 이동이 잘 안 될 경우 서울시에 100억 원을 물어내야 할 상황이었는데 올해 3월 잘 해결됐다. 그 외에도 서울경제나 인터넷한국일보, 장재구 전 회장 측으로부터 받을 돈도 있다”며 “우발채무가 드러나지 않은 동시에 플러스 요인이 생겼다. 이전보다 나은 조건으로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전에 한국일보 입찰에 참여했던 기업들과 그 밖의 다른 기업들을 포함한 7-8곳이 인수 의향을 내비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일보는 공식적으로 입찰서를 제출한 기업은 아직 없다고 밝혔다. 한국일보 관계자는 “지난번에도 입찰에 참여한다는 기업들이 많았지만 결국 안 했다. 이야기가 돌고 있지만 그 기업들이 실제 들어올 지 안 들어올지는 모르는 것”이라며 “최종 결과를 지켜봐야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의 이번 인수절차는 속전속결로 진행될 예정이다. M&A 공지에도 인수의향서 접수절차는 생략한다고 나와 있다. 이전에는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투자자들이 한국일보에 와서 2주간 실사를 한 뒤, 입찰기회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인수의향서 제출 절차를 생략하고 곧장 입찰을 받는다. 고재학 편집국장은 “신속하게 진행해서 본 계약 및 잔금 납입까지 빠르면 10월 말이나 11월 중순, 늦어도 연내에는 끝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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