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바라는 영화인 동조단식 현장에서.

진도 앞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과 유가족들, 아직도 깊은 바닷속에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광화문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고, 바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위해 절절한 마음으로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단원고 김유민 학생의 아버지 김영오 씨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다 끝내 병원에 실려 가서도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있다. 그 천막 한 켠에서 마음을 보태고, 같이 곡기를 끊는 사람들 가운데 영화인들이 있다.

유명한 감독, 스타 연기자들부터 제작자, 프로듀서, 작가, 현장 스태프들까지 단식을 함께 하는 마음을 미디어오늘에 릴레이로 기고한다. 영화란 관객과 함께 세상을 느끼고 호흡하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세상의 아픔을 함께 공감할 때 영화가 삶이 되는 영화인들이 단식 현장에 함께 하며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아파하는 마음을 담아 싣는 글들에 담긴 진심을 스크린이 아닌 아스팔트 위 단식 천막에서 전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과 이 진심을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주>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하는 영화인 릴레이 기고문 세 번째 / 김건, 시나리오 작가

영화인 동조 단식 17일차에 참여한 김건이라고 합니다. 현장 연출부를 했었고, 시나리오를 쓰고 있고, 감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랫동안 영화만 만들면 된다고, 내 직업은 영화라고 말할 정도만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그렇게 민감하지 못했습니다.

동조단식에 나오게 된 건 어느 정도의 우연이 겹쳐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아침부터 긴장 바짝 하고 나왔습니다. 16회차 분들도 만나고, 같이 하루를 보낼 분들과도 인사하고, 어영부영 이제 밤이네요. 하루 동안 새삼 느낀 것은 배고픈 게 생각보다 견디기 힘들다는 것과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서면 나도 모르게 피켓으로 얼굴을 가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 아버지는 지방에 살고 계십니다. 집에 내려가면 아버지랑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든가, 정치에 관한 대화를 많이 하려고 애를 씁니다. 제가 특별히 정치에 관심이 있고 정치관이 분명해서 토론을 나누는 것은 아니고, 가능하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수긍할 수 있는 지점을 찾으려고 합니다. 아버지는 지역과 연배에 어울리는 정치관을 갖고 계십니다. 대화가 매끄럽기는 힘들지만 들으려고 작정을 하면 불가능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동생이랑 둘이서 듣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어디 가서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된다고 펄쩍 뛰었습니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지 여쭤보니 친구분들이 보내준 카톡이라고 보여주시더군요. 이걸 믿으시냐고 했더니 둘도 없는 친구가 거짓말을 보내겠냐고 하셨습니다. 그렇죠. 그럴 리는 없겠죠.

사실 저는 주춤했습니다. 그 카톡 메시지는 유족 보상에 관한 것이었는데 다분히 악의적이고 노골적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거 다 조작이다, 속고 있는 거다, 라고 말을 하기는 힘들더군요. 왜 그랬던가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아버지는 제가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다녀도 네가 하는 일은 무조건 지지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런 아버지를 제가 가르치려고 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기분상하지 않고 매끄럽게 설득할 자신이 없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인 항변을 하지 않고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 지난 19일 광화문에서 열린 영화인 릴레인 1인 단식 농성 모습.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광화문에 나와 있으니 새삼 그 생각이 났습니다. 집에서, 직장에서 뉴스만 볼 때는 괜찮았는데 투쟁의 일선에 나와 보니 얼마나 진지하게 이 문제를 접근하고 있는가 싶습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고개도 끄덕이고, 그러다가 고향집을 떠나면 그것 다 잊어버리고 댓글도 달고, 광화문에도 나오고. 융통성이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일관성도 없고 비겁한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설득과 변화에는 인내심을 가져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듭니다. 머리를 열심히 굴려 봐도 어떤 태도가 최선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옳고 그름은 공개된 장소에서만 명확할 뿐 사적인 공간으로 넘어오면 애매한 것 같습니다.

결론도 없고 어쩌면 동조단식이랑은 거리가 먼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많은 사람들의 절실함이 모여있구나, 라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면서 또 혼자서는 그런 개인적인 생각을 되뇌이고 있습니다. 국민적인 합의란 것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노력을 하면 가까워질 수 있겠죠. 아무튼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특별법을 꼭 제정해야 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