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轉注)라는 말을 알면 우리가 쓰는 말글의 속뜻과 역사에 관한 안목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運轉)’할 때의 구르다[轉]와 주유소(注油所)의 흐르다[注] 두 단어의 합체다. 실은, 중국 문자학에서 논쟁이 많은 중요한 개념이다.

문자학자 김태완 박사(전남대 교수)의 설명은 무릎을 탁 치게 하는 탁견(卓見)이기도 하거니와 쉬워서 강의 때 자주 써먹는다. 지금 중국 땅인 동북아시아의 황하(黃河) 유역에서 3천5백여년 전에 생겨나기 시작한 그 문자의 얘기다. 우리는 한자라는 명칭으로 활용한다.    

수레바퀴 구르며[轉] 여기저기 흙과 물이 묻고 껌도 붙었다. 부서져 못질도 하고 부속도 갈아 끼웠다. 처음과 모양이 다를 수 있지만, 여전히 바퀴다. 물이 흐르며[注] 바닥 생김새에 따라 더러워지기도 하고 색깔도 달라지며 그 모양이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의 본디는 변함없다. 그게 ‘전주’다. (김태완 著 ‘허신의 고뇌 창힐의 문자’에서 인용)

한자의 모양과 뜻의 변전(變轉)의 역사를 설명한 것이다. 한자뿐이랴. 본래 그림에서 생겨난, 인류가 빚은 첫 상징인 문자가 겪은 여정(旅情)은 대개 그 ‘전주의 틀’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인류의 긍지인 문화(文化)의 본디와 생성에 관한 비유적인 설명이기도 할 터다.

2014년 8월 24일 MBC <뉴스데스크>의 기사다. <관광객들을 태운 보트가 거침없이 물살을 가르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아라나비 체험은 시원한 바람만큼이나...> 화면 흐르며 기자의 얘기와 함께 <아라나비-바다의 순우리말 ‘아라’와 ‘나비’를 조합한 말...>이란 자막이 떴다.

   
▲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한다. 수많은 자신의 고객들, 즉 시청자들에게 저런 거짓을 거리낌 없이 내세울 수 있을까? 뜻을 생각하는 삶은 언론(인)에게도 필요하다.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지구역사에서 바다가 육지였던 적은 있다. ‘바다가 육지라면’이란 유행가도 있다. 그러나 우리말과 역사에서 바다가 ‘아라’였던 적은 없다. 바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아라’가 바다의 순(純)우리말이라는 문화방송(MBC)의 화면은 당연히 거짓이다.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누(累)를 끼쳤다. MBC의 우롱(愚弄)에 시청자들은 하릴없이 바보가 됐다.    

이런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어오던 것이다. 미디어오늘도 이 말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지를 이 연재물 <말글바다> 101회(2014년 1월 29일)에서 누누이 설명한 바 있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이 ‘아라가 바다라면 시즌2’다.

‘전주’란 문자학 용어를 이 글 어귀에 걸어둔 이유는 우리 언론동네의 말글이 이제 본디를 잃은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토로하기 위함이다. 기자는, 언론(인)은 옹알이를 배우는 존재가 아니다. 바탕 없는 인터넷 유행어, 그 개구멍받이 언어를 ‘남들이 그럽디다’ ‘관행이니까’ 하며 베끼는 저 ‘순진무구함’을 어떻게 교도(矯導)해야 할지 한숨만 토해야 하나.

‘아라’가 바다일 리가 없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어디서 무엇이 구르고 흘러 ‘아라가 바다의 순우리말’이 됐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을까? 그럼 바다는 순우리말이 아닌 무엇일까, 한자인가 일본말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단 말이지? 의심하지 않는, 회의(懷疑)를 잃은 언론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말과 글은 언론의 첫째 도구다, 연장이요 무기다.

방송의 옹알이 언어 쇼, 요즘 심하다. 최근 KBS는 비가 오면 물이 넘쳐흐르는 다리를 ‘세월교(洗越橋)’라 한다고 한자까지 메인뉴스에서 보여줬다. 무지(無知)를 지적하는 글에 ‘관행이며, 토목공무원들은 그리 안다’고 주장했다. 또 ‘소울음’이 깨달음의 순우리말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옹알이 쇼를 벌인 적도 있다. 영어도 중요하지만, 우리 말글도 알아야 한다.      

   
▲ 강상헌 언론인·(사)우리글진흥원 원장
 

< 토/막/새/김 >
한자의 구성원리는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의 4가지다. 배울 때 처음 나온다. 다음, 만들어진 글자를 늘리거나 여러 뜻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라며 전주(轉注)와 가차(假借)라는 개념을 내민다. 이쯤에서 ‘한자를 정복하리라’는 열망에 불타던 우리 학도들 풀이 죽는다. 한자가 그림이라는 사실을 여러 글자로 실증적으로 풀이하는 방법을 우리 교육은 잊고 말았다. 연암 박지원의 표현대로 ‘마치 술 취한 이가 장님 인도하듯’ 대개 훈(訓)과 음(音)만 외워 한자선생을 한다. 한국어교육 위기 중 하나다. 한자, 쉽고 재미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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