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바라는 영화인 동조단식 현장에서.

진도 앞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과 유가족들, 아직도 깊은 바닷속에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광화문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고, 바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위해 절절한 마음으로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단원고 김유민 학생의 아버지 김영오 씨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다 끝내 병원에 실려 가서도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있다. 그 천막 한 켠에서 마음을 보태고, 같이 곡기를 끊는 사람들 가운데 영화인들이 있다.

유명한 감독, 스타 연기자들부터 제작자, 프로듀서, 작가, 현장 스태프들까지 단식을 함께 하는 마음을 미디어오늘에 릴레이로 기고한다. 영화란 관객과 함께 세상을 느끼고 호흡하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세상의 아픔을 함께 공감할 때 영화가 삶이 되는 영화인들이 단식 현장에 함께 하며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아파하는 마음을 담아 싣는 글들에 담긴 진심을 스크린이 아닌 아스팔트 위 단식 천막에서 전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과 이 진심을 나누고자 한다. <편집자주>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 하는 영화인 릴레이 기고문 두 번째 / 이숭겸, 청년영화인

유민 아빠 단식 35일차. 광화문 광장에 구경만 하다 왼쪽 입구 천막에서 발을 멈췄습니다. 어머니 한 분이 홀로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노란 리본. 어머니께 인사를 여쭈었습니다. 어머니는 거침없이 목에 건 명찰을 보여주며 “순범이 잘생겼지?” 라며 단원고 순범이 유가족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평범한 미용사로 가정을 지키며 살아가던 어머니는 막둥이 순범이를 잊지 못해 끝까지 지키겠다며 광장에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순범이가 일하느라 바쁜 엄마를 위해 청소며 빨래를 도맡아 하던 ‘하는 짓마다 예쁜 아들’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이름처럼 고운 막내 순범이를 그리워하며 '나는 말도 못하고 아는 것도 없었는데 이제 다 알 것 같다'고 쑥스러워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그만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 첩보 영화처럼 청와대 주변 경찰들의 경계를 피해 골목골목을 돌아 담을 넘어 동네 주민센터에 도착했지만, 경찰들은 유족과 기자 외에는 들어갈 수 없다며 막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 앞바다에서부터 국회 그리고 광화문까지 쉼 없이 달려온 어머니의 모습 속에는 피곤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만있지 않고 늘 무엇을 해야 살 것 같다는 어머니께서 손수 만들어준 노란 리본을 목에 걸어주시며 “이거 순범이한테 줄려고 만든 건데, 기분이다 너 가져. 나는 또 만들면 되니까” 하시며 어머니는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 끊임없이 리본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광화문 광장에서 어머니와의 동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머니 곁에 있으려고, 그리고 '예쁜' 아들 노릇 하고 싶어서, 마침 ‘영화’롭게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운 좋게도 선배님들이 열어놓은 영화인동조단식농성장 지킴이로 단식을 시작하였고, 사흘 동안 단식하며 오고가는 사람들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했습니다. 이틀 후 사십일 째 새벽부터 유난히도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내려 불안함을 느낀 사람들이 자지 못하고 밖에 나와 유민 아빠를 걱정했습니다. 불현듯 아침이 밝자마자 응급차가 오더니 앙상하게 마른 유민 아빠를 실어 날랐습니다. 가시나무 같은 아버지의 손과 발이 너무나 따갑게 와 닿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날 밤 어머니들이 나섰습니다. 청와대로 가는 길에 경찰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옆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맨 바닥에서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대통령이 약속한대로 세월호 가족들에게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함께 나섰습니다. 전해 듣기로 가족들은 가방에 자신들의 영정 사진 하나를 넣어뒀다고 합니다. 마치 불가능한 전쟁 속에서 필사의 힘을 다해 싸우던, 광화문 광장에 우뚝 서있는 그분의 모습 같았습니다.

다른 일정으로 어머니 곁을 잠시 떠나있다가 광화문 광장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께서 청운동으로 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다른 분들과 바로 따라 나섰습니다. 마치 첩보영화인 양 청와대 주변 경찰들의 경계에 막혀 골목골목을 돌아 담을 넘어 주민센터에 도착했지만, 경찰들은 유족과 기자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며 막아섰습니다.

바로 앞에 어머니를 두고 이산가족처럼 떨어져 바라보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데도 맨 바닥에 비닐 하나 덮고 누워 계시는 모습에 옷을 벗어 드리려했지만 경찰들의 방해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새벽까지 그렇게 마주하다 광장으로 돌아온 뒤 다시 주민센터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혼자 올라가 아무렇지 않게 순범이 어머니 조카라고 말하고, 좀 뵙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경찰이 어머니를 찾아주었고, 어머니께서는 신발도 신지 않고 나오셔서 맞아주셨습니다.

그렇게 청운효자주민센터 앞 아스팔트 위에서 동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날 밤 어머니께서는 저를 다른 분들에게 소개하며 여기까지 당신을 쫓아왔다고 웃으면서 자랑했습니다. 어머니는 순범이를 애기라 부르곤 했다며, 저도 애기라고 하고는 자신의 옆자리에서 자라고 덮고 계시던 담요를 줬습니다. 저는 일주일째 씻지 않아서 냄새 난다고, 저쪽으로 가서 자겠다고 했더니, 오히려 끌어안아주시며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똑같다며 걱정 말고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빗방울이 또 떨어지자 아버지들이 나서서 순식간에 뚝딱 천막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제작부보다 빠른 그 모습에 놀라워했더니 “여기 사람들 어디를 가도 잘 수 있어. 이제 고수가 되었어”라며 웃었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지만 늘 한결같은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궂은 날씨에도 유족분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 중에 성호 어머니께서 집시법이 뭐냐며, 집시들 위한 거냐며 웃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고, 의경들을 보면 다 아들같은 애들인데 고생이라고 걱정했습니다. '저 애들은 아무런 잘못 없는데 윗사람이 문제'라며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을 집시 오빠라고 하면서 그분을 한번 만나 보고 싶다고 웃었습니다.

그동안 순범이 어머니께서는 노란 우산집들로 장미꽃을 만들었습니다. 순범이 어머니는 당신이 집시 여인이라며 끝이 없는 방랑을 하는 밤에는 별보며 낮에는 꽃 따라 다닌다고 흥얼거렸습니다. 순범이 어머니는 딸은 예술을 한다며 당신을 닮았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어떤 순간에도 항상 긍정적으로,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한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유가족 기자회견장에 시민 단식 31일째인 연천희 선생님께서 오시자 어머니는 고맙다며 그렇게 만든 축하의 꽃을 선물했습니다.

   
▲ 순범이 어머니께서는 노란 우산 집을 이용해서 장미 꽃을 만들고 계셨다.
 

거리의 예술가처럼 어머니는 어디를 가든 어떤 상황에도 농성장 분위기를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삭막한 아스팔트 위에 피는 꽃들로 인해 음식과 물이 넘쳐났습니다. 마치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처럼 농성장에는 이름 모를 이들로부터 온 음식과 물이 의경들 머리 위로 전해졌습니다. 여름 더위에도 상하지 않는 술떡을 챙겨 보낸 분의 마음이 함께 전해졌습니다. 어머니들은 자신들 때문에 고생하는 의경들과 파출소에도 그 떡과 음식들을 나누어 드렸습니다. 같은 공간에 마주서서 서로 대치하지만 같은 국민이라는 존재만으로 우리는 함께 먹고 나누는 식구 같았습니다.

주말이 지나 굳게 닫혀있던 주민센터가 열리자, 그동안 불편하게 파출소 공용화장실을 쓸 수밖에 없던 어머니들은 주민센터를 이용하면서도 그곳을 방문하는 주민들에게 폐 끼치지 않도록 거듭 양해를 구했습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에도 불평불만 갖지 않고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나눴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자식에 대해 더 깊은 애정을 갖는 이유는, 어머니는 자식을 낳을 때의 고통을 겪기 때문에, 자식이란 절대적으로 자기 것이라는 마음이 아버지보다 강하기 때문’이라고 했듯이 고된 환경에도 오직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자녀들이 당한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서 두 발 벗고 나서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우리 어머니의 위대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휴대폰 충전기도 준비하지 못하고 함께 한 현장에서 유가족들과 뜻을 함께 하는 영화인의 하나로 참여기를 쓰려고 다른 사람들 충전기를 빌려가며 조금씩 전화기에 메모했던 생각들을 모아 정리해보았습니다. '어떻게 하지? 아무것도 아닌 내가 무슨 글을 쓸 수 있을까?' 잠깐 고민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어머니들을 위한 마음을 나누어야겠다는 다짐 하나로 정신없는 상황 속에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적어보았습니다. 이 글을 통해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또 나누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