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해 단식을 하던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병원에 실려가는 등 유가족이 하나둘 쓰러지면서 천주교 사제들이 이들을 대신해 무기한 단식기도와 미사에 들어갔다. 사제단은 박근혜 정권을 빗대어 “정의가 사라진 위정자”라며 “(시민들이) 불의에 맞서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수도자들은 25일 저녁 6시30분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참사 진실 규명을 위한 전국 사제, 수도자 단식기도회’ 첫 미사를 열어 진실을 덮고 유가족을 박해하는 박근혜 정권을 성토했다. 또한 이들을 외면하는 대중에 대해서도 사제단은 각성을 촉구했다. 사제단은 이날 미사를 시작으로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기도에 들어갔으며, 20여 명의 각 지역 대표 사제 및 운영위원들이 천막을 지키면서 무기한 단식을 벌인다. 이밖의 사제 및 수녀들은 단식기간을 정하지 않고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단식미사엔 사제와 수녀 등 수도자를 포함해 모두 800여 명이 참여했으며, 미사 중 서울대와 경희대에서 출발한 세월호 특별법 학생 행진단 400여 명도 합류했다. 경찰은 이날 오후부터 버스차량 50여대를 동원, 광장 좌우로 배치해 대규모 버스차벽을 형성했다. 

한만삼 사제단 신부(수원교구 기산성당)는 강론에서 이번 미사에 대해 “이 자리에 모여 드리는 기도의 첫 시작은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탄원이자 소망”이라고 말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수도자들이 25일 저녁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앞에서 개최한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한 단식미사' 사진=조현호 기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수도자들이 25일 저녁 개최한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한 단식미사' 사진=조현호 기자
 

한 신부는 ‘4월 16일’에 대해 “그날은 바로 오늘의 행복이 멈춰서게 한 날이며 시간은 흐른 것이 없고 고통의 골짜기에 고였다”며 “정권이 진실을 은폐한 시간이며, 뻔뻔한 약속과 새로운 거짓말로 언론이 뒤덮인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한 신부는 세월호 참사로 인한 상처를 두고 “상처는 더 곪아갈 뿐이라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며 “유가족만의 상처가 아니라 나의 상처이자 온 국민의 상처였다”고 강조했다.

한 신부는 300여 명의 아이들이 한 명도 구조되지 못한 참담한 사태에 대해 “밤하늘의 별 300개를 헤아리기도 힘든데 왜 300여 명의 아이들이 구조되지 못하고 죽어야 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에 구명조끼를 입고도 나오지 못한 채 부모님과 가족을 걱정하며 울부짖었다”며 “이들은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미안하다면서 먼길을 떠났다”고 말했다.

한 신부는 “선장과 선원은 구조를 위해 끝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며, 해경도 아무도 구조하지 못했고, 언론은 모두 거짓 방송을 했다”면서 “이 때문에 우리는 의문을 품었다”고 밝혔다.

그 많던 해군 구조선은 왜 출항도 안했는지, 대통령은 왜 근무지에서 사라졌는지, 정부는 왜 이들을 방치했는지 등의 의혹을 제기한 한 신부는 “죽음의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만삼 신부는 절차가 있을테니 지금까지 숨죽여 참고 기다렸으나 “제대로 수사된 것도, 밝혀진 것도 없었으며, 거짓말과 침묵에서 고통이 샘솟고 있다. 이 고통 앞에 중립은 있을수 없다”고 성토했다.

한 신부는 곁에서 울어줄 이웃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더 애통한 일은 울어줄 양심조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라며 “양심은 악을 피하고 거짓을 미워하며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나 (현실은) 악이 선과 진리보다 일상적이 되고 평범해졌다”고 우려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수도자들의 25일 단식미사가 열린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좌우에 경찰이 설치한 버스차벽. 사진=조현호 기자
 

그는 “우리 안엔 ‘내 이익은 뭔가, 나와는 상관없다, 무관심하라, 그들의 고통앞에 고뇌하지 말라, 탐욕과 이익을 위한 나의 행위를 정당화하라’면서 아주 평범하게 우리의 일상을 지배했다”면서 “하지만 양심은 하느님 말씀이며 사라지지 않고, 참묵하지 않으며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 신부는 “일상의 지배와 침묵을 거부하고 양심을 일으켜 빛을 이룰 것이니 불의에 침묵하지 말고 저항하라”며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며 불의는 극복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 신부는 현 정권을 두고 “정의로운 위정자가 사라졌다. 위정자에 정의로움이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평화는 다툼없이 침묵을 말하지 않으며, 정의의 열매가 진정한 평화”라며 “정의는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진실을 두려워하는 것은 거짓된 선이자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한 신부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꺼져가는 생명 유민아빠를 구하기 위해 모두 연대하라”며 “제대로된 특별법, 수사권 기소권을 갖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힐 때까지 우리의 저항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에게도 그는 “불의에 굴복하지 말고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빼앗긴 아이들이 가족 품에 돌아올 것이라는 꿈을 꾼다”며 “그래야 평화를 이땅에 되돌려주는 것이며, 이제 그날을 위한 기도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미사를 집전한 전종훈 전 정의구현사제단 대표신부는 “이 시간은 앞으로 두려움을 떨쳐내는 첫 시간”이라며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잊혀지는 것이므로, 오늘 이 시간은 무서움을 이겨내는 첫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수도자들이 25일 저녁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한 '세월호 진실규명을 위한 단식미사' 사진=조현호 기자
 

전 신부는 “저희의 작은 몸짓은 유족에는 위로가, 정권에는 경고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나승구 현 정의구현사제단 대표신부는 “우리가 간절히 원하고 유족이 원하는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유가족 눈물이 마를 수 있을까, 상처입은 가슴과 심장이 법이 제정됐다고 해결될 것인가”라며 “우리는 이미 잃었다. 팔다리가 찢겨져 나갔다”고 말했다.

나 신부는 단식기도에 대해 “가족들의 아픈 상처와 슬픔, 이들이 울고 있음을 보고 인정하고 함께 가자는 것”이라며 “가장 아픈 이들의 마음을 나누고자 하는 것이자, 유족의 마음 안에 담긴 슬픔을 조금이나마 빨리 녹였으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을 더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남겨진 빚 만큼, 슬픔 만큼 비워놓고, 우리가 가진 것을 내어놓을 때 함께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동훈 정의구현사제단 상임위원 신부는 “당장 오늘부터 밤샘기도에 들어갈 것이며, 천막이 하나 뿐이니 대부분은 노숙을 하게 될 것”이라면서 “정말 전시(戰時)를 방불케한다”고 말했다.

장 신부는 “이처럼 대한민국 어디도 안아픈 곳이 없다. 온갖 곳에서 소리를 지르고 아픈 사람이 천지”라며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처럼 교회는 야전병원이 돼야하는 현실이 됐다”며 각오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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