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22일 ‘세월호 국민대책위원회’를 ‘직업 시위꾼’으로 낙인 찍으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연대하는 시민단체와 국민들을 노골적으로 폄하했다. 또 ‘유가족 분열’ 프레임으로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고립시키려는 의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대책위 관계자들은 “매우 비열하고 저열한 방식”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22일치 1면 <세월호法, 이젠 결단 내려라>를 시작으로, 3면 <與野, 애초에 불가능한 걸 협상한다며 시간만 끌었다>에서 유가족이 바라는, 수사‧기소권이 부여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초헌법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4면 <유족 단식 말리겠다던 문재인, 3일째 동조 단식>에서는 광화문 광장에서 동조단식 농성 중인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정조준했다.

   
▲ 조선일보 22일치 사설
 

그러나 조선일보의 ‘민낯’은 사설에서 드러났다. 조선일보는 사설 <세월호 유족 도와준다며 오히려 망치는 사람들>에서 세월호 국민대책위원회를 향해 “이 단체에는 한‧미(韓美) FTA 반대 시위, 광우병 촛불 시위, 지난 대선 불복 촛불 집회의 단골 주동‧출연자들이 모여 있다”고 비난했다. 

조선은 “세월호 유가족들 주변에 병풍을 치고 있는 세력과 정치인들이 순수한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건 자신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이들 중 상당수의 머릿속에는 세월호를 빌미로 제2의 광우병 사태를 일으킬 방법이 없을까 하는 궁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장의 근거는 전혀 내놓지 않고 상상만으로 시민단체들을 힐난한 것.  

이어, 조선은 유가족과 연대하는 시민단체들을 “직업 시위꾼”이라고 규정하며 “이미 많은 사람이 세월호 문제라면 고개를 돌려버리고 있다. 7‧30 재‧보선에서 민심이 여당이 아니라 야당을 심판한 것도 그 때문이다. 세월호 때문에 많은 사람의 생계가 걸려있는 민생 법안들이 전부 볼모로 잡혀 있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특별법 국면에서 보수언론이 주도적으로 들고 나온 경제위기 프레임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세월호 국민대책위 관계자는 차마 언급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저열한 수준의 사설이라고 비판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조선일보는 가족과 국민, 시민단체를 분리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기사를 썼다”고 비판했다. 이 처장은 “조선일보 말대로라면 지난 7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던 350만 명의 서명은 무엇이냐”며 “연일 이어지고 있는 국민들의 연대에 대해서 어떤 입장인지 밝히고 나서야 대책위를 비난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실제 ‘유민아빠’ 김영오씨를 비롯해 세월호 유가족과 연대하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세월호 국민대책위에 따르면, 지난 40일 동안 김씨와 함께 하루라도 곡기를 끊었던 시민만 2200명이며, 21일부터 시작된 온라인 단식 농성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들만 1만7000명이다.

이태호 사무처장은 “조선일보는 유가족들을 강경파로 몰고 있다”며 “만약 조선일보 논리대로 강경파가 있다면 지난 유가족 총회에서 여야의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에 압도적 지지가 나왔겠느냐. 또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단식농성이 과연 강경한 대응인지 조선일보에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유가족 곁에서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위로했던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조선일보를 포함한 보수언론은 어떻게든 세월호 유가족들을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며 “어떻게든 세월호 국면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박근혜 정권의 입장이 대변된 것이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조선일보는 ‘경제 민생’ 프레임뿐 아니라 강경한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 때문에 일반인 유가족들의 의견이 묵살되고 있다는 식의 기사를 양산하고 있다. 대표 사례가 조선일보는 22일치 3면(“세월호 참사 수습에 外部 세력은 빠져야”)이다.

   
▲ 조선일보 22일치 3면.
 

이 기사에서 일반인 희생자 가족대책위 정명교(故 정원재씨 아들) 대변인은 “우리는 외부 세력이 세월호 참사 수습에 개입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실제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일부 진보단체의 의견에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족의 입장에서 정부에 사고 해결을 요청하는 모습을 원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사무처장은 “물론 유가족이라고 모두가 똑같은 입장일 수는 없다”면서도 “큰 틀에서 일반인 희생자 대책위와 가족대책위는 함께 해왔다. ‘성역없는 진상조사’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함께 내왔다”고 밝혔다. 그는 “조선일보는 유가족끼리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지만 이는 미디어의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 21일 광화문 릴레이단식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 (사진 = 김도연 기자)
 

박진 활동가는 “유가족도 다양한 의견을 내고 있으며 다양한 요구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조선일보와 같이 ‘침소봉대’하는 것은 왜곡이나 다름없다. 조선일보야말로 누구의 편에서 서서 유가족을 분열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미류 세월호 국민대책위 공동상황실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로 누가 가족 곁에 있었는지 확인해 보면 조선일보의 논리가 타당한 것인지 알 수 있다”며 “유가족 곁을 지켰던 것은 셀 수 없는 많은 국민이었다”고 밝혔다. 

미류 실장은 “세월호 참사의 고통은 잠깐 겪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치유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며 “소위 주류미디어가 유가족의 아픔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보다 유가족을 분열하려고만 하니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유가족의 아픔만 키우는 조선일보 보도는 매우 잔인하고 비열하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 21일 광화문 릴레이농성장에서는 시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세월호 유가족과 연대했다. (사진 = 김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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