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아빠 김영오(47)씨가 결국 병원으로 후송됐다. 후송될 당시 김씨의 혈압은 80/50, 맥박은 99, 혈당은 51. 김씨 주치의인 이보라 동부병원 내과과장은 “의학에서 이 정도 혈압은 ‘쇼크’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정상 수치는 혈압 120/80, 맥박 60. 혈당 80에서 120 수준이다. 이 과장은 “탈수가 되면서 혈압이 떨어지고 낮은 혈압으로 체순환을 유지하려고 하니 심장이 빨리 뛴 것”이라고 말했다.

22일 오전 2시 30분. 광화문 텐트에서 김영오씨 혼자만 잠들지 못했다. 갑자기 건강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심장이 가쁘게 뛰었다고 했다. “숨이 가빠서 죽을 뻔 했어요. 가슴이 콩딱콩딱 엄청 빨리 뛰는거에요. 손을 들려고 해도 힘이 안 들어가고. 머리도 지끈지끈 아프고. 잠이 안 와서 날 새다가 지금 왔네요.” 서울 동부병원 입원실에서 김영오씨를 만났다. 김씨가 단식을 시작한 지 40일 째이다.

병실에 들어서자 의료진과 원재민 변호사가 보였다. 지난 40일 동안 김씨를 돌봤던 원 변호사는 김씨의 손을 주무르고 있었다. 혈액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인지 김씨의 손은 무척 차가웠다. 병실 한쪽에서 이 과장과 김영일 동부병원 병원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의료진에 따르면 현재 멀티비타민, 티아민을 투여중이고 앞으로 마그네슘, 칼슘 등을 투여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 서울 동부병원에 입원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47)씨. 사진=박준수
 

 

 

   
▲ 서울 동부병원에 입원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47)씨. 사진=박준수
 

침대에 누워있던 김씨가 휴대전화를 찾았다. “유나한테 연락을 해줘야 하나 어째야 하나. 어제도 기사보고 걱정이 돼서 연락이 왔더라고” 22일 오후 둘째딸 유나는 김씨에게 “나 걱정 시키꾸얌? 아빠랑 빨리 밥 같이 먹고 싶어ㅠㅠ. 아빠 지금 힘들어서 누워있찡?ㅠㅠ”이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김씨는 “아닌데 돌아다니는데 ㅋㅋ”라고 답했지만 사실 김씨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 했다.

김씨는 자신의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된 시점을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방문 이후라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가족들을 설득하기 위해 김씨가 농성 중인 광화문을 찾아 “재협상은 없다”고 말했다. 화가 난 김씨는 주먹으로 책상을 쳤다. 김씨는 “가뜩이나 몸이 힘든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 끝까지 혈압이 올라가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그때 누워서 쉬었어야 했어요. 그런데 지팡이 짚고 억지로 견디고 있었지. 그 와중에 청와대를 갔잖아. 대통령 면담 신청서만 쓰고 나오려고 했는데 그것까지 막데? 두 차례 몸싸움을 했어요.”

당시 김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약하고 가난한 나를 방한 중에 대통령보다도 더 많이 만나주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대통령이 나설 사안이 아니라며 이를 거부했다. 이미 육체적으로 많이 쇠약해진 상태였기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컸다.

그럼에도 김씨는 이날 오전까지도 병원 후송을 완강히 거부했다.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이날 오전 7시께 “유민아빠의 건강상태가 급속도로 악화돼 강제로라도 이송해야 할 상황"이라며 "아직까지도 본인은 버티겠다고 하고 있으며 의료진과 가족들은 계속 설득중이다. 하지만 끝까지 버티실 경우 강제로라도 이송을 해야 한다”고 기자들에게 알려왔다.

   
▲ 유민아빠 김영오(47)씨의 둘째딸이 보낸 카톡. 사진=이하늬 기자
 
   
▲ 원재민 변호사가 유민아빠 김영오(47)씨의 손을 주무르고 있다. 사진=이하늬 기자
 
   
▲ 서울 동부병원에 입원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47)씨. 사진=박준수
 

결국 특별법 때문이다. 병원으로 후송되기 직전 함께 단식을 하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김씨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김씨는 “세월호 특별법 꼭 제정해주세요”라고 답했다. 병실에서도 김씨는 단식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고집’을 부렸다. 의료진은 이날 점심부터 죽물이라도 먹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보라 과장은 “보식을 하더라도 부작용이 올 수 있다. 사람이 죽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40일,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을 물었다. 김씨는 “사람들이 내 앞에서 우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40일 내내 반복된 장면이지만 그는 여전히 가슴이 아프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 미안함 때문에 그는 38일 동안 천막을 내리지 않았다. 단식 39일째인 21일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어 처음으로 천막을 내렸다. 그는 “나한테 힘을 실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내가 잘못된 일을 하는 게 아니구나. 참 고맙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신을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과 시민들에게 “특별법 제정을 위해 힘 써주고 싸워주고 있는 분들, 감사합니다. 제가 병원에 왔다고 해서 멈추지 말고 안전한 나라가 될 때까지 끝까지 싸웁시다. 저도 이틀이 되든 삼일이 되든 기력을 회복하면 광화문으로 나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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