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5일 간 많은 관심과 감동을 낳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대해 과거 국가적 규모 또는 큰 행사가 열릴 때마다 적극적인 동참과 공개후원 및 캠페인 광고까지 해왔던 재벌기업들이 이번 교황 방한 기간 동안엔 전혀 눈에 띄지 않아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교황 차량 ‘쏘울’을 지원한 현대자동차 조차도 일체 별도의 후원이나 방송광고도 하지 않았으며, 삼성전자 등 일부 기업은 휴대폰 등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이 같은 기업의 ‘조용한’ 활동은 G20 개최 때 기업 본사 건물 앞에 대형 현수막을 거는가 하면 앞다퉈 환영한다는 방송·신문광고를 했던 2010년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 축하 현수막을 내걸었던 과거의 적극적인 태도와는 크게 다르다.

이번 교황 방한 기간 동안 기업이 협찬한 것과 관련해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관계자는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현대기아자동차가 수행단에 소울을 비롯해 대형버스 등 차량을 협조해준 것과 삼성전자에서 첨단IT 스마트폰을 수행원이나 참가자에게 일정대수를 지원해 기간내 사용해보고 가져갈 수 있도록 한 것, 시복식 때 진로 하이트에서 식수를 무상으로 제공한 것 등”이라며 “협찬 규모가 각각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 수준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삼성은 시복식 때 광화문 거리에 LED 대형스크린을 설치 지원해줬다.

또한 KT와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이 교황 이동시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곳에 원활한 전화연결을 위해 기지국이나 네트워크망 지원을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는 의례적으로 이들 정보통신업체에서 지원해주는 것이라고 KT와 SK텔레콤 홍보팀 관계자가 전했다.

   
지난 15일 광화문에서 열린 교황의 시복식 참가 때 설치된 삼성의 대형 스크린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기업 스스로 25년 만의 교황 방한을 환영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신문·방송 광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LG유플러스만이 신문 광고를 한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방한준비위원회의 재정을 맡고 있는 한 신부는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알려진 곳 외에 일부 기업이 협찬하기도 했고, 모르게 한 곳도 있다”며 “(기업이나 방준위 모두) 떠벌리는 것은 안좋겠다, 검소하게 하자는 취지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우리는 생색내거나 기업PR에 이용하지 않았다”면서도 “예상했던 것보다 (기업 지원이) 조금 적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적극적으로 유치를 안한 것도 있고, 한국 카톨릭 전체가 직접 부담하는 쪽으로 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교황방한준비위원회 측과 현대자동차·SK텔레콤 등 기업들은 소박하고 소탈한 성격의 교황에 걸맞지 않게 기업이 요란하게 나설 경우 교황에도 누가 될 뿐 아니라 기업이미지에도 역효과가 날 것을 고려해 초기부터 PR을 자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관계자는 “교황 방한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행사의 순수성을 잃지 않도록 노력했기 때문”이라며 “가능하면 도움을 안받고 도움을 받았다해도 상업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하려 했다”고 전했다. 그는 “대기업으로부터 후원받고 광고체결을 하면 행사비를 쉽게 조달할 수 있겠으나 이렇게 해서 얻는 이익 보다 부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안하는 것이 맞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송광고나 공개적인 협찬을 하지 않은 데엔 방송사나 신문사의 요청 자체가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KT 홍보팀장은 “광고효과가 비용에 비해 크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지는 않는데 이번엔 언론사 요청 자체가 거의 없었다”며 “그러니 검토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기업 역시 애초부터 역효과를 우려했다는 설명이다. 현대기아자동차 방송홍보팀 관계자는 21일 “교황은 일개 기업의 홍보효과 마케팅을 넘어 카톨릭을 넘어 귀감 되는 지도자라는 점에서 기업이 나서서 이용하는 것은 성격에도 안맞다”며 “차량 지원도 교황 방한준비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대의적으로 지원해줬을 뿐 나서서 홍보하거나 마케팅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SK텔레콤 홍보팀 매니저를 맡고 있는 한 인사는 “애초부터 교황방한을 PR 소재로 활용하지 않기로 했다”며 “교황의 소신과 성향이 소박, 소탈하고 드러내지 않는 것을 중시해서 PR 활동을 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KT 홍보팀장도 “종교 행사에서 드러내놓고 마케팅 기회를 삼는 것이 반감을 살 수 있는 면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홍보팀 부장은 “우리는 내부는 협찬 여부에 대해 말씀 드릴 게 없고, 특별한 입장도 없다”고 답했다.

   
지난 2010년 서울시청에 내걸린 삼성의 G20 환영 대형 현수막 광고.
ⓒ연합뉴스
 

하지만 각종 국제 스포츠 경기, 주요 국빈 방문 등 크고 작은 행사 또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어떻게든 적극성을 보였던 기업들이 아예 자신을 이렇게 드러내지 않은 데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즉위한 이후 교황이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교회, 자본주의의 폐해, 신자유주의의 폭력성 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던 점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장동훈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 신부는 2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교황 스스로 소박한 것을 요구하고 자신의 메시지에 집중하라고 했으니 이를 준비하는 쪽에서도 신경썼을 것”이라면서도 “교황이 여러 강론과 기도문을 통해 가장 경계한 것이 '신자유주의 독재'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기업 스스로도 부담이 없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 방송홍보팀 관계자는 “교황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지 여부를 셈하는 것을 넘어 교황 방한이라는 축제에 동참한 것일 뿐 그런 면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황방한준비위원회 재정담당 신부도 “대기업인데도 기꺼이 돈을 낸 곳도 있고, 기업도 교황을 좋게 보기도 했다”며 “우리가 지원을 요청한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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