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고 황유미·이숙영씨가 항소심에서도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함께 소송을 진행한 고 황민웅씨 등은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반올림은 일부 산재 인정을 환영하면서도 노동자가 산재입증을 해야 하는 현행 법제도는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제9행정부(이종석 부장판사)는 21일 오후 고 황유미·이숙영에 대해 “고인들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습식식각 공정 등에서 근무하면서 벤젠 등의 유해물질에 노출됐을 개연성이 있고 이로 인하여 백혈병이 발병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이들은 지난 2011년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산재를 인정받았다.

황유미씨는 삼성전자 온양·기흥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하다 2005년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발병해 2007년 3월 숨졌다. 당시 나이 23세였다. 황씨와 같은 라인에서 근무했던 이씨도 백혈병에 걸려 2006년 8월 30세의 나이로 숨졌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이들을 산재 사망으로 인정하지 않아 유족들은 2010년 1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고 황민웅 및 김은경, 송창호에 대해서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하면서 유해물질에 일부 노출됐을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이로 인해 백혈병 등이 발병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 역시 1심과 같은 판단으로 결국 산재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고 황유미씨의 부친 황상기씨가 21일 삼성반도체 백혈병 산재소송 2심에서 승소한 뒤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이하늬 기자
 

황민웅씨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설비보수 엔지니어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다. 김은경씨는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투병 중이며 송창호씨 역시 같은 공장에서 일하다 악성림프종에 걸려 투병중이다.

재판이 끝나고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은 일부 산재 인정을 환영하면서도 노동자가 산재입증을 해야하는 현행 법제도는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산업재해 인정 판결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실로 험난했다”며 “노동자 측이 산재 입증의 책임을 지는 현행 법제도 하에서 산재임을 증명할 방법은 많지 않다”고 법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재판부 또한 이런 부분을 인정했다. 이종석 판사는 이날 선고에서 “이번 사건의 경우 인과관계 입증이 결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재해 내용과 발병 과정에서 인과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입증하기 어렵고, 상당한 시간이 경과해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우며, 입증 책임자인 원고들이 증거에 접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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