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방문이 있기 직전 지역의 한 공무원이 교황이 방문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역의 한 신부가 바티칸의 교황에게 편지를 썼는데 내용 중에 ‘과거 순교자가 해미 등에 순교자가 너무 많았고, 아직도 땅을 파면 순교자의 뼈가 나온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 부분을 보고 교황이 아직도 그런 곳이 있느냐, 대단하다며 방문을 결심했다고 한다.

순교자의 뼈가 나오는 곳은 해미 특히 그곳의 여숫골을 가리킨다. 17일 교황은 해미에서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보았다. 아시아청년대회가 해미읍성에서 열린 이유는 수천 명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순교자가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해미가 속한 내포지역의 신자들이 당시 군사관할기구 호서좌영이 있어 이곳에 와서 모두 처형당했다. 순교당한 사람의 수는 밝혀진 것만 3,000명이다. 각 곳에 그 순교자의 묘는 산재되어 있기도 하다. 해미읍성 안에는 호야나무(회화나무)가 있다. 많은 신자들이 목이 매달려 있던 나무였다. 해미읍성 서문 바로 앞에는 자리개 돌이 있다. 이 돌 다리는 남형(濫刑)이 이루어진 장소인데 남형은 쇠도리깨나 사람 머리를 치거나 돌에 사람머리를 패대기쳐 죽이는 형벌로 잔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남쪽으로는 개천을 건너 여숫골이 있다. 여숫골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신자들이 처형장으로 끌려갈 때 외치던 예수마리아를 주민들이 여수 머리 즉 여우머리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부터 신자들이 끌려가 죽은 골을 여숫골이라고 했다. 여숫골에 있는 둠벙에서만 천여구의 시체가 나왔다. 둠벙은 이쪽 지역어로 물웅덩이를 가리킨다. 처형장이 사람들로 넘쳐나자 두 팔이 묶인 신자들을 진둠벙에 데려가 거꾸로 물속에 처박아 숨지게 했던 것이다. 사람을 물속에 생매장한 것이다. 이곳에는 유해를 따로 박물관 묘에 모시고 있다. 이곳을 해미순교성지라고 한다.
 

   
▲ 지난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시아 주교들을 만나기 위해 충청남도 서산 해미성지를 방문해 차에서 내려 신도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 노컷뉴스
 

17일 해미를 방문한 교황은 소성당에서 아시아주교 60여명과 함께 만났다고 한다. 많은 아시아 주교들이 감격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아놓은 곳이나 진둠벙을 찾았다는 소식은 없었다. 주교들과 만난 이후 나눈 오찬의 메뉴 내용은 크게 보도가 되었다. 애초에 교황은 박물관에 들러 순교자들의 유해를 참배할 예정이라고 했는데 참배했는지, 이에 관한 언론의 보도는 없었다. 이후 교황은 해미시내를 관통하는 카퍼레이드 끝에 해미읍성으로 이동하고 환호 속에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집전 했다. 많은 순교자들이 숨져간 호야나무(회화나무)에 섰다는 소식은 없었고, 미사 집전 소식만 있었다. 확실한 것은 교황은 진둠벙에도 자리개 돌에도 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연히 순교자의 유해 앞에서 기도하는 모습도 언론에 나오지 않았다.

당진 솔뫼 성지에서는 지난 15일 김대건 신부 생가 앞에서 교황이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다. 또한 16일 광화문 시복식을 앞두고 서소문 성지에 들른 교황은 기도를 올렸다. 이 같은 모습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보도가 되었다. 서소문 성지는 100여명의 신자가 순교를 당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서소문 공원 현양탑에는 순교 성인 44명과 ‘하느님의 종’ 27명의 이름이 있다. 해미성지에 이런 것은 없다. 거의 전부 이름 없는 서민이요, 백성일 뿐이었다. 교황의 행보를 100%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언론은 당일 교황이 방문해야 할 순교 공간과 그 의식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았다. 애초에 교황의 방문이 왜 성사되었는지 묻고, 그것이 충족되었는지 짚는 언론은 없었다. 교황은 스타였다. 교황이라는 스타가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지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이었다.

앞서 지역 공무원의 말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애초에 교황의 방문 목적은 아시아청년대회였지만 그것도 핵심이 아니었다. 아시아청년대회가 해미등지에서 열린 이유는 참혹한 순교지였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순교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천주교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물론 아시아청년대회를 교황이 방문한 이유는 아시아 지역의 교세 확보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하지만 어쨌든 아시아청년대회가 해미 당진 등에서 가능했던 것, 그리고 교황에게 보내진 편지에 강조했던 것 그것은 수많은 지역 주민들의 희생이었다. 누구를 만나고 행사에 참여하거나 지역의 방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나 처음의 본질은 흐려졌다. 방문지는 많아지고 교황은 타이트하게 짜인 스케줄에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에 바빴다. 연예인이 스케줄을 소화하는 듯이 보였다. 사람이 진심으로 마음을 실으려면 절대적인 시간과 여력이 필요함이 배제된 듯 싶었다. 이 때문인지 교황은 있었지만, 사람들이 죽어간 장소와 그들에 대한 주목은 없었다. 해미의 대표적인 순교 공간은 당일 정작 하나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는 단지 해미의 공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쉽다는 말이 아니다.

순교자들의 피 때문에 교황의 방문이 가능했지만, 다른 명분과 이유로 각자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하는 모양새였다. 평화를 말하는 교황 앞에서 군대 사열을 하는 대통령도 있었다. 앞 다투어 교황 방문지나 그 코스를 관광 상품으로 만들고 지역경제를 위해 활성화하는 방안으로 삼는다고 한다. 교구는 교황 방문을 계기로 세계청년대회도 유치한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교황방문을 활용하여 정치적, 경제적인 이익을 꾀하는데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판단되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참혹하게 숨져간 자리개 돌이 교황의 손이 한 번 만져지기를, 진둠벙 앞에서 교황이 기도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바람은 광풍같이 몰아친 교황 신드롬의 바람에 흩날려갔다. 그렇게 흩날려간 마당에 많은 이들이 무엇을 위해 순교의 공간에 다시 방문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교황의 방문 흔적을 위해서라면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프란체스꼬 교황의 말대로 자신의 인기는 2-3년이다. 또한 교황은 바뀐다. 하지만 순교한 사람들과 순교지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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