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이 대부분 자살로 분류한 군 의문사 시신을 유족 동의없이 강제로 화장하는 법개정을 비밀리에 추진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이 공개돼 진위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방부는 유족동의 없는 시신 화장은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문건 작성 여부에 대한 답변을 하진 못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9일 공개한 문건 ‘장기 미인수 영현처리 육군 추진계획(A수준)’에 따르면, 육군은 지난 5월 30일 현재 모두 151명의 군 사망자 가운데 18구의 시신에 대해 “3년 이상 인수 거부시 화장, 일반사망자 중 개인적 사유 미입증시 국립묘지 안장 등”이라는 대목이 들어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문건은 작성자가 나와있지 않으나 육군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시신은 수도병원으로 통합하고 유골은 벽제 11보급대로 통합해 납골당도 신축하는 방안도 들어있다.

이 문건에는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의 정상화’의 핵심과제 가운데 국방부가 유일하게 선정한 것이 바로 이 ‘장기 미인수 영현 처리’ 관련 육군 추진 계획이라고 쓰여 있다.
 

   
육군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장기 미인수 영현처리 육군 추진계획' 문건. 사진=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제공
 

이 같은 업무 추진을 위해 국방부는 업무전담 TF를 지난 4월 11일부터 추진하도록 해 TF 내에 대령과 중령 각각 1명씩을 파견할 계획을 짜놓았다. 이들의 업무는 유가족을 설득해 6월부터 12월까지 ‘안장 및 본가봉송’을 유도하는 것으로 돼 있다.

김광진 의원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군 병원 냉동고에는 모두 18구의 군인 시신이 최장 15년 넘도록 보관돼 있다. 이들은 군 복무중 사망했으나 국방부 조사 결과 모두 자살로 처리된 군인들이다. 이러한 군 당국의 자살 결론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는 유족들이 그 마지막 저항 수단으로 시신 인수를 거부해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김광진 의원은 “국방부가 해당 유족과 국회도 모르는 가운데 이들 장기 미인수 군인 시신을 너무도 충격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강제 처리하려 준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방부는 유족 동의없이 시신을 화장하지 않는다며 김 의원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국방부 차관은 19일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이는 국방부 차원에서 추진했던 계획이라면서도 ‘3년 이상 인수거부시 화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국방부 인사기획관이 “그렇지 않다, 유족 동의없이 화장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고 김광진 의원실의 고상만 보좌관이 전했다. 국방부는 18일 입장자료를 통해서도 “국방부는 유가족의 동의 없이는 어떠한 경우에도 미인수 시신을 화장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고상만 보좌관은 “국방부 해명은 거짓말”이라며 “한달전부터 요구해온 자료제출을 하지 않다가 문건을 공개하니 그런 일 없다고 발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 보좌관은 “유족 동의없이 화장하는 방안이 없으면, 이런 계획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며 “당장 비난을 모면하려고 거짓말 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군의 '장기 미인수 영현처리 추진계획' 문건.
 

이에 대해 국방부 대변인실 공보장교인 김태호 중령은 19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문건존재 여부에 대해 “문건 여부를 가리는 것이 의미가 없다”며 “국방부 차원에서는 검토하지 않은 일이나 육군에서 검토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김 중령은 국방부 인사기획관이 ‘유족 동의가 아니라 협의’라고 발언한 대목에 대해서도 “오해의 소지가 있어 다시 정리한 국방부 입장은 유가족 동의없이 일방적 화장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라며 “다만 국립묘지 안장 방안 등은 유가족과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고상만 보좌관은 18구의 시신 뿐 아니라 133구의 유골에 대해서도 “당시 시신 상태일 때 유가족에게 ‘순직처리할 수 있도록 할테니 화장부터 하라’고 해 이를 믿고 했다가 나중에 순직처리가 안된 사실을 알고 유골을 군에 그대로 두고 싸우고 있는 것”이라며 “이들의 처리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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