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5일 간의 일정으로 다녀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사회에 전한 울림이 심상치 않게 확산되고 있다. 방탄차량마저 거부한 용기와 고통스러워하는 사람, 낮은 사람, 소외된 사람을 만나느라 강행군을 해온 교황의 일관된 언행에 신자가 아닌 일반 시민에게도 감동을 줬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한국에서 가장 고통을 겪은 이들이 교황에 아픔을 호소했다. 교황이 우리에게 직접 해결해줄 수 없는데도 이들은 왜 이토록 교황에 의탁할 수밖에 없었을까.

왜 우린 근심을 교황에 의탁했나

교황 방한 기간 동안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비롯해 쌍용차 해고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밀양송전탑 반대 주민, 용산참사 희생자 유가족 등 권력에 의해 피해를 당한 이들은 모두 교황과 만나 위로를 받았다. 교황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에겐 일정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곁으로 갔다. 왜 이들은 교황에게 위로를 받아야 했나.

장동훈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신부는 18일 밤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그만큼 한국사회의 답답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권력자와 대중의 소통이 차단돼있을 뿐 아니라 한국 자체가 고립돼있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장 신부는 “나의 목소리가 세상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실망감과 무기력함, 불신 등이 교황 신드롬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박종운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변호사도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교황이 방한 기간 동안 우리 경제 사회적 약자들을 위로·격려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우리 스스로에 부끄러운 일”이라며 “왜 스스로 하지 못하고 교황의 그런 말에 감동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김형기 세월호 가족대책위 수석부위원장도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우리 공권력은 정치논리에 의해 진실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아온 데 반해 교황은 낮은 사람, 상처받은 사람을 찾아 소통하고 보듬어줬다”며 “우리 정부와 청와대, 정치권이 하지 못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교황이 한 것 “유가족 고통을 인정하고 도덕적 정당성 부여”

장동훈 정평위 신부는 “교황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은 이들 모두 다 안다”며 “우리 정부와 집권세력은 특별법을 요구하는 세월호 유가족을 매도하고 박해하는데 급급했으나 교황은 유가족의 고통을 인정하고, 이들의 요구와 싸움에 정당성을 부여해줬다”고 밝혔다. 장 신부는 “이것이 교황의 세월호 가족 만남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며 “많은이에 공감을 불러왔을 것”이라고 평했다.

박종운 세월호 가족대책위 변호사도 “교황의 만남과 위로는 억울하게 희생되고 고통당한 사람의 마음을 풀어줘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해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형기 세월호 가족대책위 수석부위원장은 “교황이 모든 부분에서 가족의 가슴을 치유해주고 특별법 진상규명 제정해달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도 표명해줘 우리는 만족스럽게 생각한다”며 “교황의 메시지는 지금까지 천대받은 이들과 가려진 분야를 드러내줬다”고 밝혔다.

허영엽 교황방한준비위원회 대변인은 “교황의 기본적인 모습은 고통받은 사람을 위해 위로하고 기도하는 것일 뿐 어떤 갈등을 모두 해결해달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면서도 “교황의 메세지를 각 분야에서 책임자 당사자들이 실현하도록 노력할 일”이라고 말했다.
 

   
▲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고 있다. 사진=교황방한위원회
 

 

 

교황이 남긴 것과 우리가 해야 할 일교황이 떠나고 난 뒤 자칫 일시적·종교적 환호로 끝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장동훈 신부는 “교황이 남긴 의미는 ‘변두리로 쫓겨난 사람 역시도 내 삶의 또다른 조각이자 그림자일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느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종운 변호사는 “교황의 메시지가 순간적 감동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지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정치현실은 여전히 엄혹하고 박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민주주의’, ‘평화는 정의의 결과’ 등 한국 현실 꿰뚫는 무거운 메시지”

교황의 연설과 강론 가운데 ‘민주주의’, ‘평화는 정의의 결과’, ‘정치적 분열과 경제적 불평등’, ‘소외된 이들에 대한 외면’, ‘한국교회의 반성’ 등 한국사회에 쏟아낸 메시지가 관례적인 것인지, 심각성을 경고한 것인지도 주목된다. 장동훈 신부는 “이런 말은 구체적인 데이터를 갖고 종합해서 한 말로, 한 종교지도자가 한 나라 정상과 만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고수위의 비판”이라며 “‘민주주의가 확대 발전해야 한다’는 말은 한국 상황을 인지하고 한 말씀”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박 대통령을 포함해 해당되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한 첫날 했던 ‘평화는 정의의 결과’라는 말은 가장 강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였다. 장동훈 신부는 “평화란 ‘남북의 평화’이거나 ‘우리 사회 전반의 평화’일 수 있다”며 “양극화 빈부격차에 의한 인간성 상실 민주주의 퇴행 등을 포괄하는 의미로, 진정한 평화란 힘없는 자들이 존중받고 힘있는 자들이 존중하는 ‘정의가 바로선 사회’에서야 나오는 것이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박종운 가족대책위 변호사도 “교황의 표현은 그냥 겉치레라 볼 수 없다”며 “남미 출신으로 빈부격차, 외세침입, 이데올로기 싸움 등 격동의 사회를 겪은 경험과 진정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반해 허영엽 방준위 대변인은 “교황의 말씀은 평소 늘 하시던 것이며 복음에 기초한 주장”이라고 말했다.

박근혜를 향한 쓴소리

강우일 교황방한준비위원장(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제주교구장)은 18일 “우리 국민들이 전 세계의 지도자면서도 낮은 사람에게 가장 기쁘게 다가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지도자상도 그런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했을 것이며, 저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밝혀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에 쓴소리를 했다.

이를 두고 김형기 세월호 가족대책위 부위원장은 “간접적으로라도 교황은 박 대통령에게 소통과 리더십의 부족을 지적하는 강한 메시지를 줬다고 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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