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민주와 인권의 도시이며, 또한 국가적 폭력과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이런 맥락에서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달콤한 이슬–1980 그 후>가 기획되었다. 하지만 광주시와 광주 비엔날레는 너무 직설적인 표현을 하고 있으며, 애초의 기획의도와 다르기 때문에 전시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수시로 수정지시가 내려졌다. 너무 직설적인 표현이라 함을 의식한 듯, 작가는 이를 고통 받는 닭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결국 전시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보면 1980년 이후 달라진 것은 오히려 표현의 자유가 퇴행했다는 점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조차 그림에 넣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자유의 도시, 꿈꾸는 도시 광주에서 광주의 정신을 정면으로 배반할 수 있는 만행적인 행위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어떻게 보면 든든한 지기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가 이러한 예술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모를 리가 없다. 알고도 남는다. 아는데 왜 그럴까. 청와대나 새누리당에서 먼저 문제제기 하기도 전에 작품의 전시를 알아서 유보한 것은 스스로 공포감에 휩싸였기 때문에 일어났다.
그러나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가 무서워 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도, 김기춘 비서실장도 아니다. 더구나 보수 세력의 고발도 아니었다. 정말 무서워 한 것은 돈줄이었다.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정부 예산이 끊길 것을 염려한 때문이었다. 지난 2012광주비엔날레의 총 예산 가운데 국비 지원은 30억 원에 이르렀다. 광주에서 지원한 시비도 15억 원이었다. 광주시는 올해에도 광주비엔날레 개최 25억 원을 편성했고, 특별전에 12억 3000만원을 지원했다. 국비도 지난번 대회에 버금간다.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 출품작인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 비엔날레 재단 측은 홍 화백의 작품에 대해 최종 전시 유보 결정을 내렸다. ⓒ노컷뉴스 | ||
요컨대, 중앙정부에서 국비를 삭감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림은 광주비엔날레에 전시 될 수 없다. 이는 민주와 인권, 불의에 대한 항거라는 광주정신을 그대로 소각 해버린 것과 같다. 광주비엔날레는 국비를 타기 위한 매개물이 되어 버렸다. <세월 오월>을 전시하지 않아 애초의 국비를 다 받아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로써 피로 쓴 광주정신이 국비라는 돈줄의 파란 빛으로 점철되었다. 이로써 광주비엔날레가 무엇을 위해 그간 달려왔는지 되짚어야 한다.
지난 5월, 광주비엔날레는 미술 인터넷 매체인 아트네트(artnet)가 선정한 세계 5대 비엔날레에 꼽혔다. 전 세계에는 약 200여 개의 비엔날레가 있는데 이중에 다섯 안에 들어간 것이다. 평가기준은 관객의 수, 예산, 국제 사회의 영향력, 큐레이터 등이었다. 예산은 많은 부분 자립적으로 구성하지 못하고 있음은 앞에서 충분히 보았다. 또한 관객의 수가 많아졌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신뢰할 수가 없었다. 2013년 10월 광주시의회 자료에 따르면, 광주비엔날레의 관객은 늘어났지만, 5년 전보다 유료관객은 10만 명이 줄고, 무료관람객은 39만 명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규모만 키운 것이다. 내실은 없었고, 경제적로 비주체적이었으며 이는 그대로 작품 기획과 전시의 제한으로 나타났다.
비엔날레가 그럴듯한 국제대회를 표방하지만, 1980년대 대학가의 거리만도 못해졌다. 대통령을 비판한 걸개그림조차 창작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 본질을 볼 때 광주비엔날레가 세계 5대 비엔날레가 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광주정신의 외형을 둘러싸고 허명을 쫓는 사이, 예술정신은 물론 광주정신도 국비의 노예가 되었다. 국가 폭력에 저항하는 광주정신이 국가 국비에 종속된 것이다. 광주비엔날레 자체가 예술적 가치와 지향점을 잃고 말았다. 중앙정부에서 예산을 삭감할까봐 알아서 작품을 자체 폐기하는 예술행정풍토라면 그 비엔날레의 규모와 위상이 어떤 한들 이미 존립 가치를 잃어버린 것이다. 대내외에 자랑하기 위한 허영의 대회가 아니라 작더라도 그 야초의 정신과 가치를 올바르게 실현해내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무엇보다 1980년 이후 변한 것은 국가 권력의 탄압 이전에 스스로 돈에 얽어매는 행태의 무감각한 용인이다. 그 사이에 국비를 타기 위해 예술을 도구화 하거나 배제하고 있었음을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보았다. 예술예산과 관련 없는 전체 국비를 더 타기 위해서 시민과 작가 수 십 명이 같이 작업한 작품을 떼어 냈으니 말이다. 알 수 없는 공포감을 스스로 가지니 자발적인 노예화와 자중지란을 낳게 하며 서로를 스스로 무너지게 하니 참 편리한 노릇이다. 이제 국가 폭력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국가 예산이 무서운 시대다. 그러니 군홧발과 곤봉이 아니라 예산권만 휘두르면 무엇이든 통제할 수 있다는 신화는 스스로 만든 것인가, 타자들이 만든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