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들이 9시 등교를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1) 맞벌이 부부가 많이 8시 전에 출근하는데, 아이가 혼자 일찍 등교해 사고 나면 어쩌나 2) 이렇게 공부 안 시키면 공부 잘하는 애들이 서울로 다 빠져 나갈텐데 어쩌나 정도이다. 여기에 대해 이재정 교육감은 “걱정하지 말라. 도서관도 열고 프로그램을 만들면 된다. 아이들 중심으로 생각해달라. 아이들이 하고 싶은대로 놔두자”, “맞벌이 부부인데 학교가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논의가 평행선을 그린 까닭은 ‘9시’라는 시간에 집착한 나머지 문제의 본질을 빗겨갔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 학교의 등교시간이 문제가 됐던 것은 단지 등교시간이 빨라서가 아니라 일단 일찍 등교시켜 놓고 정규수업이 아닌 별도의 교육활동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이미 수십년 전부터 학교들은 교육과정 이외의 수업이나 학습활동을 추가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 정규수업 시간이라도 제대로 공부하면 될 것을 꼭 그 전후로 추가적인 교육활동을 시켜야만 열심히 가르치는 학교로 여기는 풍토가 만연했던 것이다. 이는 정시 퇴근하는 직원이 게으른 사람 취급을 받는 기묘한 직장문화와 판박이다.
이재정 경기교육감.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
학생들의 요구도 바로 이것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0교시 등 1교시 시작하기 한참 전에 쓸데없이 일찍 등교해서 학교에서 이런 저런거 하는 것들”, 예를 들면 1교시 시작하기 30분 전부터 입실하여 아침자습이니 아침독서니 하는 이런 활동을 강요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폐지하고 1교시 시작시간을 등교 시간(출석/지각 기준)으로 정하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9시가 등교시간이 된다. 정작 등교시간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등교시간이 8시30분이면 그때 바로 수업을 시작해서 학교를 빨리 파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고등학교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해야 하루 일과가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논점은 9시냐 8시30분이냐가 아니라 ‘아침시간에 실시하는 추가 학습활동의 폐지 여부’인 것이다.
따라서 이재정 교육감이 기어이 ‘9시’라는 시간을 고집하려면 9시 이전에는 어떤 프로그램도 없는 자유시간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런데 이 교육감이 일찍 출근하는 맞벌이 부부 자녀를 위해 “도서관 등을 활용한 아침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그렇게 되면 9시 등교제는 하나마나가 된다. 맞벌이 부부가 많은 경기도의 특성상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9시보다 훨씬 먼저 등교할 것이고, 그럼 학교에서는 또 다시 이런 저런 아침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사실상 0교시나 아침자습을 부활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학부모들 역시 출근시간에 맞추기 위해 8시30분 등교시간을 고집하는 것이라면 늦어도 8시40분에 1교시가 시작해서 종전보다 빨리 하교하더라도 불만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1교시 시작 전에 추가적인 학습노동을 부과하지 않는 것, 정규수업 시간만으로도 힘든 아이들에게 의미없는 학습시간을 추가로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이 점에 교육감과 학부모가 동의한다면 등교시간 자체는 각 학교 실정에 따라 적절하게 결정하도록 하여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등교시간을 9시로 해도 맞벌이 부부가 걱정하는 학생 방치사태는 일어나지 않을것임을 사족으로 붙여둔다. 학부모들 스스로 말했듯 경기도는 맞벌이부부가 많기 때문에 당연히 아이가 혼자 교실에 일찍 나와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상당히 많은 맞벌이 부부의 자녀들이 함께 교실을 지킬 것이다. 물론 그 아이들이 교사 없이 방치되지도 않을 것이다. 9시 등교제를 하더라도 교사의 출근시간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8시30분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