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가 죽음의 상징이 되고 있다.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군 입영 거부 운동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맞아죽을지 모르는 곳에 어떻게 자식을 보낼 수 있느냐는 하소연이다.

윤 일병 사망사건이 국민의 공분을 일으킨 것은 참혹한 가혹행위와 군 수뇌부의 은폐 조작 의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지키려고 간 군대에서 동료병사로부터 인간 이하 취급을 당하고 관련 사실이 드러나도 감추기에 급급한 군의 모습을 보면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퇴색되고 군 당국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군 피해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군 폭력의 실상과 치부를 과감히 드러냈을 때 이에 걸맞는 대책이 나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로 인한 피해자, 성소수자, 군의문사 가족, 군 가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최근 가혹행위의 여러 유형을 두루 살펴봤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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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노컷뉴스
 
신장 178센티미터에 체중 70킬로그램. ‘늘 밝고 유난히 사교성이 좋은 아름답고 건강한 아이’였던 A씨는 군 입대 8개월 만에 “지금 자살을 하겠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싶어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A씨는 아버지에게 “나를 벌레취급해서 사람들을 피해 종일 화장실에 숨어 있는데,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죽음을 통해 평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A씨는 게이다.

아들의 신변을 염려한 아버지는 ‘아들의 모든 것’을 적은 부형의견서를 부대로 보냈다. 그런데 이 문건을 지휘관은 물론 같이 훈련받던 모든 장병들이 보게 됐다. 이후 군은 그에게 강제로 에이즈 검사를 받게 했다. 동성애자임을 증명하면 현역부적합대상자로 제대를 할 수 있다며 성관계 사진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그 사진도 군 내부 관계자들이 ‘공유’했다.

대한민국에서 생물학적으로 남성이고 신체에 이상이 없으면 군 입대를 해야 한다. 이는 적지 않은 성소수자가 군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군대 내 성소수자 피해사례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피해사례 증언 자체가 또 한 번의 ‘아웃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군대 내 성소수자 문제가 무지와 무관심의 영역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에는 비수술 트랜스젠더에 대한 병역면제 취소 처분이 문제가 됐다. 자신을 여성이라 인식하는 B씨는 9년 전 ‘성 주체성 장애’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당시 그는 호르몬제 투여와 정신과 진단 등을 근거로 제출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지방병무청은 별도의 병역기피사건을 수사하던 중 B씨를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그러고는 B씨의 병역면제가 ‘객관적’으로 증명됐을 때만 가능하다며 병역면제를 취소했다.

‘객관적 여성’이라는 단어는 주관적일 뿐더러 이는 철저히 성기 중심적이다. 결국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신체에 손을 대는 방법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자기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다. 동성애자인권연대는 “고환적출술을 받아야만 성주체성장애로 병역면제가 가능하다는 식의 관점은 트랜스젠더 개개인들의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을 현저히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의료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는 부당하고 위헌적인 조치”라고 비판했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 동성애자는 군 생활을 할 수 없었다. 2008년 11월 열린 ‘군대와 게이, 불편한 관계 속에서 인권의 길을 찾다’ 토론회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군대 내 동성애자의 전면적인 배제 정책을 유지하다 1993년 동성애자임을 밝힐 경우 전역을 시키는 정책을 취해왔다. 그러다 지난 2010년 동성애자도 군 생활을 할 수 있게 했다. 차별 금지 차원에서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이들 나라와는 정반대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차별적 제도가 적은 것은 차별적인 제도에 대한 논의를 통해 이를 제거한 결과가 아니라 아예 동성애자 존재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성소수자를 다른 병사와 동등하게 징집을 하면서도 정작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과 이해는 매우 저조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상황이 차별적 제도가 가시적으로 존재하는 해외보다 더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A씨와 B씨 사례도 이를 방증한다.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 정욜 씨는 “한국 군대는 성소수자에 대한 배경지식 자체가 없다”며 지휘관 등에 대한 인권 교육 등을 주문했다. 그는 이어 “지금은 군의관이나 지휘관 개인의 주관에 따라 판단이 다르다”며 “제대로 된 지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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